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소녀 파랑새 영어덜트
변은비 지음, 최윤태 원작 / 파랑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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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능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것보다는 불가능하지만 있음직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아리스토텔레스가 << 시학 >> 에서 한 말이다. 사실, 두 개의 전제는 모두 가능하지 않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지만 접근 방식은 사뭇 다르다. 


전자( : 가능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것)는 논리적 검증의 영역에 속하지만,  후자( : 불가능하지만 있음직한 것)는 텍스트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허구를 신뢰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는 태도에 방점이 찍힌다. 중요한 것은 신뢰감과 설득력이다. 핍진성에 대한 문학적 장치는 영화에도 적용된다.  내가 영화 << # 살 아 있 다 >> 를 시간 날 때마다 물고-뜯고-씹는 이유는 감독이 불가능하지만 있음직한 서사를 버리고 가능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서사를 연출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길이가 24미터나 되는 로프를 이용하여 A동 4층과 맞은편 B동 4층을 수평으로 연결했을 때 동력 장치가 없는,  


로프에 매달린 식량 가방이 무서운 속도로 미끌어져 내려갈 때 관객은 영화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는다.  자전거 패달을 밟지 않고서 오르막을 신나게 내달렸다는 신소리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  그것은 곧 생산자가 수용자에게 보내는 설득력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뜻이고, 동시에 수용자가 생산자에게 보내는 신뢰감이 깨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영화사가 많은 제작비(순제작비 70억)를 투입하여 분장과 특수효과로 좀비의 핍진성을 살렸다고 해도 한 번 깨진 믿음과 신용은 복원되기 쉽지 않다. 관객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이 충무로 놈들아.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 !             


영화진흥공사에서 지원하는 제작비(1억 2천)로 만든 저예산 독립 영화 << 야구소녀 >> 는 아마추어 운동선수가 프로야구 구단 팀에 문을 두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마추어 야구선수가 프로 구단 2군 육성 선수로 구단에 입단할 가능성은 대략 4%라고 한다. 이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프로 2군 팀 육성 선수가 프로 1군에 진입하는 경우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결국 1%의 선수가 프로 무대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의 도장 깨기'가 앞날에 대한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프로 무대에서 주전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희박한 확률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이 모든 가능성은 야구 소년'에 국한된 데이터이다.  야구 소년이 아니라 야구 소녀라면 가능성의 가능성의 가능성에 대한 데이터는 아무 소용이 없다.  에둘러 말할 필요 없이, 여성 운동선수가 프로야구 선수가 될 가능은 없다.  여자 프로야구 선수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자 프로야구 구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불가능한 설정을 " 그럴듯하고 있음직한 이야기 " 로 관객을 납득시키려고 노력한다. 이 영화는 야구 소녀가 프로 구단에 입단하여 한국 시리즈 마지막 경기 9회말 2아웃 상황에 등장하여 상대 팀을 제압하는, 


가능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서사를 버리는 대신에 불가능하지만 있음직한 서사를 선택한다.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 도전과 성공 > 이 아니라 < 도전과 성장 > 이었다. 성공담 대신 성장담을 선택한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입봉(데뷔)한 감독은 적은 제작비로 효율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종종 어디선 본 듯한 장면과 몇몇 오글거리는 대사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어디서 개수작이야 _ 라는 태도로 일관했던 관객은 어느덧 정자세를 하고 소녀를 응원하게 된다. 빅토리 ! 빅토리 !!  븨, 아이, 씨이, 티이, 오, 알, 와이 !!! 주수인 퐈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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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보다 재미없는 스포츠가 있을까 ?  3시간짜리 스포츠를 관람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연장전이 이어지면 6시간 동안 혈투를 펼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스포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야구를 보는 이유는 " 욕하면서 보는 재미 " 를 버릴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팬이라면 자신이 응원하는 팀 선수에게는 격려와 칭찬을, 반대로 상대 팀에게는 욕과 저주를 퍼붓기 마련이지만 엘지 팬인 나는 주로 앨지 선수들을 욕한다. 반대로 상태 팀 선수를 욕한 기억은 거의 없다.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황홀했고 타자 앞에서 빠르게 휘는 김광현의 슬라이더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곤 했다. 욕하면서 보다 보니 염장이 터지는 일이 종종 발생하게 된다. 엘지는 천국이자 지옥이었으며 빛이자 그림자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야구라는 스포츠의 최대 장점은 내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저주를 퍼붓는 잦은 경험을 통해서 내 자신이 얼마나 쪼잔한 인간인가라는 사실을 각인하게 만드는 재주가 아닌가 싶다.  나는 야구를 볼 때마다 속 좁은 내 인성에 종종 놀라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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