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형사가 들려주는 경험담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있을까 ? 인간의 원초적 욕망은 언제 들어도 흥미쥔쥔하다(흥미진진하다). 그중에서도 베테랑 형사들이 풀어내는 인간 욕망의 맨밑바닥 썰은 조선 한라봉 다음으로는 국내 최고봉이다. 그래서 잠을 자기 위해서 침대에 누우면 사건사고 내용을 다룬 방송을 청취하며 잠을 잔다. 어미가 보험금을 노리고 어미의 어미를 죽이고, 어미의 자식을 죽이고, 애인을 토막 내고, 불을 지른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이야기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이야기야말로 진정한 " 휴먼 스토리 "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 베테랑 형사가 풀어놓은 썰 중에서 기억에 가장 강렬하게 남았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스무 살 아들이 죽었다. 살인사건이다. 형사가 도착했을 때 사건 현장은 물컹물컹한 피비린내가 역하게 퍼지고 있었다. 주변을 살피던 형사는 한쪽 구석에서 대성통곡하는 중년 여성을 발견한다. 아들의 어머니'다. 넋을 놓고 곡을 얹는다. 형사는 우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 사건의 가장 강력한 용의자로 의심한다. 왜 그랬을까 ? 왜 그랬을까 ??? 베테랑 형사가 보기에는 그녀가 흘리는 눈물이 가식적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소리 내어 울고 있는데 표정은 울고 있는 표정이 아니라 평화로운 표정이었던 것이다. 가짜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 ??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형사의 오해였다고 한다. 
피해자의 어머니가 성형 중독자이다 보니 얼굴 근육이 잘리고, 보톡스에 의해 근육이 마비되고, 피부 살가죽 밑에 필러가 삽입되어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없기에 발생한 무표정이었던 것.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 무표정 " 이라기보다는 " 표정 무( : 표정을 지을 수 없다) " 에 가깝다고 해야 된다. 왜냐하면 무표정이야말로 가장 정교한 표정의 한 종류이기 때문이다. 성형 수술과 성형 시술이 얼굴 표정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배우들이 얼굴에 손을 댄 상태로 브라운관에 등장하여 연기 하는 꼴을 보고 있으면 기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드라마 << 힘쎙 여자 강남순 >> 에서 배우 김정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때 그 베테랑 형사의 기괴했던 경험담이 생각났다. 김정은의 표정 무'에서 불쾌한 골짜기(인간이 인간이 아닌 존재를 볼 때 해당 존재가 인간과 많이 닮아 있을수록 호감도가 높아지다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를 경험하는 것은 발광 다이오드 3파장 극성을 가진 나의 취향 탓일까 ? 나이가 들면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해야 되는데 50에 이른 배우가 꾸역꾸역 30대 여성을 연기하니 목불인견이다. 우리는 관객과 배우(여성 배우에 한해서)가 함께 늙어가는 동시대성을 잃어가고 있다. 
꽃다운 젊음이 지면 브라운관에서 사라지거나 어느 날 갑자기 (얼굴에 손 댄) 회춘한 얼굴로 등장하니 관객과 배우가 함께 늙어간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여성의 가치를 젊고 아름다운 것에 높은 점수를 주려고 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 때문이다. 늙음의 증후들을 나쁜 것으로 대하다 보니 나이 든 (여성) 배우들은 하나둘 설 자리가 없어 사라지고 몇몇만 남아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웃의 추천으로 호기심이 생겨 < 트루 디텍티브 시즌 4 > 예고편을 보다가 관객과 함께 늙어가는 조디 포스터의 얼굴을 보자 묘하지만 뜨거운 감동을 받았다.

마을 어귀에 다다를수록 늙은 나무는 흠집이 많다고 한다. 아이들이 그 나무를 놀이터삼아 나무를 친구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디 포스터의 깊은 주름을 보면서 문득 마을 어귀에 가까운 늙은 나무가 생각났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을 어귀에서 우리와 함께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나무다. 




대한민국 1호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악담 전문가입니다. 정담을 나누기에는 성격이 지랄 맞고, 좌담을 나누기에는 교양이 짧습니다. 그래서 악담을 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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