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한 죽음



                        8월 여름이었다. 내가 사는 빌라 현관 입구를 지나치려다가 계단 밑에서 몸을 웅크린 참새를 발견했다. 참새 중에서도 몸집이 작은 것으로 보아 새끼가 분명했다. 참새는 내가 가까이 다가갔는 데도 몸을 웅크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더위 먹은 참새였다.

자세히 보니 깃털도 여기저기 뽑힌 것으로 보아 들짐승의 공격도 받은 모양이었다. 나는 손 감옥을 만들어 새를 가둔 후에 집으로 데려갔다. 우선, 베란다에 물을 흥건히 뿌려 온도를 낮추고, 잎이 넓어서 짙은 그늘이 지는 파초 화분에도 물을 흥건히 뿌려서 환경을 조성한 후에 참새를 그 화분 속에 넣어 두었다. 서서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늘에서 쉬면서 기운을 차리면 곧 하늘로 날아가리라. 쌀과 함께 물그릇도 화분 속에 두었다. 나는 화분 속 참새가 궁금하여 자주 베란다를 향했다. 참새는 그때마다 인기척을 알아차리고는 숨는 시늉을 하곤 했다. 쉽게 죽을 것 같진 않았다. 부릅뜬 눈이 제법 초롱초롱했다.

10분이 흘렀을까 ?  내가 다시 그 참새를 보러 갔을 때 참새는 그새 죽어 있었다. 그때 내가 발견한 것은 " 참새의 간결한 죽음 " 이었다. 참새는 죽기 전까지 두 눈 부릅뜨고 서서 버티다가 동정同情도 없이, 애도哀悼 도 없이, 그리고 자기 연민도 없이 홀로 죽는 것이다. 나는 이 작은 짐승의 죽음 앞에서 어떤 숭고한 힘을 느꼈다. 불현듯 D.H 로랜스의 Self Pity / 자기 연민'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I never saw a wild thing sorry 

for itself.

A small bird will drop frozen dead from a bough 

without ever having felt sorry for itself.


자기 연민에 빠진 짐승을 본 적 없네

얼어 죽어 가지에서 떨어지기 전까지

작은 새, 결코 자신을 동정하지 않네


죽은 참새를 크리넥스 티슈로 감싼 후에 산에 묻었다. 들짐승이 무덤을 파헤치지 않도록 그 위에 제법 큰 돌을 얹었다. 최은영 소설집 << 쇼코의 미소 >> 에 수록된 단편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에서도 " 곰 " 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는 홀로 죽기 위해 평생을 살았던 보금자리 집을 떠나, 어두컴컴한 어느 곳에서 죽는다. 


곰은 마지막 며칠 동안 너무 아파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어. 그런데도 곰아, 부르면 애써서 고개를 들고 꼬리를 치는 거야. 곰아, 밥 먹어, 말하면 곰은 안 아픈 척 밥에 코를 대고 먹는 시늉을 했어. 그런 곰 앞에서 울었어. 곰이 단순히 아픈 게 아니라 죽어간다는 걸 느꼈거든. 한 밤을 자고 나서 개집에 가니 곰이 사라졌더라. 그애가 사라지고 한 달 내내 울면서 학교를 다녔어. 울고 또 울었지. 내가 괜히 곰 앞에서 눈물을 보여서 곰이 집을 나갔다고 생각했어. 자기가 아픈 걸 보고 내가 마음 아파하니까 죽으러 나간 거라고 생각하며 자책했지. 아무리 슬프더라도 내색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울지 말았어야 했는데. 




- 최은영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곰은 죽을자리를 찾기 위해 보금자리를 떠난다. 곰은 자신의 죽음을 동정하지 않는다. 내가 키우던 개도 그랬다. 죽기 10분 전까지 고개 빳빳이 들었다. 내일 다시 올게 _ 라는 내 말에 개는 힘차게 꼬리를 흔들었다. 일련의 죽음들과 마주하면서 깨닫게 된다. 내 죽음 앞에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자고. 살고 싶다고 애원하지 말자고. 죽을 때는 간결하게 죽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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