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은 < 당연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읽지 않은 책 > 이며 < 처음 읽으면서 (사람들에게) 꼼꼼하게 다시 읽는 중이라고 말하는 책 > 이다. 일단 고전‘은 재미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의외로 재미있다. 여기, 여러분에게 재미있는 고전 탐정소설 작가’ 한 분을 소개하기로 한다. 바로 프로이트다. 프로이트가 추리소설가 ?! 나는 그의 고리타분한 학술서’를 흥미진진한 탐정소설‘로 읽는다. 그의 저서’를 읽다 보면 < 다빈치코드 > 는 " 정말 " 재미가 없다. 탐정소설의 내러티브는 대개 이런 식이다 : 1. 고객은 탐정을 찾아가 자신의 곤경’을 이야기한다. 2. 탐정은 의자에 앉아서 고객의 하소연‘을 듣는다. 3. 영민한 탐정일수록 그 자리에서 문제는 해결된다. 범인의 윤곽은 이미 이 상담 과정에서 드러난다. 다만 입증을 하기 위해서 현장을 방문할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도’도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이 아닌가 ? 위의 문장에서 고객과 탐정을 각각 환자와 (정신과) 의사'로 바꾸어보자.  1. 환자는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곤경’을 이야기한다.  2. 의사는 의자에 앉아서 환자의 하소연‘을 듣는다. 3. 훌륭한 의사일수록 그 자리에서 문제는 해결된다.  이처럼 프로이트'는 자신의 직업이 탐정가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환자를 치료한 사례 연구 논문을 보면 논문이라기보다는 마치 탐정소설처럼 읽힌다.  어느날 환자는 프로이트를 찾는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이상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괴하다. 독자인 우리는 환자의 이상 행동에 호기심을 갖는다. 왓슨인 우리는 도통 모르겠다. 다만 프로이트만 뜻모를 웃음을 짓는다.

 

결국은 명탐정 프로이트'는 상담실 의자에 앉아서 우리에게 사건의 전말을 풀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 이봐, 곰곰생각하는발 ! 성실한 형사는 부지런히 발품을 팔지. 반면 뛰어난 탐정은 책상에 앉아 조용히 추리를 하지. 두 사람 다 범죄 현장을 찾아. 하지만 각자의 속내는 다르다네. 형사는 증거를 얻기 위해 현장을 찾고, 탐정은 자신의 추리'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간다네 ! " 하지만 명탐정 프로이드'에게도 실패의 경험이 있다. 바로 < 도라 사례 > 이다. 그는 이 사건으로 인해 돌아버릴 지경이 되었다. 프로이트‘가 남겨놓은 다섯 편의 중요한 분석 사례, 꼬마 한스, 쥐 사나이, 쉬레버 박사, 늑대인간 그리고 도라 가운데 유일하게 실패한 정신 치료 분석이 < 도라 케이스 > 이다. 도라는 느닷없이 분석 치료 해지 통보’를 프로이트에게 보낸다. 프로이트의 명성을 감안한다면 도라‘의 일방적인 분석 해지 통보‘는 프로이트에게 있어서는 치욕스러운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 상담은 실패했을까 ?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서 어떤 틈이 발생한 것일까 ?


정신 분석이란 대부분의 의학‘과는 달리 대화의 과정에서 원인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심리적으로 치료하는 방식이다. ( 암 세포‘를 제거하는 행위가 아니다. ) 그러니깐 오고가는 말의 서사‘가 분석의 주요 틀’이라는 말이다. 이들의 관계에서는 신뢰‘가 중요한데 이 관계’에 의심과 불신이 끼어들면 환자‘는 상담를 거부하게 된다. 그리하면 분석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실패의 주요 원인은 의사와 환자 간에 발생하는 < 전이 > 의 발생이 큰 몫을 차지한다. 전이란 " 어떤 특정 대상에게 느낀 슬픔, 분노, 사랑, 증오 따위‘의 감정을 특정 대상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제 3자’에게 느끼는 심리 행위로, 일종의 투사‘다. " 이 전이는 일종의 빙의다. 제 3자’ 위에 특정 대상‘이 입혀진다. 프로이트와 도라의 관계’에서 도라는 프로이트‘를 자신과 애증 관계에 있는 K 씨와 동일시’함으로써 더이상 의사와의 관계를 지속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상담은 이로써 파기된다.  

 

 

 


 

 

 

 

 

 


 

그 어디'에도 없는 남자.


 

브루스 윌리스'는 성공한 아동 상담 의사'다. 어느날 그는 이상행동을 보이는 소년을 상담한다. 그의 명성에 비하면 소년의 사례'는 웃으면서 코 팔 수 있는 수준이다. 잇힝, 한다. 너무 뻔한 증상이라는 말이다. sbs < 우리 아이가 이렇게 변했어요 > 에 나와서 소년에게는 아버지가 없으니 애착 대상의 결핍에 따른 불안 장애'라고 하면 된다. 꼬마가 유령을 본다고 ?! 그것은 부모에게 관심을 받기 위한 어린이의 흔한 거짓말이라고 말하면 된다. 이래저래 종합하면 애정 결핍이다. "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세요 ! " 그것은 마치 술 담배는 몸에 해롭습니다, 라는 의사의 경고와 비슷하다.  뻔하다는 말이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식 성장 스토리‘다.  

 

꼬마'는 상담 의사’를 자신의 아버지‘와 동일시한다. 베테랑답게 브루스 윌리스‘는 소년의 전이’를 간파하고는 슬기롭게 대처한다. 아동심리 분석의 최고 권위자‘가 아니었던가. 그는 환자’에게 귀신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니 무서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라는 처방’을 내린다. 그의 처방은 효과가 있었다 !  아이는 치유되는 것처럼 보인다. 아, 후후후후뭇하다. 우리가 안심하고 가족 서사’에 심취하는 사이, 영화는 우리가 상상했던 안전망을 벗어나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갑자기 찾아온 반전은 너무 강렬해서 혼란스럽다. 유령은 브루스 윌리스'였다. 그러니깐 소년을 찾아오는 유령 가운데 하나가 바로 브루스 윌리스인 것이다. 당신은 이 지점에서 팬티 속에 손을 넣어 엉덩이를 긁다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난다. 다스베이더가 " 내가 네 애비다 ! " 이후 두번째이다.

 

안전하다고 믿었던 소년의 성장 스토리'는 한순간에 뒤죽박죽이 되었다. 기존의 역할 모델'은 재배치를 통해서 다시 정립이 되어야지만 이 영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한 주변부 캐릭터로 등장하던 유령'은 이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령이 꼬마를 찾아오는 이유'이다. 귀신이란 외로운 존재'다. 유령이 꼬마'를 찾아오는 이유는 꼬마'에게 하소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니깐 꼬마'는 귀신의 하소연'을 듣는 위치에 있다. 위에서 지적한 " 말하기와 듣기의 관계 " 로 보자면 꼬마는 의사이고 환자는 유령이 된다. 그렇다면 브루스 윌리스'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가 된다. 그는 꼬마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꼬마가 그를 치료하는 것이 된다. 결국 그는 꼬마와의 상담을 통해 자신의 병을 고친다. ( 그는 뒤늦게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유령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

 

브루스 윌리스의 병명‘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병이었다. 자, 이 지점에서 의사’는 역전이 상태에 놓인다. 환자는 소년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의사가 소년에게 내린 < 귀신을 두려워하지 말고 대화를 나누라는 말 > 은 처방이 아니라 유령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하소연'이다. 자신의 얘기를 들어달라고 하는 것 ! 이 영화에서는 모든 관계가 뒤바뀐다. 의사'는 알고봤더니 환자이고, 소년은 환자가 아니라 의사가 된다. 그리고 의사는 인간이 아니라 유령'이다. 또한 의사는 소년의 상담 거부'를 소년의 전이 때문이라고 인식했으나 사실은 자신의 역전이 때문이다.

 

▦  브루스 윌리스'는 그 어디에도 없는 남자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유령/nothing 이다. 영화 < 세븐 > 에서 케빈 스페이시'가 바로 nothing이다. 극중 이름인 John Doe 는 의사들이 신원을 알 수 없는 사체'를 기록 카드에 적을 때 쓰는 이름이다. 그러니깐 J. Doe 는 그 어느 곳에도 없는 존재다. 이처럼 nothing이 출몰하면 현대의 질서'는 뒤죽박죽이 된다.

 

다시 프로이트의 < 도라 케이스 > 로 돌아오자. 프로이트는 이 분석 상담의 실패‘가 도라의 전이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후기 프로이트 주의자’는 반론을 제기한다. 가장 대표적인 분석학자‘가 바로 라캉이다. 그는 이 상담이 실패한 배후’로 도라‘의 전이가 아니라 프로이트‘의 역전이’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프로이트‘는 의사로서 환자인 도라’를 지켜본 것이 아니라 k씨의 성적 판타지‘로 도라’를 지켜본 것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K 씨의 입장에서 도라를 훔쳐본 것이다. 그리고는 프로이트는 소녀가 자신의 페니스를 구강성교하는 판타지에 젖는다. 그러니 결과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이 역전이’의 상태였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 상담 분석 실패의 주범은 바로 프로이트‘였던 것이다. 라캉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한다.

 

영화 식스센스'에서 < 유령'>을 신경증을 유발하는 오브제 역할로 두면 식스센스는 마치 < 도라 케이스 > 의 번안극 같다. 도라 케이스'에서 도라의 불안은 중년 남자 k와의 관계 때문이었다면, 꼬마의 불안은 유령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 상담 과정에서 환자(들)은 모두 의사 = 중년 남자 k,  브루스 윌리스 = 유령'으로 동일시한다. 프로이드와 브루스 윌리스'는 모두 이것을 환자의 전이'라고 판단하지만 사실은 상담자의 역전이'가 일어난다. 프로이드가 상담 과정에서 자신을 중년 남자와 동일시해서 도라와의 성적 판타지'를 상상하듯이, 브루스 윌리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령과 동일시해서 꼬마'를 치료하려고 한다. 이처럼 영화 < 식스 센스 > 는 프로이트의 < 도라 케이스 > 와 함께 읽으면 텍스트가 풍부해지는 영화'다. 대중성과 예술성 그리고 학문적 성과까지 골고루 갖춘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강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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