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자유를 향한 갈망이다. 예를 들어보자. 여기 감옥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있다고 치자.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어서 깜빵 생활도 나름 재미를 붙일 수 있다. 범죄자 새끼들이 슬기로우면 얼마나 슬기로울까 마는 이승에서의 온갖 쾌락을 다 포기하고 살다 보면 소소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런데 안절부절 못하는 캐릭터들이 있다. 교도관들이 불시 검문하면 식은 땀을 흘리기도 한다. 나, 떨고 있냐 ? 그 캐릭터는 왜 안절부절 못하는 것일까. 감옥 영화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탈옥을 계획 중이거나 실행 중이다. 탈옥이란 자유에 대한 실행 의지이니 그의 불안은 자유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키르케고르가 "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이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 쇼생크 탈출 >> 에서 죄수들은 쇼생크 교도소의 규율에 적응하여 큰 불만 없이 수감 생활을 한다. 교도소의 규율 체제에 적응한다는 것은 희망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희망을 버리다 보니 절망도 없다. 삼시 세끼 밥 주고, 철통 보안에 누울 자리도 주니 태평이라. 그래서 영화 속 죄수들은 태평하다. 레드(모건 프리먼 분)은 가석방으로 풀려난 동료에 대한 잡담을 나누다가 이렇게 말한다. " 참 이상하지, 이 감옥 벽들 말이야. 처음에는 싫어하다가 곧 적응하게 되어버리고 어느 순간에는 의지하게 되거든. " 레드는 자유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 순간 교도소의 규율 사회에 완벽하게 적응한 것이다.
희망을 포기한 레드에게 앤디는 말한다. " Hope is a good thing. Maybe the best of things. and no good thing ever dies. (희망은 좋은 겁니다. 아마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몰라요. 그리고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 "반면에 자유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앤디( 팀 로빈슨 분)는 밤마다 굴을 판다. 두드리면 언젠가는 열릴 것이다. 이 영화에서 앤디는 자신의 10년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까 봐 항상 불안에 떤다. 이 불알은, 아.... 오타다. 이 불안은 앤디의 자유 의지 때문에 발생한 마음이다. 자유 의지가 없었다면 애당초 불안도 없을 테니까.
이 영화의 원작이 수록된 단편집 << 사계 / 스티븐 킹 >> 는 장편이라고 하기에는 분량이 짧고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분량이 많아서 폐기 처분하려던 것을 출판사 편집장이 원고를 읽고 홀딱 반해서 작가를 설득하여 단편집으로 묶은 것이다. 장정일은 스티븐 킹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원고를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다는 에피소드를 접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 스티븐 킹이 이 단편을 쉬어가는 의미에서 쓴 작품이라면 한국의 작가는 다 죽어야 한다." 며 한국 작가들은 넥타이 공장이나 차려야 한다고 독설을 내뱉기도 했다. 소설 <<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에는 내가 잊지 못하는 문장이 등장한다. 두고 두고 읽어도 명문이다.
" 1966년, 앤디 듀프레인'은 쇼생크 교도소를 탈옥했다. 찾아낸 것은 진흙투성이 죄수복과 비누 한 조각 그리고 암석 망치였다. 굴을 파는 데 600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앤디는 20년 안에 해냈다. 앤디는 지질학을 좋아했다. 그의 세심한 성격과 잘 맞았나 보다. 빙하기와 수백만 년에 걸친 산맥의 생성. 지질학은 시간과 압력에 대한 연구이다. 사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압력과 시간 그리고 입구를 감출 큰 포스터...... "
종종, 불안을 지병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추천하는 영화는 << 쇼생크 탈출 >> 이다. 오늘도 불안한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리라. " 불안은 좋은 겁니다. 아마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몰라요. 좋은 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