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이란 색칠 공부하는 그림책이 아니잖아 ! " 










한때, 책을 읽을 때 아이보리 비누로 손을 씻고 독서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 뽀송뽀송한 손으로 마른 종이를 넘길 때 느끼게 되는 촉감이 좋아서 생긴 버릇이었다.  또한 노란 색연필로 훌륭한 문장에 밑줄을 긋는 버릇도 있었다.  지금은 독서를 할 때 손을 씻는 버릇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좋은 문장에 노란 색연필로 밑줄을 긋는 버릇은 여전히 남았다. 


노란 색연필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도달한 선택이었다. 각종 연필, 색연필, 형광펜, 수성펜, 유성펜을 사용하고 빨주노초파남보라 색상을 실험한 결과, 밑줄을 긋는데 가장 탁월한 것은 노란 색연필이었던 것이다. 다른 색에 비해 노란색 밑줄은 삐뚤삐뚤 그어진 사선을 수평에 가까운 직선으로 보이게 만드는 착시 효과가 탁월하고, 밑줄 친 문장을 선명하게 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드문드문 그어진 노란 밑줄은 무채색의 세계인 책이라는 물성에 컬러풀한 감성을 선물한다. 포인트 컬러로써 이보다 좋은 색은 없다.  여러 모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어쩌면 나는 책이 좋아서 밑줄을 긋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밑줄 긋는 것이 좋아서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이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은 " 과유불급 " 이었다.  좋은 문장은 대부분 꼬리가 짧다.  중언부언하지 않을 때 훌륭한 문장이 탄생한다.  내가 밑줄을 긋는 횟수는 한 페이지에 고작 한 줄 정도였으며 대부분 길이가 길지 않은 짧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좋은 문장이라고 해서 모두 꼬리가 짧은 문장일 리는 없다. 종종 밑줄이 페이지 첫 문장에서 시작하여 그 페이지가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만연체인 경우가 그런 경우였다. 


그런데 이렇게 꼬리가 긴 문장,  다시 말해서 페이지 전체를 노란 색연필로 색칠을 한 경우가 발생하면 " 시각적 테러 " 를 경험하게 된다.  노란색이 부분적으로 포인트 컬러(집중, 강조, 경고 따위)로 사용될 때는 효과적이지만 한 페이지 전체를 도배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면 주의력이 흩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압도적 장악은 주의력을 집중하게 만들기보다는 집요한 강요처럼 느껴져서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그래서 꼬리가 긴 노란 밑줄(이 그어진 문장)을 다시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생과 행복의 관계 " 도 어쩌면 " 책과 밑줄의 관계 " 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밑줄이 많은 책일수록 좋은 책이란 사실은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가 밑줄을 그은 문장만 발췌해서 모아 놓으면 기껏해야 그 책의 한두 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불과하다. 인생과 행복의 관계도 그렇다. 인생이라는 기나긴 텍스트에서 행복이라는 이름의 밑줄이 차지하는 분량은 고작 한두 페이지 분량일 것이다. 하여, 인생의 목표를 행복에 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인생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은 색칠 공부하는 그림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문장은 짧듯이 강렬한 행복도 짧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