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신장판 1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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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린치와 프랭크 허버트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무비 혹은 필름. 전자는 산업적인 측면에 초점을, 후자는 문화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감독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영화감독 혹은 영화작가. 데이비드 린치는 영화감독보다는 영화작가'란 이름이 익숙합니다. 그는 영화사에 굵직굵직한 업적을 남긴 거장입니다. 그가 영화를 내놓을 때마다 평론가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이 위대한 감독을 숭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평론가들로부터 전폭적인 사랑을 한몸에 받은 감독이지요. 하지만 그에게도 흑역사는 있는 법입니다. 

<< 이레이저 헤드 >> 와 << 엘리펀드 맨 >> 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감독을 눈여겨본 제작자가 있습니다. 그가 바로 디노 드 로렌티스입니다. 영화 홍보사들은 디노 드 로렌티스'라는 이름 앞에 " 세계적(인 제작자) ㅡ " 이라는 딸랑구(아부하는 句 글귀)를 붙이기 좋아합니다. 뭔가 있어 보이니까, 크아.             전도유망한 젊은 감독과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성서를 반반 섞은 원작 그리고 세계적인 제작자의 만남은 그 자체로 화제였습니다. 1700명의 영화 스텝들, 80개가 넘는 대형 세트장 그리고 오랜 촬영 끝에 완성된 작품이 바로 데이비드 린치의 << 듄, 1984 >> 입니다. 

잘 만들었냐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개떡 같은 영화입니다. SF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미술 디자인인데 이 영화의 프로덕션 디자인은 마치 싸구려 인형극에 나오는 무대 같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90년대에 비디오 테이프로 보았는데 " 주옥 " 같은 영화를 기대했다가 " 줬 " 같은 영화여서 허탈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저의 첫 인상 비평은 "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구나. "

개떡 같은 영화였습죠. 영화가 끝났을 때 줄거리가 이해가 안 가서 교보문고로 달려가 원작 소설 << 듄 1 >> 를 사서 집으로 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감독 스스로도 자신이 만든 작품이 쪽팔렸던 모양입니다. 최근에 런닝타임 3시간짜리 영화 버전(TV버전판)으로 다시 보았는데 영화 타이틀에는 감독 이름이 데이비드 린치가 아니라 알란 스미스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  헐리우드 영화판에서 자신이 만든 영화가 창피할 때 가상의 감독을 내세우게 되는데 그 이름이 바로 바로 알란 스미스죠( 또 한 명은 존 도우입니다). 웬만하면 못난 자식이라도 자기 자식은 품에 안기 마련인데 린치는 자식을 호적에서 파 버린 모양입니다. 

앞으로 너는 내 자식 아니다잉 ~  크아, 이 얼마나 조선 가부장적 서사란 말입니다. 일종의 영화판 파묘죠. 자식을 호적에서 파 버린 무정한 아버지, 데이비드 린치(농담이고요).  이 영화의 주요 무대가 사막이어서 그랬을까요 ? 영화 보는 내내 << 아라비아의 로렌스 >> 가 생각나더군요. 에너지 광물 스파이스는 명백히 석유에 대한 은유이고, 각 행성들은 서구 열강 제국을, 그리고 광물이 있는 행성의 원주민 부족 프레맨은 아랍 연합인 셈입니다. 주인공 폴의 가문인 " 아트레이데스 " 는 트로이 전쟁 영웅 아가멤논의 성인 " 아트레우스 " 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주 행성의 지도자 폴 아트레이데스는 로렌스, 예수, 모세, 그리고 아가멤논을 알맞게 뒤섞은 캐릭터로 이해하면 됩니다. 요약하자면 << 듄 >> 은 우주 행성에서 벌어지는 아라비아 로렌스의 트로이 전쟁 버전 혹은 성인용 스타워즈1) ??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데이비드 린치는 드니 빌뇌브의 << 듄 >> 시리즈를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 열등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질투심은 있지 않았을까 ?  개인적으로 데이비드 린치의 열혈 팬이지만 작가주의라는 이름으로 이 영화를 무작정 옹호할 수는 없습니다(까이예 뒤 시네마의 작가주의 정책에 신물이 나는 1인입니다). 

정말 더럽게 못 만든 영화거든요. 보는 내내 구닥다리 디자인에 혀를 끌끌 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타인의 불행을 보는 것은 참말로 행복하니까요. 영화 보는 내내 조롱의 삼삼칠 박수를 치며 외쳤습니다. 재밌다재밌다재밌당 ~ ㅎㅎㅎㅎ




1) << 스타워즈 >> 가 개봉되었을 때 프랭크 허버트는 몇몇 SF 소설가들과 함께 << 조지 루카스를 고소하기에는 너무 거물인 작가 모임 >> 을 결성한다. 이 영화가 소설 << 듄 >> 을 명백히 표절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듄 시리즈를 집필 중이었던 작가는 5권에서 스타워즈의 표절을 비판하는 문장을 삽입한다.  "사람들은 '그 사람은 3P-O(스타워즈의 깡통 로봇)야'라고 말하곤 했다. 질이 떨어지는 재료로 만든 싸구려 모조품으로 주위를 장식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대한민국 1호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악담 전문가입니다. 정담을 나누기에는 성격이 지랄 맞고, 좌담을 나누기에는 교양이 짧습니다. 그래서 악담을 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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