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Todo Sobre Mi Madre
유니버설(Universal) / 1999년 7월
평점 :
품절








안토니아 산 후안의 

                          삐뚤어진 코를 어찌 잊일 수 있겠는가






얼굴 인식 장애 판정까지는 아니지만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데 애를 먹는 편이다. 개성 있는 특징을 갖춘 사람은 쉽게 알 수 있지만 모든 것이 평균치에 다다를 때 문제는 심각해지는 것이다. 한번은 알은체하는 여성과 30분 동안 대화를 나누었는데 문제는 그 여성이 누구인지 인식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처음에는 통상적인 인삿말(안녕, 반갑다, 나중에 밥 한 끼 하자, 끗.)만 하고 대충 눙치려고 했는데 그것이 30분 동안 이어질 지 그 누가 알았으랴. 시바. 


그러다가 결국에는 쪽팔림을 무릅쓰고 그 여성에게 물었다. " 그런데...... 누구시죠 ? " 그녀는 너무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고 나는 쪽팔려서 고개를 땅에 처박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흙흙흙. " 1년 전 우리 영화제 때 스탭으로 함께 일했었잖아욧 !!! " 영화제 내내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우정을 과시했던 우리들이 아니었던가. 내가 요즘 예능 티븨를 잘 보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 연예인들의 얼굴이 성형으로 인하여 모두 엇비슷해졌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핑클의 성유리와 이진을 분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화장법도 유행을 타다 보니 화장을 하게 되면 쌍둥이처럼 보인다. 보통 동양인은 서양 사람 얼굴을 잘 분간하지 못하고 반대로 서양인은 동양 사람 얼굴을 잘 분간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반대'다. 서양 여성보다 한국 여성을 분간하는 게 더 어렵다(화장을 했다는 전제). 성형으로 인해 미녀의 표준값이 모두 엇비슷해졌기에 얼굴 인식에 애를 먹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보톡스와 같은 작은 성형 시술만으로도 사람의 얼굴이 달라보여서 얼굴 인식에 애를 먹기도 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웃어넘길 만한 에피소드처럼 보이겠지만 당사자인 나로써는 애로사항이다. 


하지만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나의 얼굴 인식 장애가 단점이 되지 않는다. 알모도바르 영화 속 배우들의 얼굴이 워낙 개성이 있어서 그 얼굴을 혼동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얼굴 생김새는 물론이고, 헤어 컬러도 다르고, 헤어스타일도 다르다. 여기에 목소리 톤도 제각각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눈부신 걸작 <<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 >> 은 개성이 다를 뿐만 아니라 직업도 서로 상반된, 더군다나 성적 정체성도 제각각인 여성들이 모여서 여성의 우정을 이야기한다. 


이들은 물과 기름 같지만 페드라 알모도바르의 세계에서는 지극히 평등하다. 그래서 미와 추, 수녀와 매춘부, 연극배우와 수행비서 간의 계급 갈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안토니아 산 후안이다. 관객은 그녀를 보는 순간 메두사를 본 듯 감염된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안토니아 산 후안의 삐뚤어진 코를.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여성의 연대와 우정을 강조하기 위해 남성 폭력을 눈요깃감으로 이용하지 않는다. 그가 인물을 설정하고 배치하는 과정은 파격적이지만 인물에 대한 접근은 평화적이다. 연출에서도 이러한 정책은 빛을 발한다. 


주인공 우대 정책은 없다. 감독은 주연과 조연 배우를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본다. 그리고 원망에서 우정으로 바뀌는 순간은 이상하게도 눈물이 난다. 그것은 그 장면이 단순한 휴머니즘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진짜 눈물이기 때문에 가능한 슬픔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처음에는 악동이라는 이름으로 영화계에 등장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성녀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영화야말로 남성 감독이 만든,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 영화보다 훌륭한 여성 영화일 뿐만 아니라 가장 탁월한 멜로드라마 중 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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