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함부로 밟지 마라
솔직히 말하자면 : 꾀죄죄하며 별 볼 일 없는 캄캄한 인생이어서 내 인생을 고백할 때에는 사실과 허구를 섞는 경향이 있다. 마치 맹탕인 맹물로 국물 요리를 할 때 조금이라도 괴기 : 부모 고향이 충청도라서 옛 어르신들은 " 고기 " 를 항상 " 괴기 " 라고 말씀하셨는데 고기라는 단어보다는 괴기라는 단어가 보다 간절하고 애절한 느낌을 준다. 괴기는 7,80년대 레트로 서정이다 맛을 느껴볼 요량으로 쇠고기 다시다 조미료를 넣듯이 말이다. 김혜자는 혜자스럽게 그래, 이 맛이야 _ 라고 말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 맛은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의 영역이지 않은가.
그 판타지를 즐긴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가난한 자에게 쇠고기 다시다 조미료는 논픽션의 맛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하여, 내 글에서 어느 부분이 픽션이고 어느 부분이 논픽션인가 라고 묻지 마시라. 국물에서 조미료 맛이 난다고 해도 모른 척하는 것이 음식을 만든 이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이다. 대장금의 홍시론(論)은 장금이가 어리니까 용서가 되는 것일 뿐이다. 옛날에 놀이터에서 담배 피우던 시절. 봄밤에 담배를 피우다가 내 그림자를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다. 내 키보다 길어서 부러웠던 그림자였다.
가끔 혼잣말을 하는지라 혼잣말로 부럽다 _ 라고 말하자 그림자가 벌떡 일어나는 사건이 있었다. 그림자가 아니라 그림자 흉내를 내는 노숙자'였다. 노숙 생활이 부끄러워서 그림자 행세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쓰레기통 그림자도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내 그림자를 흉내 냈던 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들은 주로 그림자 노동1)에 지쳐서 직장과 집을 뛰쳐나온 사람들이라고 했다. " 미국은 홈리스들이 1400만 명이랍디다. 엘에이나 샌프란시스코를 가 보세요. 거지가 그렇게 많은 도시는 LA와 SF가 유일할 거예요. 그런데 왜 서울에는 거지가 안 보이는 줄 아세요 ?
다, 그림자 행세를 하기 때문이에요. 담배 한 대 빌릴 수 있을까요? " 우리는 담배를 피우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림자 행세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냐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 당신처럼 자기 그림자를 물끄러미 보면 우리는 숨쉬기가 거북하답니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으니 말이에요. 대부분은 그림자에 대해 관심이 없죠. 어느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지요. 세상 사람들이 그림자를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것이 서럽기도 하지만 때론 그게 마음이 편해요. "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시간이 깊어져, 나는 내 그림자를 놀이터 공원에 남겨두고 떠났다.
어제 공원에서 그림자 넷이 꽁꽁 얼어서 동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추운 겨울이 되면 내가 두고 온 그림자 생각을 하게 된다. 밥은 먹고 다니는지, 사람들 발에 자주 밟히지는 않는지, 물끄러미 바닥을 보는 이 때문에 숨쉬기가 불편하지는 않는지..... 그런 걱정을 하게 된다. 그림자 함부로 밟지 마라. 당신이 아무 생각없이 그림자를 밟는 짓은 누군가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이다.
1) 그림자 노동 : 노동을 했지만 보수를 얻지 못하는 무급 활동으로, 오스트리아 철학자 이반 일리치(Ivan Illich)가 동명의 저서에서 처음 언급한 개념이다. 직접 주유를 하는 셀프 주유소, 비대면 거래를 위해 각종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 모바일 뱅킹, 주기적인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저렴한 상품을 사기 위해 정보 수집을 하는 행위 등이 그림자 노동에 해당한다. 셀프서비스라는 명목 아래 이뤄지며, 비용을 아낄 수 있지만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자동화, 무인화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그림자 노동이 늘어가는 추세이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저임금 일자리가 없어지는 원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