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늬 코듀로이 셔츠






                                              이십 년 넘게 입고 있는 꽃무늬 셔츠가 있다. 한 계절이 지나면 유행이 게눈 감추듯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나는 꿋꿋하게 이 옷을 챙겨 입는다. 셔츠 핏이 펑퍼짐해서 입으면 마대자루 뒤집어쓴 것처럼 보일 뿐만 아니라 재질이 고리땡(코듀로이)이어서 지나치게 촌스러워 보이지만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명품 브랜드도 아니다. 변두리 옷가게에서 파는 그 흔한 중저가 브랜드의 옷일 뿐이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옷의 핏에 대해 꽤나 까다로워서 작년에 산 바지 중에서 탭을 떼지도 않은 채 버린 것만 4개나 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정리하지만 버리려고 쌓아놓은 옷더미에서 다시 꺼내 챙기곤 한다. 아까운 마음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혹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왜일까 ?  곰곰 생각해 보아도 내가 이 낡은 옷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가 결혼했을 때 친정 엄마가 마련해준 비단 이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연을 들었다. 가볍고 보온성이 뛰어난 이불에 비한다면 친정 엄마의 비단 이불은 무거운 목화솜 이불이라 유행이 지난 이불인데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그때 비로소 나는 꽃무늬 코듀로이 셔츠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사연 속 그녀가 친정 엄마가 선물한 비단 이불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그녀에게는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 또한 꽃무늬 코듀로이 셔츠를 입었던 날들이 가장 행복했던 나날들이었다.  그때는 젊었으며 누군가를 사랑했고, 또한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시절이었다.  한여름 밤, 비가 후두둑 떨어지던 밤. 땀방울이 등골을 타고 내려와 엉덩이에 고였던,  섹스에 골몰했던 그 밤도 기억이 난다.  섹스가 끝난 후에 애인과 함께 나눠 피웠던 한 개비 담배의 맛을 잊지 못한다. 그러니까 내가 꽃무늬 코듀로이 셔츠에 애착을 보이는 것은 한때 행복했던 날들에 대한 집착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이해하면 태극기 부대에 참석하는 노인들이 박정희에게 보내는 애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에게 그들의 생애 중에서 가장 화려했던 날들은 아마도 박정희 시대였을 것이다. 그때 그들은 젊었고 아름다웠으며 씩씩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박정희는 친정 엄마가 결혼한 딸에게 선물했던 목화솜 비단 이불이었고 나의 꽃무늬 코듀로이 셔츠였던 것이다. 발 딛고 있는 지금이 불행할수록 애착은 커지는 법이다.  오늘도 나는 이 낡은 셔츠를 꺼내 입는다.  목둘레가 닳아서 헤어졌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행복했던 기억이 이제는 세월이 흘러 유행에 뒤떨어진 기억의 편린이라 해도 그것을 버리는 것은 어리석으니깐 말이다.  오늘 같은 날씨에 입기 좋은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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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2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4-22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