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의 목련
봄에 피는 꽃 중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봄밤에 가장 빛나는 꽃이 목련이라는 데 내 전 재산 500원을 걸 수는 있다(아님 말고). 모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느냐고 말했지만 이른 봄에 피는 목련이야말로 바람에 흔들리며 피는 꽃이다.
하얀 목련은 봄밤에 보면 찬란하다. 검은 밤과 하얀 꽃의 조화는 그 어떤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하다. 쌀쌀한 날씨에 핀 꽃 봉오리는 찬란하다 못해 숭고하다. 김수영 시인의 시 < 봄밤 > 에는 목련이란 시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소리 내어 읽다 보면 목련 핀 봄밤을 산책하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가난한 선비가 반딧불이를 촛불 삼아 캄캄한 밤에 책을 읽듯이 시인은 목련을 촛불 삼아 봄의 풍경을 읽는 것 같다. 가난한 시인의 단호한 정언 명령에는 세속적 욕망에 대한 거부와 종교적 수행이 엿보인다.
봄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봄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권여선 소설집 << 안녕 주정뱅이 >> 에 수록된 단편 < 봄밤 > 에는 술에 취해 봄밤을 걷는 중증 알코올 중독자 영경(女)이 등장한다. 그녀는 술에 취해 거리를 걸을 때마다 김수영의 봄밤을 낭독한다. 그것은 낭독이 아닌 주정이면서 동시에 속도에서 낙오된 자신을 향한 주문이다. "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ㅡ " 여자는 하염없이 봄밤을 걷다가 목련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녀는 " 촛불 모양의 흰 봉오리를 매단 목련나무 아래에서 소리 내어 ㅡ " 운다. 봄밤과 목련이 만나는 지점이다. 나는 그녀가 슬퍼서 울었다기보다는 봄밤의 목련이 아름다워서, 그래서.... 무서워서 울었다고 믿고 싶다.
릴케는 << 두이노의 비가 >> 에서 아름다움의 본질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한다. "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간신히 견디어내는 무서움의 시작일 뿐이므로 / 우리가 이처럼 아름다움에 경탄하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를 경멸하기 때문이다(두이노의 비가 1 ) " 영경은 목련 앞에서 간신히 견디어내다가 통곡한다. 아름다움이 영경을 경멸하기 때문이다1). < 봄밤 > 을 읽고 났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영화 < 오아시스 > 였다. 주정뱅이와 앉은뱅이의 사랑(봄밤)은 지적장애와 지체장애의 사랑(오아시스)과 겹치지만 결은 사뭇 다르다. 단편소설 < 봄밤 > 에는 영화 < 오아시스 > 에서 보이는 " 이기적 휴머니즘 " 이 없다.
오히려 영경과 수환의 사랑은 서로에게 이타적이다. 요양원에서 영경과 함께 사는 수환은 알코올성 간경화로 죽음을 향해 치닫는 영경이 술을 마실 수 있도록 외출을 허용한다. 그녀는 봄밤의 목련에 취한다. 그것이 정취였는지 만취였는지 모르겠지만, 신파를 징글징글하게 싫어했던 내가 이 단편을 읽다가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