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얼굴 : 표절'이라는 이름의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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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놀던 동네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 어느 날 고만고만한 동네에 고수 한 명이 나타났다. 그녀는 주로 예술 분야에 대한 글을 썼다. 처음 보는 그림과 사진들에 대한 글이 대부분이었다. 정보력과 수집력이 뛰어난 고수임이 분명했다. 설상가상 그녀는 한가인보다 예뻤다. 그녀가 보내는 일상을 담은 사진들은 보첼리니의 < 비너스의 탄생 > 을 감상하는 것보다 더 유쾌했으니깐 말이다. 여기에 마음씨 또한 비단이라. 그녀는 친절한 금자 씨'였다. 너나 잘하세요, 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착한 입술이었다. 그녀가 키스를 하듯 입술을 오므린 도발적 사진은 앵두 같았다. 아, 저 입술... 참 예쁘다 ! 앵두 같은 입술을 보다가 다른 여자가 오므린 입술을 보니 닭똥집 같은 거라. 나는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3박자를 고루 갖추면 여신이 되는 법이다. 블로그를 만든지 2개월 만에 덧글은 평균 100개에서 200개를 왔다갔다 했다. 그녀는 바쁜 와중에도 꼬박꼬박 댓글을 달아주었다. 오늘은 날이 화창한 봄날이에요, 오늘은 무덥군요 ! 시원한 냉면 어떠신가요 ? 빰빠라, 빰빰빰 !!!!굉장하군요. 어디서 많이 놀아본 솜씨인데요 ? 아참... 그녀의 직업은 모 대기업 수석 연구원'이었다. 남이 잘난 꼴은 죽어도 못 보는 성질인 나는 장탄식을 했다. 닝, 기, 미, 조, 또 !

 

내가 보티첼리의 비너스보다 예쁜, 친절한 금자 씨보다 친절한, 한가인보다 한가하지 않은 그녀에게서 느꼈던 감정은 부러움이 아니라 " 언캐니 " 였다. 그녀가 블로그 세계에서 점점 완벽해질수록, 나는 그녀가 점점 인조인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헛점이라고는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특히 그녀가 전시한 수많은 사진은 일상적인 포즈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일상 속에서 사진 찰칵, 이라며 전시한 사진들은 순간의 포착이기는커녕 치밀하게 계산된 것들이었다. 사진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사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진 속에 스며든 빛의 농도, 광원의 방향, 그림자의 길이를 통해서 여러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데 그녀가 전시한 사진 가운데는 반사판을 사용한 사진이 꽤 많았다. 반사판까지 동원된 사진이 과연 평범한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까 ? 사진을 찍는 솜씨는 훌륭했고, 사진 속 그녀의 포즈 또한 프로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가 가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코 파며 잇힝, 하기에는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오열하며 좌절했다. 사진 이미지를 바탕으로 구글링을 해도 남의 사진을 도용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 도대체 넌... 누구냐 ? " 더욱 이상한 점은 그녀의 취향이었다. 그녀가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르네상스도 아니고, 로코코도 아니고, 바우하우스도 아니며, 야수파, 인상파, 미래파, 양파, 대파, 쪽파, 실파, 좌파, 우파'도 아니었다. 그런 그림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나중에는 오로지 벌거벗은 여자 그림이나 예술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녀의 주제는 그림 속에 나타난 여체, 그림 속에 나타난 강간, 그림 속에 나타난 나르시즘이었다. 말이 좋아 나르시즘이지 나중에는 포스트모던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용 자위 기구에 대한 글을 올리기도 했다. 얼굴은 여신인데 이런 자극적인 글을 올리니 늙은 남자들은 환장을 했다. 덧글창을 보면 침이 떨어지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꼬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와 가까운 이웃 가운데 한 명이 영화 < 지슬 > 에 나오는 남자 배우인 " 양정원 " 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보티첼리의 비너스보다 예쁘고, 친절한 금지 씨보다 친절하며, 한가인보다 한가하지 않은, 바쁜 그녀를 발견한 것이었다. 무명에 가까운 여배우양 ! 정 ! 원 ! 그 여자의 이름이었다. 문제는 양정원 씨'와 블로그 그녀는 얼굴은 동일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이었던 것. 그러니깐, 블로그 속 그녀'는 배우 양정원을 카피한 것이다. 그녀의 일상 모두를 말이다. 사실이 발각되자 그녀는 블로그를 폭파하고 종적을 감추었다. 그것은 < 표절 > 이었다. 소설가가 다른 소설가의 소설을 표절하고, 음악가가 다른 음악가의 음악을 표절하고, 미술가가 다른 미술가의 미술을 표절하는 것처럼 그녀는 양정원이라는 예쁜 얼굴과 몸을 표절했다.

 

그녀는 카피캣이었다. 그녀를 여신처럼 따르던 사내들은 이내 장탄식이 이어졌다. 마트에서 추파춥스를 훔치다가 걸린 여배우를 바라보는 팬의 입장이랄까 ? 그런, 느낌. 사나이 울리는 건 신라면만이 아니었던 듯 싶다. 양정원을 카피한 그녀는 과연 그녀일까 ? 혹은 그일까 ? 그(녀)는 예술이 좋아서 예술에 관련된 글과 그림을 올린 것일까, 아니면 남성들을 유혹하기 위해서 벌거벗은 보티첼리의 비너스를 미끼처럼 이용한 것일까.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다. 표절은 나쁘다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표절에 대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그녀는 현재 침묵 중이다. 입을 다물고 오래 있으면 똥구멍에 털 난다. 입과 항문은 연결되어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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