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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 19집 Hello
조용필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영원하라, 가왕이여 !
내 후배의 꿈은 뮤지션이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기도 했었다. 미련이 남았던지 가난한 무대 생활을 하다가, 먹고 살 길이 막막하면 다시 직장에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 그 녀석이 사는 방에 가보니 온갖 악기들로 가득했다. 뭐냐고 물었더니 밀린 1,2년치 월급 대신 받아온 악기들이라고 했다. 그 말투에는 뭔가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그날 그 녀석은 자신이 만든 곡들을 연주했다. 그 음악을 듣고 있자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따위의 오열은 아니었지만 마음이 4월의 무처럼 아렸다. 그 친구는 꿈을 접고 의료기기 세일즈맨이 되었다.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의료 기기'를 팔았다. " 이 기계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뼈를 자를 때 살점이 안 튀깁니다요, 헤헤헤헤... "
그 친구에게서 오늘 연락이 왔다. " 형 ! 조용필 들었어 ? 아, 시발... 좋더라. 내가 그래도 한때 엔지니어였잖아. 내가 마스터링한 가수 중 유명한 사람 많다. 아, 시발... 형 같은 까막귀들은 잘 못 들어. 마스터링 끝내주더라. 듣는데 눈물이 다 나더라. 시발... " 그 녀석은 하루 종일 시발, 시발, 시발을 외쳤다. 마음이 짠 했다. 술 한 잔 하자는 걸, 나는 냉정하게 거절했다. " 형... 피, 똥, 싸, 잖, 니 ! 의사 선상님이 음주는 치질에 안 좋다고 당분간 자제하라고 하더라. " 그러자 후배가 소리쳤다. " 아우, 시발... 형 ! 그놈의 피똥, 피똥... 지금 피똥이 문제야? 개떡같이 왜 그래 ? 대한민국 다 족구하라 그래. 시발... 형, 조용필이잖아. 조용필 !!! " 후배는 강원도에서 서울로 내려오는 어디 즈음에서 차를 세워 전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나서 곰곰 생각해보았다. 그래... 내가 피똥 싸는 게 무슨 대수냐. 조용필이잖아. 그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서 술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우선 서로 실황 중계를 보자는 선에서 대충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나서 이 글을 쓴다. 울컥 했다. 정말 울컥 했다. 까막귀인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마는... 뭔가, 괄약근을 타고 전립선을 건드린 슬픔이 솟구쳐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는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슬퍼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페루애 씨 ? 피똥 싸는 군요. 하하. 슬퍼하지 말아요. 이 늙은 가수가 보기엔 세상은 아직 살 만합니다. 피똥이 무슨 대수요. 친구 만나 소주 한 잔 해요. "
설레발이 아니다. 노래가 좋아서 감동한 것도 아니다. 조용필 쇼케이스는 오직 조용필이란 존재 자체만으로 감동을 주는 무대였다. 이 슬픔은 어떤 근심 때문이다. 이제는 사라져버릴 존재들에 대한, 그런 막연한 근심과 막막한 두려움들. 조용필이 세상을 떠나면 슬플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를 볼 때마다 같은 생각 때문에 슬픔이 몰려오는 것처럼. 오래오래 사시라. 내 비록 피똥 싸나, 오늘은 당신을 위해 잔을 높이 들리라. 영원하라, 가왕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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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는 지금 강원도 모 병원에서 의료기기 하나를 계약하고 내려오는 길이란다. 울고 싶다고, 울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