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나이트 : 가면으로 말하기
골딩은 소년 랠프와 잭을 통해서 선과 악'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소년 잭'이 자신의 얼굴에 칠을 해서 가면을 만들고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장면이었다. 바로 이 지점부터 잭은 문명을 버리고 야만'을 선택한다. 으르렁거리며, 짐승의 목에 칼을 찌르고, 랠프 무리를 위협한다. 그러니깐 잭은 얼굴에 분장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짐승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골딩은 잭의 가면 뒤에 숨기 - 행위'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일까 ?
필립 짐바르도의 < 루시퍼 이펙트 > 에서는 익명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는 문화인류학자 왓슨이 수집한 사례를 들어 익명성과 폭력성의 상관관계'를 지적한다. 왓슨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분장을 한 부족과 분장을 하지 않은 부족'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두 개의 대조군을 통해서 밝히려고 했던 것은 익명성'과 폭력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분장을 한 부족 중 80%는 적에게 매우 파괴적이었고, 분장을 하지 않는 부족은 적에게 파괴적인 행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전투 희생자들이 살해당하거나 고문당하거나 불구가 된 사례 중 90%는 얼굴에 분장을 한 사람들로 나타났다. 가면 뒤로 얼굴을 가리는 행위'가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골딩은 그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카드게임에서 <조커> 패는 소속이 없다. 스페이드킹’에 속한 집단도 아니고, 클로버, 하트, 다이아몬드 집단’도 아니다. 조커는 그 누구의 소속도 아니지만 동시에 그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다. 이 패는 nothing이면서 동시에 everything’이다. 아라비아 숫자 0이다. 각 집단의 패들은 자신의 병법을 위해서 <조커> 패를 이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유도한다. 이렇듯 조커는 패 자체로는 점수 합산에서 값 제로’에 해당하는 무용지물이지만, 게임에서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는 영원한 리베로’다!
다들 알다시피 조커’는 광대다, 깍두기다, 찰리채플린이다, 이주일이다. 책사이다. 그리고 내시의 오랜 친구이다. 조커에게는<페니스>가 없다. 있더라도 발기하지는 않는다. 의심 많은 왕들이 광대’를 가까이 하는 이유는 그들에게는 페니스가 없기 때문이다. 조커 패’가 경계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듯이, 광대 또한 nothing과 everything’사이에 걸쳐 있다. 그는굉장히 우스운 놈이지만 동시에 무서운 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얼굴을 단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광대를 통해 보게 되는 것은 분장한 얼굴이 아니라 분장한 가면’이다. 그는 오로지 가면으로 말하고, 가면으로 말하고, 가면으로 말해서, 가면 자체가 얼굴이 된 사람이다.
영화 <다크나이트( 이하배트맨 )> 는 가면/假面과 가명/假名에 대한 이야기다. 브루스 웨인’은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박쥐사나이” 라는 가면으로 살아간다. 명분은 악에 대한 응징’이지만 사실은 초월적 영역’에서 제왕이 되는 것’이다. 반면 <조커> 는 선에 대한 응징’이 목적이지만 최종적 목적은 박쥐 사나이와 마찬가지로 절대권력’을 손에 쥐는 것’이다. 여기서 <악> 에 대한 응징은 비정상적인 대상에 대한 응징을 뜻하고, <선> 에 대한 응징은 정상적인 대상에 대한 응징을 뜻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서로의 대척점에 있는 두 영역’은 모두 <비정상적인> 기형’이다. 조커가 얼굴을 가린 채 가면으로 말하는 프릭스’라면, 배트맨또한 얼굴을 가린 채 가면으로 말하는 프릭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존재가 아니라 같은 존재’다. 쌍생아다.
그렇다면 얼굴을 가린 채 가면으로 말하는 행위의 심리’는 무엇일까 ? 그것은 바로 시늉과 흉내 그리고 모방과 척하기 혹은 과시 욕망 때문에 그렇다. 브루스 웨인’이 <박쥐>를 흉내 내는 이유는 고담 시의 토템 동물을모방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 영화 속 도시 이름인 goth-am’은 속어로 뉴욕 시’ 를 뜻하지만 goth-ic과의 유사성과도 연결된다. ( 고담과 고딕의 어근/goth은 같은 뿌리에서 파생된 것이다. ) 고딕은 중세시대의 미술 양식 중 하나로 뱀파이어 영화나 뱀파이어 패션, 피어싱 문화는 모두 고딕의 영향이다. 그러므로 고담 시티’의 이름이 고딕’에서 비롯되었다면 이 도시의 토템은 당연히 흡혈 동물인 <박쥐>가 될 것이다. 브루스 웨인’은 도시의 토템’을 이용해서 스스로 이미지’를 조작한 것이다. 고담 시’는곧 배트맨’이다 ! 그는 도시의 수호신이다.
배트맨’이 고담의 토템’을 흉내 냈다면, 조커’가 흉내 내는 것’은 삐에로가 아니라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가 그의 분장을 광대’로 착각한 이유는 그의 <찢어진 입> 때문이다. 그의 트라우마는 그를 해골에서 광대’로 보이게 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 이 숙명이란 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명박을 욕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 그는 자신의 영원한 트라우마인 입 가장자리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서 새빨간 립스틱’으로 상처’를 감춘다. 트라우마’란 누구나 감추고 싶은 상처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 상처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긴 유물이 아닌가 ? 폭력적 아버지’는 아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입을 잘라서 <조커>로 만든 것이다.
내시가 남성 성기를 잘라서 왕의 곁에 머무는 인물이라면, 삐에로는 여성 성기’와 흡사한 입’이 잘려서 왕의 곁에 머물게 되는 비운의 인물이다. 삐에로 분장에서 입술을 과장되게 길게 칠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입이 길게 찢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거세된 인물이면서 동시에 여성화된 남성이며 혹은 여성이다. 히스 레져’가 연기한 <조커>는 남근이 거세된 여성화된 남성이 아니라 여성 성기’가 길게 찢어져서 거세된 남성화된 여성’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조커의 <찢어진 입>은 여성 성기’를 이미지化하는데, 붉은 립스틱의 색과 상처가 봉합된 흔적이 겹치면서 남성 폭력에 의해 찢겨진 여성 성기가 불행한 출산’을 투영시킨다. 그녀의 입은 피 흘리는 바기나 덴타타’다. 나는 이 영화에서의 조커’를 여성으로 이해한다.
결과적으로 이 싸움은 아버지의 법과 억압된 원초적 어머니와의 대결’이다. 우리는 조커가 배트맨에게 던진 의미심장한 대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악당이 출몰하기 때문에 영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짜 영웅’이 존재하기 때문에 악당이 생겨나는 것이다. 어쩌면 원초적 어머니인 조커’는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아버지가 고담의 토템 흉내’를 내기 때문에, 그 꼴을 볼 수 가 없어서, 그와 한판승부’를 내기위해서 지상에 나타난 것’은 아니었을까 ?
( 프로이트 할아버지가 오래오래오래 사셔서 이 영화’를 보셨다면 틀림없이 브루스 웨인’을 지나치게 거대한 페니스에 집착하는 마초’라고 비아냥거렸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bat man’을 그대로 해석하자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남자”가 아니던가 ? 조커를 페니스 없는 광대’로 해석하면 결국 페니스를 휘두르는 남자와 페니스가 잘린 여성’의 한판승부’라고도 볼 수 있다. )
거대자본’으로 상징되는 배트맨’은 정의를 위해서 악당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유한 자본’을 위해서 악당과 싸우는 것’이다. 배트맨’이 외치는 <정의’를 위한 싸움> 은 마치 전쟁광인 미친 부시가 말하는 <평화를위한전쟁>과 같은 구호처럼 들린다. ‘goth’는‘bad man’이다. Batman은 사실 badman’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