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홀 문화인류학 4부작 2 : 숨겨진 차원 - 공간의 인류학 이상의 도서관 47
에드워드 홀 지음, 최효선 옮김 / 한길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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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에드워드 홀'이다 !

거리 분류가 복잡해서 간략하게 분류했다. 에드워드 홀의 분류와는 차이가 있다.

 

출판사 < 한길사 > 에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조심해 ! 불 질러 버릴 테니깐........ 그동안 절판되어서 구할 수 없었던 에드워드 홀의 문화인류학 4부작'이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출간'되었다. 이로써 내가 보유한 < 숨겨진 차원 > 과 < 침묵의 언어 > 는 중고 똥값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긋 ! 왜냐하면 이 시리즈'는 탁월하기 때문이다. 두고 두고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간격'을 < 거리 > 라고 한다. < 거리 > 라는 단어 대신 < 사이 > 라고 해도 문맥은 통한다. 둘 다 간격이나 공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홀'은 이 거리'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으니, 첫 번째는 " 볼 거 안 볼 거 다 본 " 거리'로 신체적 접촉이 가능한 간격'이다. 만약 당신이라면 누구에게 이 친밀한 거리를 허용하겠는가 ? 가족과 애인'이다. 이 단계의 클라이막스는 섹스'다. 섹스란 결국 나와 타자의 간격이 제로'가 되는 단계'다. 두 번째는 " 악수할 수 있는 " 거리'이다. 애인이나 가족처럼 매우 친밀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친구나 동료'가 이에 해당된다. 여기까지'는 개인적 거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악수하는 사이'인 타자가 볼 거 안 볼 거 다 본 거리 안으로 진입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 동료가 업무를 가르쳐준다고 뒤에서 당신의 귓구멍에 입김을 불어넣는다면 말이다.

 

성범죄'는 바로 악수나 하는 사이'인 타자가 볼 거 안 볼 거 다 본 거리 안으로 허락 없이 잠입할 때 발생하게 된다. 박시후 사건에서 A양이 화가 난 이유는 박시후를 악수나 하는 사이'로만 인식했기 때문이다. 반면 박시후는 A양과는 달리 볼 거 안 볼 거 다 본 사이'라고 주장하는 것. 누구의 주장이 거짓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원나잇스탠드'라는 것은 악수하는 기간 없이 바로 볼 거 안 볼 거 다 본 관계로 발전할 때 발생하는 파열음'이다. 인간은 이처럼 개인적 거리 침범'에 대해 극도로 예민하다. 바로 그 점이 인간은 동물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모든 동물에게는 도주 거리'라는 것이 있다. 들소는 사자를 보자마자 도망가지는 않는다. 다만 일정한 간격 안으로 사자가 들어오면 그때 도망친다. 사자가 더 접근하면 자신의 목덜미에 사자의 이빨이 박힐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바로 그 간격이 도주 거리'이다. 이처럼 간격이 가깝다는 것은 결국 목숨을 내놓는 행위와 같다.

 

들소의 < 도주 거리 > 를 인간 사회'로 적용하면 오디션 볼 때의 거리'이다. 악수할 수 있는 거리에서 조금 더 벗어난 간격이다. 그러니간 악수는 할 수 없는 거리이다. 오디션 볼 때 이 거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머리에서 발끝까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체크를 위해서이다. 이 거리'를 에드워드 홀은 사회적 거리'라고 말한다. 사회적 관계는 주로 이 간격에서 이루어진다. 이 거리'가 최소한의 도주 거리'인 이유는 타자의 이상 증후를 간파할 수 있는 최소 거리이기 때문이다. ( 볼 거 안 볼 거 다 본 거리'나 악수할 수 있는 거리'는 주로 얼굴이라는 부분만을 볼 수 있다. )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먼 거리'다.

 

 

 

그런데 에드워드 홀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았다면 분명히 하나를 더 추가했을 것이다. 바로 < E : 투명인간의 거리 > 이다. 이 거리는 타자를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단계'이다. 우리가 청소노동자나 장애인을 바라보는 바로 그 시선이다. 봐도 못 본 척한다. 관심 자체가 없다. 천민 자본주의가 낳은 우아한 풍경이다. 그런데 꼭 그렇지는 않다.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간섭을 하기도 한다. 나이를 묻거나 심지어는 혈액형을 묻는 것도 지나친 사적 거리의 침범이지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리니깐 한국 사회는 매우 이중적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청소 노동자나 게이, 장애인을 가시영역 밖의 투명한 존재'로 생각하는 반면, 또한 집요하게 개인의 사적 거리를 침범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한 마디로 턱없이 부족한 소양 탓이다. 김치는 물에 씻어 먹자.

 

6인용 탁자

 

위의 그림은 가로 72인치, 세로 36인치의 6인용 식탁'이다. 심리학자 로버트 소머'는 실험 대상자 6명을 이 식탁에 배치한 후 50여 차례 모임을 갖은 후 대화의 빈도를 체크했다. 결과는 다음과 같다.

 

F-A 대화가 C-B 대화보다 두 배나 빈번했으며, C-B유형은 C-D 유형보다 세 배나 빈번했다. 그리고 다른 위치에서는 아무런 대화도 관찰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직각으로 대하는 모서리상의 대화가 36인치의 탁자 넓이 건너 마주 대하는 대화의 여섯 배에 달했고, 옆으로 나란히 앉은 유형보다 두 배나 많았다.

- 숨겨진 차원 中.

 

이 결과는 거리 간격의 차이가 대화를 끌어내는 주요 원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지만 < 소리의 거리 >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정면에 있는 타자'를 공격적인 주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서로 정면을 응시한다는 것은 곧 싸울 자세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짐승은 싸울 때 너 몇 살이냐고 나이를 묻지 않는다. 꼬라보면 덤빈다 ! 그게 짐승의 룰이다. 짐승은 그런 존재다. 위의 실험에서도 드러났듯이 대화의 빈도수가 가장 높은 짝패는 서로 옆'에 있을 때이다. 서로의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C-B가 C-D보다 대화의 빈도가 세 배나 빈번한 이유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걸어둔다. ( http://myperu.blog.me/20148051329 ) 에드워드 홀의 문화인류학 시리즈'는 충분히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다. 내가 무슨 책장사'라고 설레발을 치겠는가. 그저 좋은 책이어서 소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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