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반지 : 포우 그리고 톨킨 .
![](http://image.aladin.co.kr/product/1644/74/cover150/e862435500_1.jpg)
< 이발소 그림 > 이라는 말‘이 있다. 그림에 대해서 문외한’인 사람이 보기엔 무척 잘 그린 그림이지만 동시에 조금이라고 그림에 대한 조예가 있는 사람이 보면 예술적 가치가 제로‘인 그림을 말한다. 더군다나 복사한 그림’이다. 이것이 바로 < 이발소 그림 > 에 대한 정의이다. 더욱 특이한 점’은 액자에 유리까지 끼워져 이발소 벽 중앙에 딱 하니 걸려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그림이 가짜라는 사실’을 잘 안다. 왜냐하면 이발소 주인은 원본을 소장해서 감상할 만큼 여유 있는 삶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에 800억짜리 모나리자 그림을 이발소에 걸어둔다면 어떻게 될까 ? 도둑은 800억짜리 그림 대신 십 원짜리 800개가 들어있는 돼지저금통을 뜯느라 땀을 뻘뻘 흘릴 것이다. 도둑이 이 그림을 훔치지 않은 이유는 물건과 장소'가 불일치하기 때문이다. 포우의 < 도둑맞은 편지 >에서 장관이 선보인 계략은 바로 물건과 장소의 불일치’였다.
왕비와 공작은 왕 몰래 불륜 관계‘에 빠진다. 그 당시엔 삐삐나 핸드폰 그리고 메신저’가 없는 관계‘로 주로 편지 왕래’를 통해 애끓는 욕망’이 전달되었을 것이다. 연서는 오고 간다. 오가는 횟수가 많을수록 내용은 보다 더 음란하다. 그런데 이들의 < 오고가는 황홀한 말풍선 > 에 갑자기 장관‘이 끼어들어서 이 편지’를 훔친다. 이 편지가 왕에게 전달될 경우 공작과 왕비‘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반면 편지’를 소유한 장관은 무소불휘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공작과 왕비의 불륜을 미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편지를 가진 자는 두 불륜 연인을 협박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빨아먹을 것이다. 상황이 다급해지니 왕비‘는 경시총감을 시켜 장관 몰래 장관의 집을 이 잡듯이 뒤진다. 그러나 편지’는 그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탐정 뒤팽‘은 이 편지’를 손쉽게 찾아낸다. 많은 사람들이 투입되어 몇 달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던 편지를 뒤팽은 어떻게 손쉽게 찾을 수 있었을까 ? 신기한 마술도 그 비밀을 알고 나면 싱겁듯이, 뒤팽의 수사’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 편지‘는 장관의 책상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구겨지고, 찢어지고, 더렵혀진 채’로 그렇게 !
결국 이 편지‘는 누구나 볼 수 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이다. 장관은 그것을 노렸고, 뒤팽은 그것을 알아차렸다. 편지를 찾은 뒤팽은 그것을 왕비에게 돌려준다. 자, 이제 편지’는 다시 발신인과 수신인‘에게 돌아갔다. 그렇다면 장관은 어떻게 되었을까 ? 아마도 공작과 왕비의 계략으로 죽은 목숨이 되었을 것이 뻔하다. 대략 해피엔딩 !
반지의 제왕.
![The Two Towers by Ian Wilding](http://25.media.tumblr.com/tumblr_llwt58xLpS1qe2w1uo1_500.png)
< 반지의 제왕 > 은 < 도둑맞은 편지 > 의 알레고리‘와 유사하다. 차라리 “ 도둑맞은 반지 ” 라고 해도 근사한 제목이 되었을 것이다. 반지’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서약이다. 편지의 거래 방식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것은 둘만의 매우 은밀한 약호인 셈이어서 제 3자‘가 취득하면 곤경에 처하게 된다. 은밀한 내용이 담긴 편지’란 은밀한 내용이 담긴 셀카 동영상‘과 같다. 다만 기록 저장 장치’가 다를 뿐이다. 그런데 이토록 지극히 개인적인 물건이 제 3자의 손에 들어가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는 이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이 물건의 원 소유자들을 협박해 이득을 취할 것이다. 이렇듯 반지‘는 왕비의 편지’처럼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권력이 이동된다.
편지와 반지‘는 한갓 값싼 종이와 한 돈의 금’일 뿐이지만 이 물건을 가진 자는 고스란히 사물의 주인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승계 받는다. < 도둑맞은 편지 > 에서 편지를 누가 소유하느냐에 따라서 권력의 주체가 바뀌듯이, 반지 또한 지금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권력의 주체는 바뀐다. 그러므로 두 서사에 나오는 두 개의 사물은 서로 다르지만 동일한 알레고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편지는 곧 반지‘이다. 물건에 깃든 주인의 정령’이라는 주제는 이제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편지’가 왕비‘를 보호하듯이, 제자리로 돌아온 반지’는 공주‘를 보호한다. 같은 이야기’를 두 작가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풀어쓴 것이다. 전자에서 탐정 뒤팽이 왕비‘를 위기에서 구했다면, 후자는 소인족인 호빗’이 공주를 위기에서 구했다. 포우는 추리적 요소로 극을 전개시킨 것이고, 톨킨은 판타지‘를 끌어들인 것이다. 전혀 다른 내용 같지만 같은 내용이다. 코드’를 바꾼 것뿐이다. 그렇다면 톨킨은 포우의 작품을 표절한 것일까 ? 작곡은 동일하나 가사만 살짝 바꾼 노래일까 ?
연대순으로 보면 톨킨이 포우’의 작품을 읽었을 것이다. 시대의 지성인 톨킨이 그 유명한 포우의 < 도둑맞은 편지 >를 읽지 않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다고 해서 톨킨이 작정하고 포우의 글을 훔쳤을 리’는 없다. 톨킨은 포우의 단편‘을 읽었고, 그것은 톨킨의 기억 속에서 무의식으로 남아 새로운 형태의 소설’로 창작되었을 것이다. 톨킨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히 펄펄 뛰겠지만 원래 원형성‘이라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이란 없다. 작가란 자신의 작품이 오리지널’이라고 주장하지만 새로운 창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의 원본과 수많은 복제본‘이 존재할 뿐이다. 포우가 위대한 이유는 바로 그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오리지널’을 새롭게 창조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그는 이 광대한 사고의 은유’를 매우 짧은 분량의 텍스트 속에 함축시켰다는 점이다. 그것은 작은 컵 속에 바닷물‘을 담는 신기와 같다. 또한 톨킨의 서사’가 위대한 이유는 이 복사본‘이 복사본인지 모르게 감쪽같이 오리지널인 것처럼 속였다는 점이다. 내가 폭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 도둑 맞은 편지 > 에서 장관은 편지/ LETTER'라는 단어를 잡동사니/ LITTER'로 둔갑시킨 것이다. ( 어수선하게 흩어진 물건, 잡동사니; 찌꺼기, 쓰레기; 난잡, 혼란 ) 장관은 말 그대로 중요한 편지‘를 어수선하게 흐트러진 물건’으로 위장했다. 누가 보아도 그것은 잡동사니‘였으며, 구겨지고 찢어졌으며, 더렵혀진 쓰레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뒤팽‘은 장관의 속임수를 단번에 간파한다. 뒤팽이 장관의 집을 방문하여 눈여겨본 것은 고급 양장의 편지 LETTER’가 아니라 더러운 편지 / LITTER'였다. 이렇듯 사물과 장소‘가 서로 엇나가면 소동’이 일어난다. < 도둑맞은 편지 >에서 편지는 편지의 수신자 혹은 발신자‘가 보관해야 하는데 제 3자인 장관’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배달 사고‘다 ! ( 이언 매큐언의 < 속죄 > 에서는 나쁜 단어가 들어간 편지지’를 실수로 편지봉투에 넣어 수신자에게 잘못 전달되는 바람에 발신자는 그 후 인생 막장을 달린다. ) < 반지의 제왕 >에서의 반지‘도 마찬가지다. 이런 < 엇박자 보관소 > 는 낱말 그대로 LITTER'를 호명한다. 모든 소동극’은 사실 물건과 그 물건을 보관하는 상자‘가 엇박자로 빗나갈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보자.
첫 번째 예 : 열차‘를 물건 상자’라고 하자. 그렇다면 열차라는 이름의 상자 속에 들어갈 물건은 무엇일까 ? 당연히 승객‘이다. 승객은 열차라는 포장의 상자 속에 보관되어서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것이다. 두 번째 예 : 다이너마이트‘라는 위험물’이 있다. 이 물건의 상자‘는 무엇일까 ? 당연히 무기고’가 될 것이다. 이곳에는 다이너마이트‘를 화나게 해서 버럭 하게 할 벼락, 전기, 화기’로부터 차단되어서 이 위험물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역할을 것이다 그런데 열차라는 보관 상자 안에 다이너마이트라는 물건’이 숨겨 있다면 어떻게 될까 ? 더군다나 시한폭탄‘이 예정된 시간을 향해 째깍 째깍 참새처럼 지저귄다면 ? 이 엇박자‘는 일대 소동을 일으킬 것이 분명하다. 영화로 치자면 이 다이너마이트의 존재를 관객이 모르면 서프라이즈’가 되고, 다이너마이트가 열차 안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면 서스펜스‘가 된다. ( 히치콕의 그 유명한 정의 ! )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있다.
당신 남편‘은 현재 미국으로 출장 중’이다. 그런데 우연히 남산 하얏트 호텔 로비‘에서 당신의 남편을 목격한다. 남편/물건’은 미국/보관 상자‘에 있어야 정상인데, 남편/물건은 지금 이상한 장소/보관 상자‘에 있는 것이다. 아주 곰 같은 아내 곰곰 씨’가 아닌 이상은 보는 즉시 이 상황‘을 눈치 챌 것이다. 그것은 곧 불화의 씨앗이 될 것이다. 이렇듯 사물과 장소가 엇나가면 소동’이 일어난다. 명심할 것 ! 이러한 " THE LITTER " 들의 출몰‘은 본질적으로 혼란, 불화, 공포’를 발생시킨다. 우리가 귀신‘을 두려워하는 까닭‘은 저승에 있어야 할 물건이 이승’이라는 장소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라캉은 < 도둑맞은 편지 > 텍스트를 독해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린다. 편지는 반드시 수신인’에게 도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정상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 편지들이 엉뚱한 곳으로 배달이 되면 일상적인 것은 혼란에 빠진다. 연필통 속엔 필기구가 있어야 하고, 기타 케이스엔 기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보낸 편지는 반드시 당신이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