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것은 뻔뻔한 것이다 1 : 문학 편.
뻔한 것은 뻔뻔하다. 뻔한 일일드라마는 뻔뻔하다, 뻔한 헐리우드 영화도 뻔뻔하고,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로 대표되는 남녀 떼거지 유랑 율동 악극단의 케이팝 또한 뻔해서 뻔뻔하다. 뻔한 소설도 마찬가지다. 첫 페이지 읽으면 마지막 백 페이지'가 읽힌다. 편혜영의 < 재와 빨강 > 의 첫 페이지를 읽으면 안 읽어도 읽은 것과 같다. 그놈의 길 위에서 길을 잃는 서사'는 왜 그토록 반복되는지 까닭을 모르겠다.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카프카가 아니다. 로브그리예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뻔뻔함의 끝판왕은 평론가들의 평론이다. 그냥 할 말 없으면 현대인의 불안이 반영되었답니다, 라고 말하면 끝. 뻔뻔뻔하다. 평론가들이 " 현대인의 불안 " 이란 문장을 워낙 많이 사용하다보니 나는 평론집에서 이 문장이 나올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혹시 출판사의 실수로 < 현대인의 불안 > 을 < 현대인의 불알 > 로 잘못 인쇄할까봐서이다. 아, 이런 성희롱적 발언이라니. 교정을 본 책임 편집자들의 고된 하루를 상기하면 가능한 대형 사고이다.
" 작가 H는 소설'에서 실존적 고립을 이야기한다. H는 그 어느 동시대 작가보다도 현대인의 불알을 잘 다룬다. 여성 작가 특유의 손길은 현대인의 불알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룬다. 아, 솜씨가 탁월하다. 소설 속 불알의 원형성'은 종종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불알과 겹친다. 이처럼 현대인의 불알이 커지면 커질 수록 집단적 무의식의 상처 또한 그와 비례하여 커진다. 그것은 곧 불임 사회이다. "
- 평론 : 현대인의 불알을 낚는 여류 작가의 섬세한 손길 중
그래서 난 늘 조마조마하다. 걱정은 사서도 한다. 시는 어떤가 ? 뻔한 시는 뻔뻔한 시'이기보다는 그냥 시시한 시다. 뻔뻔한 것이 더 후지냐, 시시한 것이 더 후지냐를 놓고 저울질한다면 그래도 뻔뻔한 것이 더 후지지 않을까 싶다. 뻔뻔하다는 것은 과잉의 결과이고 시시하다는 것은 결여의 결과이다. 짠 음식보다는 그나마 싱거운 것이 더 낫다. 싱거우면 간을 하면 되지만 짜면 대책이 없다.
뻔뻔한 것에 대해서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최고로 뻔뻔했던 사람은 박씨였다. 얼마나 뻔뻔했느냐면 동료들이 점심 시간에 배달 음식을 주문하면 이 친구는 몰래 지켜보다가 나중에 재다이얼' 버튼을 누르고는 이렇게 말했다. " 아까 주문했었는데요. 아뇨, 아뇨. 공기밥 하나 추가요 ! " 믿지 못하겠지만 정말 그랬다. 그는 공기밥 하나를 시켜 점심을 해결했던 빈대 대마왕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악착같이 벌어서 젊은 나이에 아파트가 두 채나 된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확인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확인된 소문 중 하나는 포르노 오타쿠였다는 점이다. 정품 오리지날 마니아로써 방 전체가 VHS 포르노로 도배가 되었다. 이 테이프를 살 때에는 아낌없이 돈을 지불했다. 오, 오오 = 25.
하지만 박씨의 뻔뻔함은 매우 선량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분이 바로 각하와 영부인이셨다. 부창부수여서 그들 부부는 뻔뻔함을 넘어선 어떤 경지'였다. 후흑학이었던가, 흑후학이었던가 ? 얼굴에 철판 깔아야 성공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학문인데 각하와 영부인을 보면 대충 답이 나온다. 후흑'은 성악설에 기초한 처세술이기 때문에 후흑의 달인이 될 수록 성공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모든 권력자는 후흑/厚黑의 얼굴이다. 두껍고, 검다. 고상한 문학 세계'에서도 권력은 존재한다.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좌지우지한다. 우리는 흔히 문학권력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이문열을 떠올리는데 문학권력은 이문열처럼 대놓고 설치는 분들보다는 뒤에서 수렴청정하느라 잘 눈에 띄지 않는 분들이 더 무섭다.
가장 대표적인 분이 문창과 교수이면서 동시에 시인이시면서 동시에 평론가이시면서 동시에 문예지 심사위원이신, 1타 4피의 절대적 존재인 분이 계시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최고 출판사의 절대적 권력까지 가지고 계시니 수많은 문청들은 모두 그의 입을 주시할 수밖에 없다. 쏠림과 견제를 위하여 3권이 분리되는 것이 기본이거늘, 1타 4피의 월계관을 거머쥐고 문단을 흔드는 꼴을 보면 정말 뻔뻔한 교수이시면서 시인이시면서 평론가이시면서 심사위원이시다. 시를 읽다 보면 종종 시를 사랑해서 시를 쓰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교수 자격증을 따는데 시인이라는 스펙이 도움이 되어서 시를 쓰는 것이지 모를 그런 뻔뻔한 시인도 존재한다. 아, 물론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세상엔 뻔뻔한 것이 너무 많다. 흑심과 두꺼운 얼굴이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