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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58
하인리히 뵐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평점 :
가난이란 무엇일까 ? 언젠가 나는 가난한 계급에 대하여 이런 정의를 내렸다 :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소리를 들킨다. 알쏭달쏭한 문장 같지만 독일 전후 문학을 대표하는 하이리히 뵐의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를 읽고 나면 이해하게 된다. 궁상맞은 가난한 부부 이야기다.
2차 대전이 끝난 1950년대 독일(1952년). 프레드와 캐테는 좁은 단칸방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중년 부부다. 남편은 전화 교환수 일을 하지만 세 아이를 키우기에는 넉넉하지 않은 돈이다. 부부가 사는 빌라는 벽이 얇아서 방음 효과가 없다. 아이들은 집주인 눈치를 보느라 숨죽여 노는데 익숙하다. 부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아이들이 잠들면 부부는 몰래 부부관계를 가지고 싶지만 신음소리가 옆방으로 샐까봐 몸만 달아오른다. 문제는 옆방에 사는 이웃이다. 그들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섹스를 한다. 끼루루루룩. 삐걱거리는 침대 소리는 마치 부산 앞바다를 날아다니는 갈매기 소리 같다.
옆방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들려오니 부부는 난감하기만 하다. 아이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 같다.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이 숨기고 싶은 소리조차 사람들에게 들킬 수밖에 없는 계급이다. 남편은 이 환경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와 생활하고 있다. 숙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 지인들의 집에 빌붙어 산다. 어느 날 아내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환경에서 다시 아이를 임신한 것이다. 절망 속에서 아내는 남편과 헤어질 결심을 한다. 하지만 부부관계는 파국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부부는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마지막으로 한 챕터를 더 쓰기로 구상했지만 포기한다. 작가 또한 끝내 아무 말(글)도 하지 않은 셈이다. 지독하게 궁상맞은 부부 이야기이지만 신파로 흐르지는 않는다. 구질구질한 현실을 정갈한 문장으로 뽑아내는 작가의 실력이 탁월하다.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소리를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래 전 일이다. 십대 때 집을 나와 가출을 한 적이 있다. 꽤 오래 가출 생활했는데 돈이 떨어지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황당한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온 탕아에게 야단을 치는 것을 포기하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 밥은 먹었니 ? " 나는 짧게 대답했다. " 네 ! " 그때였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들키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소리를 들킨 셈이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밥상을 차리셨다. 이 소설을 읽다가 문득 그날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