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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이트 스토리 - [할인행사]
데이빗 린치 감독, 리차드 판스워드 외 출연 / 이지컴퍼니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리차드 판스워스 스토리
기승전결에서 결(結)은 누에 실(絲)과 길하다(吉)가 결합한 것으로 좋은 방향으로 매듭을 짓는다는 뜻이다. 해피엔딩을 위한 강요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해피엔딩보다는 새드엔딩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매듭을 짓는 종결보다는 매듭을 묶지 못한 채 미완성으로 끝나는 종결을 좋아해서 끝이 선명하고 안전하며 예쁜 것에 대해서 항상 회의적- 이다. 영화 << 연어알 >> 에서는 한 여자가 한 여자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는 잠시 발걸음을 멈춘 채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 현관문을 노크한다. 영화는 그 장면에서 느닷없이 끝난다. 일반적인 연출이었다면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서로 화해하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을 텐데 이 영화는 서로를 묶지 않은 채로 끝난다. 사람들인 불성실한 종결에 툴툴댔지만 나는 결이 없는 이 영화의 결'을 좋아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엔딩이었다. 데이비드 린치의 << 스트레이트 스토리 >> 도 훌륭한 엔딩의 모범이다. 동생은 중풍으로 쓰러진 형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는 사람의 보폭보다 조금 빠른 트랙터를 몰고 6주 간의 기나긴 여정을 떠난다. 그가 먼길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는 형과 화해를 하기 위해서다. 미안하다는 그 한 마디를 하기 위해 길을 떠난 앨빈 스트레이트는 형의 집 앞에서 그 이름을 부른다. 두 형제가 십 년 만에 만나는 자리이지만 뜨거운 눈물도 없고 포옹도 없다. 그저 낡은 의자에 앉으라고 권하는 것이 전부'다. 그리고 영화는 거기에서 끝난다. 그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보았던 용서와 화해의 방식이 아니었지만 그 어떤 장면보다도 뜨거웠다. 내가 감독이었다고 해도 그 장면에서 대화를 넣는다는 것은 부질없는 개입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리차드 판스워스와 해리 딘 스탠튼의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리차드 판스워스의 마지막 얼굴은 도무지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영화 속 캐릭터의 얼굴이 아니라 리차드 판스워스의 얼굴이었다1). 그의 얼굴에서 문득 헤밍웨이의 노인(노인과 바다)이 떠올랐다. 그는 어부였고 트랙터와 짐칸은 거대한 청새치처럼 보였다. 꿈을 이룬 자의 허무였을까 ? 영화 촬영을 끝낸 후, 그는 권총 자살로 생을 끝낸다. 그의 나이 79살이었다. 또한 이 영화는 그의 첫 번째 주연 작품이었다.
1) 영화를 보다 보면 종종 캐릭터의 얼굴(감정)이 아니라 배우의 얼굴(감정)이 보일 때가 있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연출한 영화 << 거미의 성, 1957 >> 에서 미후네 도시로는 반란군이 쏜 화살-들 때문에 사색이 되는 연기를 펼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장면은 죽음의 공포에 사색이 된 캐릭터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공포에 떠는 미후네 도시로의 실제 상황처럼 보였다. 후일담으로 전해진 사실에 의하면 미후네 도시로를 향해 날아든 화살들은 특수 효과가 아니라 실제로 양궁 선수들이 배우를 앞에 두고 화살을 쏜 것이라 한다. 한끗만 빗나가도 죽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으니 배우 입장에서 보면 그 표정 연기는 연기가 아니라 실제의 공포 체험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리차드 판스워스의 회한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먼길을 여행하고 돌아온,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문장 대신 표정으로 마지막 유언장을 작성한 그 장면 앞에서 나는 뭉클했다. 잊지 못할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