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국가는 가족을 중시하는 가족주의 성향이 짙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일본은 집단 중심이라기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성향을 보인다. 일본인은 함께 하기보다는 혼자 하기에 익숙하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개인주의를 고립된 섬나라 근성으로 대충 얼버무리는데 나는 도통 이 문화 해석에 대해 동의가 되지 않는다. 섬이어서 고립되나 국경선이 있어 고립되나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이 개인주의 사회라고 말하기도 모호하다. 일본의 개인주의는 상황과 환경이 극변하면 집단주의로 돌변한다. 평소에는 독립된 개인으로 살다가도 전쟁이 발발하면 개인은 천황의 부속물로 전락한다.
이제 일본 군인들은 (천황을 위해) 항복 대신 할복을 명예라고 생각한다. 이 극단적 두 얼굴.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선명한 본질이란 생각이 든다. 혼네(本音 : 속)와 다테마에(建前 : 겉)는 칼이자 국화다. 그래서 나는 일본의 과도한 친절과 예의에서 종종 위압감을 느낀다.저 미소는 칼일까, 꽃일까 ? 많은 문학 평론가들은 하루키 문학을 무국적 세계 문학이라는 평가를 내리지만 내가 보기에는 하루키 문학이야말로 일본적이다. 하루키 문학 속에는 미소된장과 사케 그리고 나또가 거세되어 있지만 주인공의 서양식 생활 양식(다테마에) 속에 숨은 것은 일본인 다운 근성(혼네)이다.
하루키의 남자들은 겉과 속이 다르다. 매력적인 주인공(남)은 항상 무성애적 성향을 보인다. 수없이 많은 여성들이 주인공에게 달려들지만 남자는 목석이다. 그는 섹스마저 함께 하기보다는 혼자 하기에 익숙하다. 하루키 남자들이 시간 날 때마다 자위를 하는 이유는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한 일본식 개인주의 성향 탓이다. 섹스마저 혼자 하는. 아, 이 얼마나 일본적인가. 그렇다면 하루키의 남자들은 자위를 할지언정 여자와 자는 행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하루키 팬들은 소설을 읽는 내내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 잤니 ? 잤어 ? 잤냐고 !!!!! "
하루키 문학을 한 줄로 요약하면 남자가 여자와 잔 이야기다.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는 잘 모르는 여자와 같이 잔 이야기이고, << 1973년의 핀볼 >> 은 쌍둥이와 모두 잔 이야기이며, << 양을 쫓는 모험 >> 은 귀가 예쁜 여자와 같이 잤는데 그 여자가 사라진 이야기 >> 이다.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 에서는 밥 많이 먹는 여자와 자고, << 노르웨이 숲 >> 에서는 중년 여자와 자고, << 댄스, 댄스, 댄스 >> 는 호텔 프론트 직원과 사무실에서 잔다. 여자와 잔 이야기는 끝도 없다...... 결국 하루키의 남자들은 무성애자처럼 쿨한 모습을 보이지만 결론은 잤니, 잤어, 잤냐고??
혼네와 다테마에의 충돌은 다른 면에서도 엿보인다. 섹스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섹스가 목적이었던 하루키의 남자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물질적 욕망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물질적이다. 하루키는 갈등과 선택 그리고 문제 해결을 통해서 인물에 대한 정체성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전형적인 서사 진행에서 벗어난다. 하루키 남자들의 정체성은 그 남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상품 브랜드로 규정된다. 이 점이 바로 하루키 문학의 천박성이다. 하루키 문학에서 유독 상품 이름이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이유이다. 주인공들은 타미힐피거 티셔츠를 입고, 밀러 맥주를 마시며, 영국 스카치위스키 커티 삭을 고집한다.
그리고 카프카 문학을 읽고, 라디오헤드의 키드 A를 듣는다2). 그러니까 하루키의 남자들은 근사한 상품명을 통해서 자신을 과시하는 전형적인 허세남이다. 하루키 남자들은 왜 바에서 재즈를 들으며 인생의 공허함을 말할까 ? 근사하니까( : 싸구려 술집에서 소주 마시며 인생의 공허함을 말하는 것은 신세 한탄이다). 하루키 남자들은 왜 타미힐피거 티셔츠를 입을까 ? 근사하니까( : 유니클로 입었다고 자랑하는 사람 봤냐). 하루키 남자들은 왜 밀러 맥주를 마실 때에는 병 채 마실까 ?근사하니까( : 서양인들은 밀러 맥주를 맥주잔에 따라 마시지 않으니까) . 하루키 남자들은 왜 카프카 문학을 읽을까 ?
근사하니까( : 카프카 문학을 읽음으로써 자신을 카프카와 동일한 위치에 놓고 싶으니까). 아, 이 얼마나 천박한 자본주의적 허세인가 ! 하루키 문학은 전형적인 성장 소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주인공은 여자와의 섹스를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다 큰 애새끼들이 그 짓을 하고 있으니 읽다 보면 하이틴 로맨스 소설의 포르노 버전을 읽는 맛이다. 사람들은 왜 하루키 문학에 열광하는 것일까 ? 평론가 김현의 말을 빌려 이 글을 매조지하고자 한다. " 그의 글을 왜 좋아하는 척하는 것일까. 깊이도 고통도 없는 글들을. "
1) 그 남자는 누구와 잤는가 ?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잘 모르는 여자와 같이 잔 이야기
- 1973년의 핀볼 : 쌍둥이와 같이 잔 이야기
- 양을 쫓는 모험 : 귀가 예쁜 여자와 같이 잤는데 그 여자가 사라진 이야기
-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 밥을 많이 먹는 여자와 같이 잤는데 갑자기 일각수의 머리뼈가 빛난 이야기
- 노르웨이의 숲 : 같이 잔 여자가 자살하고 그녀를 추모하다가 중년 여자와 같이 잔 이야기
- 댄스 댄스 댄스 : 호텔 프런트 직원과 그녀의 직장에서 같이 잔 이야기
-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 첫사랑과 같이 잤는데 그 여자가 떠난 이야기
- 태엽 감는 새 : 같이 자긴 했는데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는 이야기
- 해변의 카프카 : 어머니와 같이 잤는데 웬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야기
- 애프터 다크 : 진짜로 그냥 잠만 자는데 누가 지켜보고 있는 이야기
- 1Q84 : 암살자인 첫사랑과 결국 같이 자는 이야기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 같이 잔 적도 없는데 남들이 같이 잤다면서 욕하는 이야기
2) 그 남자는 무슨 음악을 듣는가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ㅣ 비치 보이스의 California Girls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ㅣ비틀스의 Norwegian Wood
댄스 댄스 댄스ㅣ 비치 보이스의 Surfin' U.S.A , Fun, Fun, Fun
1Q84ㅣ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ㅣ리스트의 순례의 해
태엽 감는 새 ㅣ 로시니의 도둑까치, 슈만의 숲의 정경 중 예언하는 새, 모차르트 마술피리의 새잡이 사내
양을 쫓는 모험ㅣ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1번-프렐류드
해변의 카프카ㅣ 라디오헤드의 Kid A
기사단장 죽이기ㅣ Alabama Song
국경의 서쪽, 태양의 남쪽ㅣ 지미 케네디와 마이클 카가의 South of the Border, 냇 킹 콜의 Pret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