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지음 / 창비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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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그이 어데 있노 ? "

 

 

 

 

옷을 잘 입는 사람'은 두 가지'로 나뉜다. 유행에 민감하거나 유행에 ( 전혀 ) 민감하지 않거나. 그런데 유행에 민감한 사람'을 두고 감각'이 있다고는 하지만 개성' 있다고는 하지 않는다. 사실, 개성이란 유행'이라는 획일성'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이다. 문체도 마찬가지다. 조경란이나 은희경의 문장을 보고 감각이 있다고 칭찬할 수는 있으나 개성 있는 문체'라고 할 수는 없다. 반대로 김훈의 문장을 보고 감각 있다고 말하는 것'은 ( 솔직하게 말하자면 ) 그 작가에 대한 모독이다. 좋은, 문장의 조건 중에 감각'은 여러 가지 좋은 예의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개성'은 좋은 문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성석제는 훌륭한 작가'다. 황만근'은 바보'다. 띨띠리, 띨빵, 반편이, 쪼다-쉬, 빠가야로, 기봉이, 영구, 헐렁이, 개구리, 깍두기'다. 하지만 그'는 사실 알차다. 신대리 농민들이 모두 빚더미'에 시름시름 앓을 때에도 우리의 만근'은 근면과 성실로 가계 빚 하나 없이 잘 산다. 그뿐이 아니다. 그는 마을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열심히 일을 한다. 그는 < 마을길 풀깎기, 도랑 청소, 공동우물 청소...... 용왕제에 쓸 돼지를 산 채로 묶어서 내다가 싫다고 요동질하는 돼지에게 때때옷을 입히는 > 일도 한다. 궂은 일은 모두 도맡아서 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다.

 

이 정도면 이름값'한다.

 

그렇다. 그의 이름, 만근'이 아닌가 ! 한 근'에 560g 이니, 만 근'이면 6000kg'이요, 그램으로 따지면 6000000g, 톤으로 따지면 6톤, 관으로 따져도 1600관이다. 니미럴 ! 이 정도의 무게'면 어처구니보다 무시무시한 놈'이다. 하지만 신대리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반근이1'라고 놀린다. 그렇다, 사람들은 그가 바보라는 이유로 만근이라는 이름을 < 돼지고기 반근만 > 한 " 반그이 " 라고 부른다. 만근이라는 무게감 있는 이름은 < 누구맨구로 반동가리가 났 > 다. 반 근'이라면 300g인데, 무시해도 유분수지, 만근이를 좆만한 놈'으로 빈정거리는 것이다. 아이콩, 너무, 므므므므... 무시한다 ! 그런데 황만근'이 사라지자, 그의 부재'는 생각보다 큰 구멍'이다. 그는 돼지고기 반 근'이 아니요, 좆만한 놈도 아님이 판명난다.

 

 

" 만그이 자슥이 있었으마 내가 돈을 백만 원 준다 캐도 이런 일을 안 할 낀데. 아이구, 이 망할놈의 똥냄새, 여리가 싸놔 그런지 독하기도 하네. 이기 곡속한테 독이 될지 약이 될지도 모르겠구마. "

 

 

성석제의 단편 <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 는 제대로 된 입 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소설이다. 경상도 사투리'에서 쏟아지는 걸죽한 구술'을 솜씨 좋게 기술'하는 작가의 능력은 가히 명불허전'이다. 그는 반근'이 보다 반그이'가 주는 사실적 구술의 힘'을 속도감 있게 밀어붙인다. 리얼리티'가 본질적으로 서사의 속도'를 감속시킨다는 측면에서 보면, 그가 쟁취한 빠른 속도감'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의 문장은 매우 빠르게 읽힌다. 하지만 오래 남는다. 가볍게 읽히지만 가볍지 않다. 그것은 마치 쉼표 없이 진행되는 악보' 같다. 쉴새없이 지나왔지만 노래'가 끝나고 났을 때 밀려오는 그 둔중한 멜로디' 말이다. 성석제의 < 황만근 > 은 속도의 힘, 구술의 힘'이 보이는 단편이다. 여러분에게 읽기를 권한다.

 

 

 

 

 

 

+

 

그 많던 바보'는 다 어디 갔을까 ? 반편이, 광년이, 띨띠리, 쬬다, 헐렁이, 만복이'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의 조롱과 경멸이 부끄러워서 숨은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그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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