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겁다.
1.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한 대 패주고 싶다는 욕망의 과다한 표현이지만, 한국인은 " 죽이다 " 라는 말이 붙어야 입말이 제대로 살아난다. 배 고파 죽고, 배 불러 죽고, 보고 싶어 죽는 것이 한국인의 언어 습관이다. 사랑도 죽도록 사랑한다고 해야 비장해지고, 미움도 " 미워 죽겠어 ! " 라고 말해야 실감이 난다. 대한민국은 死의 공화국'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이 화끈한 상상'은 남성과 여성 중에서 어느 쪽이 더욱 간절할까 ? 내가 굳이 말 안 해도 짐작이 가능하다. 폭력의 주체인 가해자는 주먹을 휘두르지만 피해자는 상상 속에서만 칼을 휘두른다. 아무래도 가부장 사회에서 당하는 쪽은 여성이 아니던가. 이 칼부림이 타자를 향하지 못하고 자신을 향하는 것이 바로 자살'이다.
살인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은폐'는 어렵다. 더군다나 당신이 여성'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 중 하나가 살인에 공모자를 끌어들이는 방법이다. 똥 눌 때와 살인 할 때는 오로지 혼자여야 한다. 그 어떤 도움도 없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남성의 평균 몸무게는 70kg이다. 40kg인 당신이 이 시체를 처리한다는 것은 어렵다. 설령 커다란 여행용 가방에 넣어서 낑낑거리며 옮긴다고 해도 증거는 곳곳에 남는다. 엘리베이터 안의 시시티븨가 창백한 당신의 얼굴과 거대한 여행용 가방을 비출 것이다. 용케 피한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대한민국만큼 곳곳에 시시티븨'가 깔린 곳도 없기 때문이다. 가장 멍청한 살인자는 빅 사이즈 여행용 가방을 거리에 끌고 나오는 것이다. 강력계 형사들은 당신이 이 커다란 가방을 끌고 돌아다닌 흔적'에서 빙고를 외칠 것이다.
똑똑한 독자라면 내가 곧 말할 내용을 간파했을 것이다. 여행용 가방은 안 되지만, 이스트팩 가방'은 매의 눈과 같은 형사의 감시에서 자유롭다. 왜냐하면 사람은 이스트팩 가방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를 냉장고 안에 넣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조각 조각 잘라서 넣으면 가능하다. 기리노 나쓰오 여사의 말을 인용하면 토막 살인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적합한 작업이다. 시체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무겁다. 두 팔을 쓰러진 남자의 겨드랑이에 넣어 힘을 줘도 꼼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이 < 무겁다 > 는 곧 < 무섭다 > 로 바뀌게 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무거운 냉장고를 옮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냉장고 안의 반찬통을 꺼내는 일이다. 다음의 목록'은 여성을 위한 지침서'다. 윤리적인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 난 당신과 논쟁하고 싶지 않다.
냉장고'를 옮길 때는 냉장고 속 내용물을 모두 빼야 한다. 힘이 장사라면 상황은 달라지겠으나 당신은 연약한 여자다. 더군다나 두려움에 떨고 있다. 수고스럽지만 냉장고 문을 열고 그 속에 있는 것들을 빼내야 한다. 그 방법은 기리노 나쓰오의 걸작 하드보일드 범죄 소설 < 아웃 > 에 자세히 나온다. 기리노 나쓰오의 표현을 빌리면 손질하는 작업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적합한 작업이다. 리플리 시리즈의 하이스미스는 < 낯선 승객 > 에서 교환살인'이라는 기묘한 방식'을 제안한다. 서로 죽이고 싶은 대상을 대신 살인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깐 피해자와 가해자의 연결고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바로 이 철저한 익명성'은 완전범죄'를 완성시키는 주요 요소'로 작동한다. 그런가 하면 미저리에서는 납치, 감금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수많은 방법이 있다. 선택은 당신 몫이다.
2.
며칠 동안 책 정리'를 했다. 책장 7개 분량의 책을 다섯 개의 책장 안에 구겨넣어야 하다 보니, 이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이십 년 전 어머니는 보유한 주식이 이틀 연속 상한가를 치며 하루에 백만 원의 시세 차익'을 남기자 들뜬 나머지 통 크게 오동나무 책장 하나를 사주셨다. 당시 어머니의 회고에 의하면 벼락 부자'가 되는 줄 알았단다. 뜬구름 위를 걷는 심정이요, 무지개와 장밋빛 인생이 보였다고 ! 결과는 1억 탕진'이었다. 현찰로만 1억을 주식으로 날렸으니 그때 화폐 가치'로 따지면 아파트 한 채 날아간 것이다. 어머니가 주식으로 남긴 재산은 이 오동나무 책장 하나가 전부였다. 내가 이 책장을 기특하게 여기는 이유는 칸막이의 변형이 없다는 점이다. 책장이 깊어서 책장 두 개 분량의 책을 수납할 수가 있는데 20년 동안 이 엄청난 무게'를 잘 견디는 것으로 보아 오동나무'가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반면 나머지 싸구려 책장들은 몇 년을 못 버티고 칸막이가 늘어지기 일쑤였다. 하루는 술에 취해 잠을 자다가 천둥소리에 벌떡 일어났더니 천둥소리가 아니라 책장 칸막이가 부서져서 책이 쏟아질 때 나는 소리'였다. 당신은 내 말을 믿을 지 모르겠지만, 화가 잔뜩난 나는 책장을 없애기 위해서 책 400권을 팔았다. 내가 받은 돈은 70만 원이 조금 넘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다시는 7만 원짜리 책장은 사지 않으리라 ! 하지만 이 굳은 맹세'는 파기되었다. 책 판 돈으로 배 터지게 삼겹살'을 사 먹고 남은 돈 7만 원으로 다시 싸구려 책장을 샀다. 내 인생은 베니어합판'이구나 ! 아, 나란 존잰 이런 존재.......
후배 중에 음악'을 하는 녀석이 있었다. 음악을 하다 하다 안 되니깐 진로를 바꾸었는데, 놀랍게도 의료기기 판매상이었다. 고가의 의료기기'를 파는 것이다. 팔기만 하나 ? 기기 작동법을 의사에게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래서 그 친구는 날마다 수술실에 들어가서 뼈를 자르고, 살을 찢는다. 어때요, 뼈가 잘 잘리지요 ? 음악하던 놈이 그짓을 하고 있는 거다. 곰곰 생각하니, 사람 일이라 것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 누가 그 녀석이 수술실에서 사람 뼈나 자르고 있을 거라 생각이나 했나.
만약에... 만약에 말이다. ( 사람 일이란 모르는 것이니깐 ! ) 어쩔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해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고 치자. 도덕적 인간이라면 자수를 하는 것이 마땅하나, 당신은 일주일 후면 대기업 사장의 딸과 결혼하게 되어 있다. 곧 아내가 될 여자는 아름답다. 절세미인이다. 누워도 젖가슴은 싱싱한 계란 노른자'의 형태를 유지한다. 장인 어른은 간암 4기 말기다. 외동딸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 자수하는 순간 결혼은 없던 것이 된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사건을 은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단 한번도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이나 범죄를 은폐하는 방법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준비했다. 다음 독서 목록은 불한당의 독서 목록'이다.
대부분의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쓸모없는 목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목록이 매우 유익할 것이다. 완전범죄'를 위해서는 반드시 참고해야 될 책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목록의 도움으로 당신은 완전 범죄'에 성공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차가운 철창 안의 딱딱한 바닥 대신, 누워도 퍼지지 않는 싱싱한 계란 노른자 같은 젖가슴을 주무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명심할 것 한 가지 ! 이 목록은 완전 범죄'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목록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범죄의 유형을 일목요연하게 폭로한 목록이기도 하다. 범죄자의 필독서이면서 동시에 탐정의 필독서이기도 하다. 누가 이길까 ? 모를 일이다.
잔혹과 매혹은 실화'를 다룬 기록물'인데 문학 작품보다 더 문학적'이다. 여기에는 근친과 도플갱어, 계급과 동일시가 묘하게 섞여서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눈여겨볼 만한 작품이다. 그리고 <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 와 < 마인드 헌터 > 는 전직 프로파일러'의 기록들이다. 끝으로 리 고프의 < 파리가 잡은 범인 > 은 곤충 법의학자'의 책이다. 생각보다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