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한 시대를 풍미한 디바들이 있다. 1970년대 디바는 바브라 스트라샌드였고, 1980년대 디바는 마돈나, 1990년대는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 2000년대는 브리티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래라'일 것이다. 그리고 2010년대 디바는 아마도 아델일 것이다(혹은 비욘세). 그렇다면 한국의 디바는 누구일까 ? 맨발의 디바, 이은미 ?! 이들은 넓은 음역대와 높은 음역대를 자유자재로 소화한다. 그런데 나는 이들의 노래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최고의 뮤지션이 모여 만든 앨범이요, 최고의 디바'가 부른 노래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래서요 ? 이런 삐딱한 마음을 갖게 된다. 체질적으로 : 주저흔 없는 예쁜 손목을 좋아하지 않고, 해피 엔딩으로 봉합되는 서사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도 좋아하지 않는다. 인생이란 서사에서 그 끝이 외우기 쉽다는 것은 그닥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누가 나에게 음악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준 후 한국대중음악 앨범 100를 선정하라고 한다면, 나는 수줍은 표정으로 손지연의 첫 번째 앨범 << 실화 My Life's Story, 2003 >> 를 뽑고 싶다. 손지연의 노래를 처음 듣는 사람은 귀에 익은 멜로디가 아니라서 생경스럽게 들리겠지만 눈을 감고 느린 호흡으로 날숨을 뱉으며 듣다 보면 어느 새 말똥구리가 끌고 가는 말똥 같은 눈물이 뚝, 떨어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손지연보다 아름다운 가사를 쓰는 뮤지션은 없다. 늦겨울 눈이 내리던 밤, 성대 도어즈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강냉이를 안주삼아 카스를 마시다가 펑펑 울었다. 헤어진 옛 애인을 그리워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여서..... 잊기로 결심했다.
돌아온단 약속을 잊고 간 너를
기다린 지 벌써 몇 년째
꿈속에서도 떠나는 널
꿈속에서도 종일 기다리는데
이제 곧 겨울도 올 텐데
바람은 더 차가울 텐데
나의 집은 어느 응달뿐인데
오래전부터 있고 싶던 곳으로 넌 떠났는지
내 맘이 너를 돌려보냈는지
대답해줘 겨울 가고 눈 녹기 전에
이리로 계속가면 안될 곳인데
알면서도 나를 들릴 수 없네
나에게 주던 너의 손길 꼭 그대로인 듯 못 견디는 감정뿐
한 번 더 사랑한다 내게 말하면
그 맹세 고이 접어 넓은 바다로 영영 던져버려
내 갈 길은 오로지 너와 약속한 그 길뿐인데
다시는 날 떠나가지 못하게
내게 오는 길을 잃었나 수많던 약속 잊었나
대답해줘 겨울 가고 눈 녹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