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탕, 탕 ! 석양의 건맨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연기를 못한다. 피우지도 못하는 독한 시가를 입에 물다 보니 미간에 주름살만 깊게 파인다. 그는 더스틴 호프만이나 로버트 드니로와 같은 불꽃 튀는 연기력을 선보인 적이 없는 배우이다. 

동작도 어그적어그적, 꿔다 논 보릿자루 같다(빌려 온 빗자루 같다). 대사도 거의 없다. 배우의 치열을 유심히 보는 악취미가 있지만 나는 단 한번도 그의 치열을 본 적이 없다. 만약에 그의 치열을 본 적이 있다고 자신있게 주장하는 이가 등장한다면 내 전 재산 500원을 아낌없이 드리리라. 그만큼 그는 말을 아낀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연기력에 대하여 불만을 가지는 관객은 없다. 나 또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옹의 열혈 찐 팬이지만 그의 연기력이 거슬렸던 적은 없다. 왜냐하면 그는 배우가 아니다. 따라서 그를 두고 연기 못하는 형편없는 배우라고 부르기는 힘들다. 연기를 잘 못한다기보다는 연기를 하지 않는다. 왜 ? 그는 배우가 아니니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신소리냐고 지청구를 날릴 분도 계시겠지만, 어쩌냐 ? 이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라 미국 평단을 지배했던, 아니 씹어먹었던 폴린 카엘이라는 평론가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인물평이다. 윗 글을 읽고 나에게 지랄을 하려고 했던 분들은 모두 합죽이가 됩시다잉, 합 !!! 폴린 카엘의 하마평에 대하여 100% 동의한다. 폴린 카엘이라는 거대한 영화 권력에 순종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말이 맞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배우가 아니라 하나의 풍경이다, 황량한 풍경 ! 그의 얼굴은 신기하게도 서부의 사막을 닮았다. 푸석푸석한 건성 피부의 깊은 주름은 강줄기 갈래 같다. 
말라비틀어져서 바닥을 드러낸 계곡. 다듬어지지 않은 굵은 수염은 어떤가 ? 마치 모래바람에 굴러다니는 덩굴이나 선인장을 닮았다. 늙어갈수록 그의 얼굴은 점점 더 황량한 사막을 닮는다. 이 세상에 그보다 훌륭한 사막의 풍경을 재현하는 배우가 존재할까 ? 그동안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수없이 많은 배우의 부고를 듣지만 캔 로치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부고 앞에서는 이른 봄날에 느닷없이 내리는 폭설처럼, 자주 사용하는 개인적 관용구를 사용하자면 늦겨울 이른 봄날에 얼었던 마당의 수돗물이 봇물 터지듯 느닷없이, 눈물을 흘릴 것 같다(해리 딘 스탠튼의 부고에 눈물을 훔쳤던 나다, 아흑 흙흙흙). 
윌리엄 머니는 용서받지 못한 자이면서 동시에 앞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자이기도 하다. 총잡이 윌리엄 머니는 잔인한 살인자(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그를 용서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던가. 자신의 지난 과오를 반성하고 손을 씻은 늙은 윌리엄 머니는 돼지농장에서 돼지 똥을 치우며 생활한다. 범죄와 갱생을 다룬 모든 범죄 영화들이 그렇듯이 평화롭게 살고자 하는 그를 가만 둘 리 없다. 돼지 똥을 푸던 삽을 버리고 다시 한번 총을 든 윌리엄 머니. 명분이 거창한 것도 아니다. 그의 이름(munny)에서 알 수 있듯이 money를 위해 총을 든다. 두 놈을 해치우는 데 천 달러. 늙고 병든 윌리엄 머니는 미션 / 파서블할 수 있을까 ? 
한때 아내의 충고를 듣고 위스키를 끊었던 술주정뱅이 윌리엄 머니가 살인 청부를 위해 도착한 마을 이름이 빅위스키라는 아이러니가 복선으로 깔린다. 그리고 탕, 탕, 탕 !!! 이 영화에서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말이 없다. 입술이 얇은 사람은 말이 많다지만 그의 얇은 입술은 도통 열릴 일이 없다. 젊었을 때 늙어보였던 그는 늙을수록 더 늙어보인다. 그럴수록 그의 얼굴은 리얼 사막의 풍경이다. 지금 우리는 사막의 총잡이를 연기하다가 그만 사막이 된 남자를 보고 있다. 고전주의 서부 영화의 최고 걸작이 << 수색자 >> 라면 수정주의 서부 영화의 최고 걸작은 << 용서받지 못한 자 >> 이다. 압도적 걸작이다. 



                             
대한민국 1호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악담 전문가입니다. 정담을 나누기에는 성격이 지랄 맞고, 좌담을 나누기에는 교양이 짧습니다. 그래서 악담을 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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