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사리의 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 고은, 그 꽃

 

시인 고은은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을 내려갈 때 보게 된다. 내려갈 때도 보고 올라갈 때도 보게 되는 < 꽃 > 은 결코 시적 대상이 될 수 없다. “ 내려갈 때 보고 / 올라갈 때도 보았네 / 그 꽃 “ 은 이미 죽은 꽃이다. 당신 심중에 먹장구름이 몰려오겠는가? 김영하의 말을 빌려 말한다면 오다가다 다 만나면 그건 < 텔레토비 > 지 < 그 꽃 > 이 아니다.

 

 

 

비극과 희극의 공통점은 바로 어긋남이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될 때 비극적 멜로는 탄생한다. 코미디도 마찬가지다. 타이밍이 어긋날 때 웃음은 꽃처럼 터진다.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 < 생활의 발견 > 은 엇박자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준다. 가난한 연인들은 삼겹살집에서 “ 우리 헤어져 ! “ 라고 말한다. 이별은 슬픈 서사다. 하지만 이 슬픈 서사를 웃기게 만드는 것은 바로 왕성한 식욕이다. 배터지게 먹으면서 이별을 선언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엇박자다. 나에게도 유사한 경험이 있다. 결별이 아무리 뼈아픈

 

 

 

통증이라 해도 안주 없이 술만 마시는 것 또한 뼈아픈 통증이 아닌가 ! 여자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허겁지겁 닭다리 하나를 뜯다가 웃은 적이 있다. 아, 씨발..... 이 더러운 식욕 ! 경제를 이야기하는데 파리가 앉은 것처럼, 결별을 이야기하는데 닭다리를 뜯다니. 아, 씨발..... 이 더러운 식욕 ! 이처럼 비극과 희극은 유사하다. 조용필이 노래한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가사가 괜히 나온 가사가 아니다. 비와 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안으로는 자주독립을 밖으로는 민주번영에 이바지하기 위해 태어난 형제자매다.

 

 

 

고은의 간결한 시’가 시적 성취를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엇박자’가 주는 팽팽한 긴장감 때문이다. 여기서 오르는 행위 / 올라갈 때’는 탐욕으로, 내려가는 행위 / 내려갈 때’는 내려놓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정말 병신 쪼다 같은 해법이다. 욕심 없이 다 내려놓고 세상을 보니 꽃이 보이더라, 라는 깊은 산속 옹달샘 주지 스님 같은 말투는 개나 줘라. 시를 꼭 그런 식의 방정식으로 풀어야 맛인가 ? 그런 해법 없이도 이 시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게 읽힌다. 이 시는 아름답다.

 

 

 

그런데 이런 성취에 도전하는 영역이 있다. 바로 패러디’다. 패러디’란 원본의 아우라에 대한 성취와 권력에 대한 도전 정신이다. 일종의 꼼수’다. 고은의 시를 패러디하면 이렇다. “ 내려갈 때 보지 못했네 / 올라갈 때 꺾은 / 그 꽃 “ 제목은 < 입산 금지’ > 다. 당연히 올라갈 때 꺾었으니 내려갈 때 볼 수가 없다. 좀더 심하게 꺾어 보자.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놈

 

 

 

꽃 대신 놈’이 자리를 차지했다. 고은의 시를 생각하면 정말 웃기는 장면이다. 단어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분위기는 확 다르다. 여기서 말한 그 놈은 누구일까 ? 비장의 무기는 바로 제목에 있다. 이 패러디 시의 제목은 < 내 남편의 도봉산 불륜기 > 다. 여기서 그 놈은 바로 내 남편이다. 아내는 주말에도 잔업 때문에 출근한다던 남편을 도봉산 정상에서 내려오다가 만난 것이다. 더군다나 1301호 여자와 함께. 노스페이스 위아래 깔맞춤으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도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등산 장비를 착용하고, 두 손 꼭 잡고 앞으로 앞으로 !

 

 

 

< 내 남편의 도봉산 불륜기 > 가 재미있는 이유 또한 뒤통수를 치는 반전과 어긋남의 서사 때문이다. 남편은 회사에 있어야 하는데 도봉산에 있는 것이다. 아, 삑사리 ! 그렇다. 서사의 힘은 엇박자’에 있다. 비극의 힘도 엇박자요, 희극의 힘도 엇박자다. 시도 마찬가지다. 뻔한 시구는 뻔뻔하다. “ 외로운 기러기 한 마리 “ 라고 쓰는 것보다 차라리 “ 속이 쓰려 겔포스 먹는 기러기 “ 가 더 시적이다. 긴장감은 바로 이러한 삑사리에 있는 것이다.

 

 

 

오, 이토록 강력한 삑사리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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