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신문을 읽었어.

남산 아래 양동'에서 몇 년'을 보냈다. 서울역 창녀촌'이 있는 동네'다. 앵벌이들도 이곳에 모여 살았다. 늙고 병들어서 매춘을 할 수 없는 창녀들은 앵벌이들의 돼지엄마'가 되어서 그들의 돈을 노렸다. 창녀들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던 포주와 돼지엄마'는 쪽방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에게 비싼 숙박비'를 뜯어냈다. 아이들이 비싼 숙박비'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다시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러미널로 불리는 알약 때문이었다. 돼지엄마는 약사와 뒷거래를 해서 다량으로 알약을 구입해서 백 원이면 살 수 있는 것을 만 원'에 팔고는 했다. 아이들은 모두 러미널 중독자'들이었다. 날마다 열 알'을 삼켰다.
그들은 감기약 알약인 러미널'을 다량으로 삼킨 후, 환각 상태'에서 구걸을 했다. 이 약을 다량으로 삼키면 환상이 보인다. 어머 ! 별이 반짝반짝. 정확한 원인은 모르겠으나 알약 성분은 근육을 마비시켜서 인간 광우병 환자'와 비슷한 병증을 보였다. 침을 흘리고, 바닥에 주저앉고, 손을 심하게 떤다. 뇌 신경계를 자극시키는 것이 분명했다.약에 취한 어린 앵벌이들은 서울역'에서 1호선과 4호선을 타고 구걸을 했다. 사람들은 앵벌이들을 보며 멀쩡한 사람이 구걸을 위해서 앉은뱅이' 흉내를 낸다고 말하지만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들은 약 기운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닥이 될 수록, 캄캄한 밑바닥을 보일 수록 돈벌이는 좋았다. 얼마만큼 밑바닥 메소드 연기'를 잘하느냐에 따라 어른의 동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문어 새끼, 아이들은 바닥을 기며 구걸을 하는 자신을 문어에 비유하고는 했다. 뼈 없는 짐승 흉내를 내며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조롱 섞인 비하'였지만 나는 그 말이 슬펐다. 뼈 있는 짐승이 뼈 없는 짐승 흉내'를 내다니. 어쩌면 저 구걸은 숭고한 노동이리라. 예수님이 살아 계셨다면 이곳에 천막 교회'를 열었을 것이다. 가장 낮은 곳, 밑바닥이 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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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시다시피, 남산 아래에는 두 개의 도서관이 있다. 남산 도서관과 용산 도서관이 10미터 간격을 두고 모여 있었다. 내 하루의 일과는 도서관에서 시간을 때우는 것이었다. 도서열람실이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들어가 책을 읽었다. 하루에 3권씩 읽었다. 열람실은 집중이 잘 되어서 속독이 가능했다. 비봉 출판사에서 4권으로 나온 맑스 < 자본론 상, 중, 하 1,2 > 를 이틀 만에 읽기도 했다. 읽고, 읽고, 읽고, 읽는 것이 전부인 시간'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책을 기계적으로 읽는 내 자신이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시간'보다 가만히 앉아서 나무가 물이 들어가는 창밖 풍경을 오랫동안 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그러다가 재미를 붙인 것이 옛날 신문'을 보는 것이었다. 일반 책이야 도서관에 오지 않아도 책을 사서 보면 되지만, 옛날 신문을 읽을 수 있는 곳은 도서관이 유일하지 않던가 ? 그때부터 옛날 신문일 읽기 시작했다.
오늘의 뉴스가 아닌, 10년 전, 20년 전, 30년 전 뉴스'를 읽었다. 시장 생선장수가 버린 생선 내장을 먹고 죽은 기사'도 있었다. 아이들이 굶자 아버지는 시장에 버려진 생선 내장으로 생선국을 끓여 먹었는데, 그 생선이 복어 내장이라는 가슴 아픈 기사'도 읽었다. 아주.... 오랜 전 이야기'다. 새마을 운동 이야기도 읽었다. 박정희는 단골 뉴스'였다. 전두환은 강철 군화를 벗고 대통령이 되었고, 사람들이 날마다 민주화를 외치며 자살을 했다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아, 옛날 신문은 세계 문학 전집'보다 재미있었다. 아침 9시에 1986년도 9월 6일자 신문을 읽기 시작해서 1986년도 12월 24일 신문'을 읽을 때가 되면 도서관을 나오고는 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날마다 찾아와서 옛날 신문을 읽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 하지만 이 취미'도 몇 달'을 가지 못했다. 도서관에 비치된 낡은 신문은 모두 보았으니깐 말이다. 사람들은 내가 옛날이라는 환상에 빠져서 산다고 말했다. 넌, 현실적이지가 않아 ! 핸드폰이 나오는 세상에 그 옛날 섬 마을에 불이 들어온 기사'를 탐하고 있으니 그들의 지적이 맞긴 했지만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나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귀기울여 듣고는 조용해 말하고는 했다. 조까 !
옛날 신문을 읽지 않기 시작하면서 도서관을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서울역이 지긋지긋했다. 야밤도주하듯, 서울역을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 조까, 서울역 ! 빠이빠이다. 앵벌이들의 소식도 그 이후로는 알지 못했다. 나는 어느새 신간 뉴스'만 골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뉴스투데이'만 보았다. 그럴 수록 서울역에서의 이야기들은 모두 꿈같은 농담이 되어버렸다.
오래만에 남산 도서관'에 갔다. 단풍 구경하러 갔다가 옛 생각이 나서 들렸다. 이곳에서 옛날 신문을 읽고는 했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앵벌이와 돼지엄마를 만났지. 그러데 그들은 다 어디 갔을까 ? 그 많던 서울역 앵벌이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 문득 궁금해서 열람실에 들려 옛날 신문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봄날, 꽁꽁 언 수도가 터지듯 눈물이 났다. 한때 나는 옛날 신문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