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소 설 이 냐,  자 소 서 냐  :











날 것과 익힌 것













1. 인간은 모두 그런 사람들


내 정체성이 궁금하여 여러 차례 테스트를 한 결과, 아나키스트이며 INTP이고 염세주의자'라는 결과가 나왔다. 염세주의'라기보다는 염인(:인간을 혐오함)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박원순 사태 때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박원순은 절대 " 그런 사람이 아니다 ! " 라고 현실을 부정했을 때 나는 시니컬한 태도로 지켜보곤 했다. " 바보들. 인간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야, 멍충이들아 ! "








2. 외롭고 높고 쓸쓸한


안도현 시집 << 외롭고 높고 쓸쓸한 >> 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나는 안도현이 조금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시집 제목은 백석의 < 흰 바람벽이 있어 > 에 나오는 문장으로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 에서 " 가난한 " 을 지운 것이다. 그는 왜 하필 '가난하다'는 정치계급적 소외의 문제를 삭제한 것일까 ?  바로 그 점이 안도현의 한계이다. 내가 안도현의 < 외롭고 높고 쓸쓸한 > 이라는 문장에서 느끼는 것은 배부른 자의 낭만적 사치 혹은 서정성의 과소비로 보는 까닭이다. < 외롭고 높고 쓸쓸한 > 과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 것의 차이는 간단한 첨삭의 문제가 아니다. 








3. 한 수 위 


김봉곤 사태가 전입가경이다.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수록된 단편 << 그런생활 >> 에서 시작된 논란이 단편집 << 여름, 스피드 >> 로 옮겨붙었다. 소비자들은 고무신 거꾸로 신겠다며 절독을 선언하고,  출판사는 불난 집 불구경 하며 전봇대에 오줌을 누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져 당혹스러운 처지가 되었다. 고추를 털자니 발등이 뜨겁고 발등을 털자니 오줌이 흩뿌려지니, 이게 뭐하는 거니 ?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될 문제라고 선을 그었던, 팝콘각 하던 출판사들은 이제서야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다.  그동안 재현의 윤리성 문제는 많은 이들이 지적했으니 내가 이 자리에서 굳이 부언하지 않겠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이번 논란은 논외로 하더라도 << 그런 생활 >> 이라는 단편이 과연 문학성을 갖춘 작품이냐는 것이다.  << 그런 생활 >> 의 문장은 문학이 아니라 DM(direct message) 에 불과하다. 내가 보기엔 이 소설은 사소설(오토픽션)을 쓰려다가 자소설(자소서)로 빠진 경우다. 이 작품에 후한 점수를 준 젊은작가상 심사위원의 수준이 궁금하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이라 했던가 ?  문학동네 출판사가 문학동네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자사 직원에게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는 뻔뻔함은 작가의 뻔뻔함보다 한 수 위'다. " 문학동네여 !  밥은 먹고...... 다니냐 ? " 









4. 날 것과 익힌 것

요리란 날 것을 익히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는 고르기, 씻기, 다듬기, 숙성하기와 같은 손질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부피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문학은 요리와 같다. 문장에 맞는 적확한 단어를 고르고, 씻기고, 다듬고 숙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좋은 문학이 탄생한다. 김봉곤이 지인의 카카오톡 DM을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복붙하는 것은 밭에서 갓 뽑은 파를 접시 위에 올려놓고는 요리라고 우기는 꼴과 같다.  문학의 최소 단위는 문장인데 << 그런 생활 >> 속 실존 인물인 C누나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복붙한 원고지 10매 분량은 문장이 없다는 점에서 문학이 아니다. DM은 " 문자 " 이자 " 문장 " 이 아니지 않은가. 누군가의 촌평을 빌리자면  :  한국 작가들은 도발보다는 안전을 선택하다 보니 한국 문학에는 뉴페이스는 많은데 뉴웨이브는 없다. 그것이 한국 문학의 치명적인, 졸라, 조올라~  치명적인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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