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과 사이코
스티븐 레벨로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히치콕과 관련된 책은 의외로 많다. 그만큼 히치콕에 대한 현대인의 열광'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히치콕에 대한 가장 탁월한 저서는 트뤼포가 히치콕을 인터뷰한 < 히치콕과의 대화 > 다. 이 인터뷰는 위대한 스승/히치콕'에 대한 제자의 존경/ 트뤼포'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터뷰어의 미덕은 겸손이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은 좋으나 단정적이서는 안 된다. 주체는 인터뷰이/감독이지 인터뷰어/평론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정성일은 질문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그가 박찬욱과 영화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언제나 박찬욱보다 많이 안다는 전제로 대화를 시작한다. 미친 짓이다. 지첵의 < 삐딱하게 보기 > 도 명불허전이다. 지첵은 히치콕을 통해 라캉으로 가는 길을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이 책과 함께 < 항상 라캉에 대해... > 도 읽어볼 만하다. 그리고 < 여성 괴물 > 과 < 너무 많이 알았던 히치콕 > 은 여성적 시각으로 히치콕 영화를 해부한다. 끝으로 < 히치콕 > 은 히치콕을 다룬 전기 중 가장 꼼꼼하다.

 

 

 


 

 

 

 

 

 

 

 

" 그건 영화에서 흔히 쓰는 방식이지 ! "

 

 

 

왕가위와 히치콕은 서로 정반대의 작업 스타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왕가위는 편집에 목숨을 걸었고, 히치콕은 촬영에 목숨을 걸었다. 사실 < 동사서독 > 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 스스로 신뢰를 할 수 없어서 우왕좌왕한 결과였다. 영화 촬영 도중 내용이 바뀌어 동사 역을 맡은 배우가 서독을 하고, 서독을 연기하던 배우는 동사 역을 하게 되었다. 한 달 동안 찍었던 촬영은 없던 일이 되고 다시 찍기를 반복했다. 제작 기간이 2년 가까이 소요되자 왕조현은 자진 하차'를 하고 사막을 떠난다. 왕가위는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 몰랐던 것 같다. 그는 산더미처럼 쌓인 필름을 편집실에 가지고 가서 100분 분량으로 간추리는 작업에 몰두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당연히 서사는 엉망이었다. 하지만 왕가위는 행운아였다. 과정은 엉망이었지만 결과는 언제나 훌륭했으니깐 말이다. 그가 원한 것은 서사가 아니라 이미지'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히치콕은 만약을 대비해서 다양한 설정으로 찍는 어설픈 짓따위는 하지 않았다. 철저한 계산 아래에서 촬영이 되었기 때문에 자투리 촬영 필름을 남기지 않았다. 사실 영화사가 자투리 필름으로 편집실에서 장난을 치는 꼴사나운 짓을 보고 싶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컸다. 영화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을 들어내려고 해도 그 장면을 대체할 촬영분이 마땅히 없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작했던 데이빗 셀즈닉은 히치콕의 이러한 꿍꿍이를 두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히치콕의 촬영 방식을 < 직소 퍼즐 > 이라고 불렀다. 직소퍼즐 게임이 1000조각 중 하나'라도 없으면 완성이 안 되듯, 히치콕 영화 또한 한 조각이라도 없으면 완성이 되질 않았다. 아이구야, 화가 난다. 화가 나 !!!

 

 

영화 < 사이코' > 는 히치콕 입장에서 보면 저예산 영화'에 가까웠다. 총제작비로 80만 달러'가 들어갔다. 티븨 30분 단막극 하나에 평균 10만 달러의 비용이 들어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는 티븨용 90분짜리 특별판'이라고 해야 된다. 그는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 실제로 티븨 드라마 촬영 팀'과 작업을 했다. 이유는 촬영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였다. 티븨 제작 시스템에 익숙한 기술자들은 히치콕의 의중을 쉽게 이해했고 일을 빨리 빨리 밀어붙였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 영화의 흥행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위의 영상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지금 보아도 파격적인, 6분짜리 사이코 예고편이다. 그는 이 예고편에서 관객을 철저하게 속인다. 히치콕은 부인의 방'을 안내한 후 침대를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여긴 그 여자의 방입니다. 침대에는 그녀가 누웠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오메, 후덜덜덜덜 ! " 그는 예고편에서 존재하지 않는 부인'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설명한다. 그것은 자신의 트릭을 감추기 위한 계산이었다. 더군다나 예고 끝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은 쟈넷 리'가 아니라 베라 마일즈'이다. 예고편이란 영화를 보기 전에 상영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 영화 < 사이코 > 를 보기 전이었던 관객들은 베라 마일즈'가 살해당하는 것으로 알았을 것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영화 속에서는 최고의 스타 중 하나였던 쟈넷 리가 30분 만에 살해당한다. 이처럼 예고편은 온통 거짓말투성이'다.

 

 

            

 

내가 히치콕의 샤워 씬'에서 가장 궁급했던 장면은 샤워 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정면에서 찍은 장면이었다. 정면에서 찍었다면 물방울이 카메라 렌즈에 튀어서 흔적을 남길 텐데 그런 흔적이 보이지 않아서 늘 궁금했었다. 거기에 대한 해답은 위의 동영상 속 남자가 비밀을 가르쳐준다. 정답은 샤워 꼭지의 가운데 구멍을 막고 꼭지 원 둘레에만 물이 나오도록 고안한 장치'이다. 그러니깐 물줄기는 모두 카메라 바깥으로 흘러내리고 정작 중심부는 물이 내리지 않는 구조가 된 것이다. 태풍의 눈처럼 말이다.

 

히치콕이 즐겨 사용했던 말 가운데 하나는 " 그것은 영화에서 즐겨 쓰는 방식이지 ! " 였다고 한다. 완곡하게 거절을 하지 못했던 히치콕은 돌려서 < 진부하고 뻔한 것 >을 < 즐겨 쓰는 방식' > 이라고 돌려서 말했다. 그것은 곧 거절의 뜻이었다. 50년이 지난 이 영화를 지금의 관점에서 보자면 쇼킹'하기보다는 오히려 클래식'하다. 이제 그가 사용했던 영화 기술은 표준이 되어서 이제 즐겨 쓰는 방식이 되어 버렸다. 시간은 이처럼 새로운 것을 낡은 것으로 만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지나도 마스터피스'는 영원하다는 점이다.

 

 

▦ 참고로 영화 속 피는 초콜릿 시럽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칼이 " slashing " 하는 소리는 칼로 수박을 찌를 때 나는 소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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