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은 힘이 있다.

 

 

 

 

 

 

 

 

 

 

 

 

 

 

"정말로 진지한 대작을 쓸 생각을 하고 있어. 그 작품은 소설과 아주 똑같을 거야. 한 가지 다른 점만 빼면, 그 안에 적힌 모든 단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진실이라는 거지"

 

- 차가운 피,

 

< 인 콜드 블러드 > 는 문학사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Non-Fiction Novel / 팩션'을 개척한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르포'라고 하기에는 소설 같고,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르포에 충실하다. 카포티는 하퍼 리와 함께 엽기적인 일가족 살인 사건을 취재한다. 그는 이 취재 과정에서 얻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6년에 걸쳐 < 인 콜드 블러드 > 를 완성한다.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그는 한 순간에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었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그의 빛나는 재능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 재기를 " 하기 위해서 다짐했으나 " 제기랄... " 그의 운은 거기까지였다. 솔직이 고백하자면 그에게 쏟아진 찬사'는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저 평범한 재능을 가진 글쟁이'였을지도. 하여튼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작품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는 점이다. 혹자는 이 마지막 멘트를 읽고 지레짐작, 나를 속물로 규정할지 모르겠으나 쫄쫄 굶어봐라. 온갖 잡생각이 떠돌아다닌다.

 

 


 

 

Clue by Alex Eylar

 

 

리얼은 힘이 있다. 더군다나 용감한 녀석들 코너에서 박성광이 " 리얼 100% " 라고 말할 때 < 리얼 > 은 근사하고, 더 웃기고, 더 무섭고, 더 슬프다. 리얼'은 서사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100% 리얼이다. 이 글을 읽기 전에 방광에 오줌이 차 있다면, 괄약근에 똥이 차 있다면 미리 비우시길...... 무서워서 똥 오줌을 못 가릴 것이 분명하기에 !

 

그동안 익명의 사람'으로부터 쪽지를 주고 받았다. 처음 시작은 " 추리소설 좋아하세요 ? 우연히 검색하다가 들렸습니다. " 로 시작했다. 무 담보 즉시 대출의 김미영 팀장'이려나 했더니 지속적으로 쪽지'가 와서 서로 오고가는말대답'을 했다. 날이 덥습니다, 비가 옵니다, 파전에 막걸리 한 잔 하고 싶은 날입니다 등등. 그러던 어느 날, 그가 < 화성연쇄살인사건 > 에 관심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나는 관심이 있다. 내 말이 거짓말이라고 판단된다면 지금 당장 네이버 검색창에 화성연쇄살인'이라고 입력하라. 내 블로그가 최상단에 노출된다.

 

하루 방문객 수가 1200명 정도 되는데 이중 절반은 화성연쇄살인'이라는 키워드'로 접속된다. 화성 살인 사건에 대한 모든 공소시효가 끝났으나 여전히 이 사건'은 시대의 트라우마로 남은 까닭이다. 좋지 않은 예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올 것이 온 것이다. 그동안 나는 공개적으로 ( 이 블로그를 통해서 ) 화성 연쇄 살인범'을 꼭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살아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연락을 달라. 우울한 유령을 목격하고 싶다, 당신과의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말하고 다니고는 했다. 혹시 그 사람일까 ?

 

어제 익명의 쪽지를 보내던 그 사람을 만났다. 내가 상상했던 몽타쥬와는 많이 달랐다. 마른 몸이었으나 키가 컸다. 더군다나 손질이 잘된 창백한 손은 그가 육체 노동자가 아님을 증명했다. 그는 화성의 살인자'가 아니었다. 기껏해야 추리소설 동호회 회원 성격이 강했다. 그는 자신을 출판 에이전시와 관련된 일'을 한다고 소개했다. 나는 소개할 명함이 없었으므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 곰곰생각하는발 님의 추리력에 감탄했습니다.

  당신이 찾고 있는 희대의 살인마'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 보십니까 ?

- 네, 저는 그가 살아 있다고 " 굳세어라 금순아 ! " 믿습니다.

- 후후, 그가 당신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 네에 ?!

- *** 씨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는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낮게 속삭였다. " 곰곰생각하는발 씨가 화성 사건을 추리하신 내용 중 일부는 틀리지만 대부분은 정확히 일치합니다. 제가 당신 글을 프린트로 뽑아서 *** 씨'에게 보여드렸더니 놀라시더군요. 아시다시피, 이 사건의 최종 공소시효는 모두 소멸되었습니다. 그는 법적으로 자유인입니다. 제가 그를 찾아갔을 때에 그는 이미 공소시효가 소멸된 시기였죠. 그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괴물이 된 자의 고백'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그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간암 말기입니다. 그를 설득해서 당시 사건을 기록하고 싶었으나 굳게 입을 다물더군요. 하지만 그가 당신 글을 읽더니 마음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이런 말이 생뚱맞지만 당신은 지금 로또에 당첨된 것과 같습니다. "

 

그렇다, 손질이 잘된 남자의 다양한 핸드 메시지'를 읽으면서 어쩌면 이번 기회'가 나의 마지막 로또인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대한민국 희대의 살인마. 그와의 인터뷰. " 곰곰생각하는발 씨 ! 당신은 어쩌면 제2의 카포티가 될 수 있습니다. 전 당신을 믿어요. 당신의 글솜씨'는 사실 기성 작가들보다 뛰어납니다. 생생해요. 그게 당신의 장점입니다. 무명작가가 희대의 살인마를 만나다. 근사하지 않나요 ? 단 조건이 있습니다. 제가 출판사를 하나 차릴 테니 출판 계약은 저와 함께 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 책이 출간된다면 사회적 파장력은 엄청날 것입니다. 당신과 나는 백 억 로또에 당첨된 것과 같아요. 저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 "

 

아, 눈물난다. 디어 그를 만나는 것이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더니 이제 드디어 그를 만날 수 있다. 익명의 제보자와 다시 만날 약속을 정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모조리 인출해서 정육점에 들려 < 꽃등심 > 을 샀다. 꽃, 등심 꼭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 뒷다리살도 한 근 샀다. 집으로 돌아와서 뒷다리살은 개'에게 줬다. 맘껏 먹거라 ! 꽃등심에서 꽃은 보이지 않아서 살짝 실망했으나 정육점 주인을 고발할 생각은 없다. 붕어빵에도 붕어는 없으니 말이다. 하여튼, 고기 참... 찰지다. 맛있다. 7월 16일 그를 만나기로 했다. 잠이 오지 않는다.

 

 

 

 

 

 

 

 

 

 

 

 

 

 

- 에필로그

 

" 곰곰생각하는발 씨 되시지라 ? 여그 경찰슨디유. 며칠 전에 *** 만나셧지라 ? 으메... 문어발 다리 모냥 우라지게 사기쳤구마잉. 당신에게 화성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혹시 접근혔소 ? 뭐시라... 거... 음 제2의 카프린가, 뭔가... 그, 그러제. 그 카포티... 응, 그려 카포티 ! 그 사람 유명한 사람인가 보오 ? 아, 그러지라. 경찰도 교양 없스믄 못 해먹겠소. 하여튼... **경찰서로 출두하시요잉 ? 아직도 모르것소. 사기요, 사기. 화성 살인범 르뽀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출판 운운하다가 나중에 출판사 같이 차리자며 당신에게 돈 뜯을 모양이었습디다. 아따,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요 ? 지금 그 작자에게 속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요. 이름만 불면 다 아는 작가들이 줄줄이 엮였단 말이외다. 아니... 글쓰는 양반들 똑똑하지 않나 ? 죄다 속아넘어가네. 이문열, 황석영, 은희경, 공지영, 박민수 ? 아, 박민수가 아니라 박민규, 김연수, 김영화 아니 김영하 등등의 작가들이 이 작자 꾐에 빠져서 바친 돈이 모두 50억이요. 하이고... 작가 양반들 똑똑한 척은 우라지게 하더니만 멍충이구만. 헛똑똑이구만. 징징거리지 말고 어서 출두하시요잉 ! "

 

 

전화를 끊었다. 시부랄 ! 갈 차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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