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볼 : 우린 죽지 않아!!!
아웃사이더'들이 하나 둘 모여서 외인구단'을 만든다. 이들은 모두 재능은 있으나 마인드 컨트롤'에 문제가 있는 낙오자(들). 이런 이들에게는 동기 부여가 중요한 것. 구단주는 시리즈 기간 내내 단 한 경기'라도 지지 않을 경우 20억이 넘는 돈을 준다는 파격 제안을 한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무패의 신화'를 이룩한다. 만화 같은 이야기다. 당연하다. 지금 나는 이현세의 < 공포의 외인구단 > 이라는 만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니깐 말이다. 이런 만화 같은 이야기'는 종종 재현되고는 한다. 템파베이의 기적'이 그 좋은 예이다. 템파베이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은 0.01 % 였다. 보스턴 레드삭스 팀을 응원했던 나는 0.01%의 기적을 위해서 템파베이를 응원했다. 그리고 템파베이는 마지막 경기에서 8회말 7 : 0에서 7: 8 로 승리를 거둔다. 아, 눈물이 났다 ! 야구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야구 관련 서적은 모두 열혈 야구 마니아들에 의해 쓰여진다. < 야구란 무엇인가 > 는 야구 전문 기자의 회고담이다. 그리고 스티븐 킹의 < 톰 고든... > 은 보스톤 레드삭스 팬인 킹의 헌사 같은 작품이고, < 야구의 심리학 > 또한 야구 팬'인 심리학자의 애정에서 비롯되었다.
봄이 오면 야구가 시작된다.
실미도를 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볼 때마다 전립선에 걸린 중년 남성'처럼 실실 웃음이 나서 극장 안에서 혼자 실실거렸던 그 실미도. 1000만 관객 동원의 신화! 그 영화를 지금에서야 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흥행 대박 때문에 특별 보너스'를 받기도 했으나 나는 이 영화가 지독하게 혐오스러웠다. 소리만 지르면 연기가 된다고 착각하는 설경구, 코맹맹이 목소리 때문에 늘 거슬렸던 안성기의 연기'는 기대 이하'였고, 촌스러운 색보정, 점프컷을 아슬아슬하게 빗겨간 위험한 편집'은 영화적 완성도'를 떨어뜨렸다. 개인적으로 10만 예상했으나 1000만이어서 의아해했던 영화였다.
이 영화는 내가 싫어할 만한 모든 요소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백과사전과 같았다. 남성적 서사'에 대한 체질적 혐오'를 가진 나는 건들건들 건달 새끼들이 떼거지'로 나와서 " 우린 죽지 않아 !!!!!!" 를 외칠 때마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야, 이 시부럴 놈들아 ! 소리 칠 때 느낌표 ( !! ) 두 개'까지만 사용하자. 그게 관객에 대한 예의다. 고함인지 함성인지 모를 남성성의 과시'를 듣고 있으니 짜증이 났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남성연대'를 위한 판타지'에 불과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영화를 다 보지도 못하고 극장문을 박차고 나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오늘 이 영화를 끝까지 본 이유는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서사'가 읽혔기 때문이었다. 속으로 " 어라, 이것봐라 ?! " 했다. 알고 보니 좋은 영화'라는 말이 아니다. 영화는 볼 때마다 점점 더 재미가 없다. 하지만 이 영화를 < 스포츠 영화 > 로 읽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 가시'가 많은 민물고기 살을 바르듯 조심스럽게 뜯어보면 이 영화는 영락없는 < 공포의 외인구단 > 이거나 < 우리 생애 찬란한 순간 > 이다. 그러니깐 " 실미도 " 는 시시껄렁한 실력을 가진 놈들을 훈련시켜 최고의 팀'으로 조련시키는 장소다. 지옥 훈련 과정'을 통과할 때마다 실미도'는 무적이 된다. 최강이 된다.
스포츠 영화답게 그들의 목표는 금메달이다. 김일성의 목을 따는 것 ! 그것이 바로 실미도 부대가 넘어야 할 최종 목표다. 그들은 김일성의 목'이라는 이름의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고된 훈련을 견딘다. 실미도 부대 대장인 안성기는 코맹맹이 소리로 금메달을 따면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은 사라지고 부와 신분이 보장된다고 부대원을 독려한다. 대충... 그런 이야기. 그렇다, 강우석'은 스포츠 영화를 전쟁영화'로 둔갑시켜 유통시킨 것이다. 도대체 뭐가 다른가 ? 좋게 말하면 상업적 안목이고, 나쁘게 말하면 능청'이다.그나마 이 영화를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스포츠 서사'를 전쟁 서사'로 변용시킨 시나리오의 힘이다. 꽤 알차다. 아이러니하게도 밤꽃 냄새 작렬하는 남성 판타지 영화의 시나리오'를 여성이 썼다는 점이 특이하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미친년처럼 실실거린 이유는 등장 인물들이 모두 딱딱하게 발기된 자지'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훈련 도중 다리'를 다친 찬석/강성진'이 동료들을 향해 울면서 죽지 말고 살아서 돌아오라고 감동적으로 울먹일 때 상필/정재영'은 외친다. " 우린 죽지 않아 !!!!! " 나는 이 말이 꼭 자신의 발기한 남근을 향한 바람'처럼 들렸다. 나의 남근은 죽지 않아. 아침마다 눈 덮인 후지산을 보게 될 것이야.
이 영화의 흥행 요인'을 가만히 살펴보면 IMF 이후 본격적으로 드러난 초라한 남성성'에 대한 위기 의식'이 한몫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는 그 옛날의 아버지가 아니다. 고개 숙인 아버지'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빠르게 확산되고, 능력 있는 여성이 남성들과 당당하게 어깨를 겨루자 남성들은 위기 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등장한 영화가 < 실미도 > 다. 영화 속 남성들은 모두 나는 죽지 않는다고 외친다. 고개 숙이느니 차라리 꼿꼿이 고개를 들고 장렬히 전사하리라. 바로 이 지점에서 남성들은 희열을 느낀 것은 아닐까 ?
남성들이 여성을 치열한 밥그릇 싸움을 펼쳐야 할 경쟁자'라고 인식하게 된 계기'가 바로 IMF'였다. 경제적 몰락'은 곧 남성성의 몰락'을 의미했다. 단단한 남근이었던 아버지는 하루 아침'에 흐물흐물한 물자지'였음이 뽀록났다. 아, 아버지의 몰캉몰캉한 개불 ! 아버지는 서해 바다 더러운 짠물 먹은 개불이었어. 이러한 위기 의식은 곧 여성에 대한 이유없는 혐오로 이어졌다. 페미니즘에 대한 노골적인 증오, ** 녀와 김여사의 반복적 재생'은 아침에 후지산을 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야기한 현상이다. 하지만 아침에 후지산을 못 보면 어떤가 ? 나는 3년 동안 단 한 번도 후지산을 본 적이 없다. 후지산은커녕 도봉산도 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럭저럭 살고 있다. 후지산을 볼 수 없다고 해서 여성을 혐오하지는 않으련다. 그놈의 자지'가 뭐 그리 훌륭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