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었을까 ? 우연이었을 것이다. 어제, 책장에 꽂힌 많고 많은 책 1000권 중에서 홍세화 에세이 << 빨간 신호등 >> 이 눈에 들어왔다. 야구 중계는 라디오 삼아 귀로만 듣고 침대에 앉아 눈으로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가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쓴 칼럼 모음집이다 보니 철 지난 잡지를 읽는 기분이 들기는 했으나 이곳저곳 밑줄을 그은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는 꽤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 그가 어제 사망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최근 들어 홍세화와 정의당의 사망 선고를 듣고 있자니 묘하게 멜랑꼴리하다. 홍세화, 노회찬, 심상정이 없는 진보의 미래란.......
문득 < 정의당 > 이라는 당명 자체가 잘못 지은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권력, 금력, 완력이라는 단어에는 힘(力)이 붙는다. 다시 말해서 : 권ㅡ, 금ㅡ, 완ㅡ은 사람이나 사물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힘의 논리에 지배를 받는 단어는 무궁무진하다. 경제력, 이해력, 포용력, 사고력, 생활력, 호소력, 지구력, 순발력 심지어 매력도 힘이 바탕이 되어야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각자 이름이 다를 뿐 < 힘 > 이라는 이름에서 파생된 종류이다. 힘이 없는 것은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없고, 기계를 움직일 수 없고, 공장을 가동할 수 없고, 세계를 움직일 수 없고, 변화를 꾀할 수 없다.
힘이 낳은 사생아들이(수많은 단어들이) 각자 힘을 과시하며 자기 PR에 열을 올리지만 정작 < 정의 > 라는 단어에는 힘(力)이 없다. " 정의력 " 이라는 단어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파업이나 시위 현장에서 주먹 불끈 쥐고 " 정의의 힘으로 세계를 변화시키자 ! " 라거나 " 정의는 승리한다 " 라고 외치지만 힘이 없는 정의에게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공염불이란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정의라는 의로운 투지에 회의가 드는 것은 내 신념이 변질된 탓일까 ? 현대 정치는 정의에 의해 변화한다기보다는 정치력이 영향을 준다. 대한민국 보수는 반(反)정의'로 정권을 획득한 세력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에 민주 없고 국민의힘에 국민이 없는 것처럼, 정의당에 없는 것은 " 정의의 힘 " 이 아닐까 싶다. 정의는 힘이 없다. 중요한 것은 힘이 없는 정의에게 기대하는 것보다 정의로운 사람이 힘을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시대의 어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