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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안  불  알  하  다     :














신경숙 문학이 타락한 한국 문학을 대표한다고 ?!














외대 근처에서 식당을 하는 그는 시간 날 때마다 세계를 여행한다. 소식이 뜸하다 싶으면 여행 중이라 생각해서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한다. 언젠가는 자전거 한 대로 일본 열도를 여행하며 쓴 기록을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그가 스페인을 여행할 때였다고 한다. 우연히 한국인 여행자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느닷없이 대화 도중에 페루애를 언급하며 열을 올리더란다. 처음에는 페루(에 사는) 애'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는 동방예의지국에서 입만 열었다 하면 불알후드를 남발했던 그 페루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머나먼 이국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페루애란 이름을 들어서 신기했다고 외대에서 식당을 하는 그는 말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글쓰기 창(플렛폼)을 통해서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서 서로의 취향이 비슷하다면 그것을 공유 혹은 체험하게 되는 경우는 드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취향이 비슷하다면 끼리끼리 모여 알음알음 알게 되는 시대가 바로 뉴 미디어 시대이다. 이제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만이 그 권위를 부여받아 글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시대는 지났다. 아니 끝났다. 깐 데 또 까는 일본 순사처럼 보다 잔인한 어조로 말하자면 그런 시대는 죽었다 ! 


그런데도 불구하고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서 권위를 부여받아 특권을 누렸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등단 제도는 그들의 나와바리를 공고하게 만드는 집단 이기주의를 대표하는 표본이지만 이 적폐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문인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죽은 아들 불알 만지듯이 미련을 못 버리고 이미 죽은 한국 문학의 불알을 만지며 한국 문학의 부활을 외치고 있으니 볼 때마다 불안불알하다.  그들을 보면 안쓰럽게보다는 미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문학이 세상을 구원하는 시대는 지났다. 


발가락 다쳤다고 낑낑대는데 정강이 냅다 걷어찬 꼴이라 미안하기는 하지만 그 사실을 그들만 모른다. 신경숙 표절 사태에서 내가 정작 한심하게 생각했던 이는 신경숙이 아니라 신경숙 표절을 최초로 고발한 이들의 고결한 결의'였다. 이응준이 신경숙을 고발하면서 " 타락한 한국 문학에 맞 -  " 서야 한다고 말할 때, 내 눈에는 이 순정이 순결하다기보다는 미련하게 보였다. 왜냐하면 신경숙 때문에 한국 문학이 타락한 것이 아니라 등단 제도'라는 나와바리를 지키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던 한국 문학 전체가 공모했기 때문이다. 한국 문학의 타락은 신경숙을 비롯해서 등단 제도의 혜택을 누린 문단 전체'에 있다. 


그렇기에 신경숙만 싸잡아서 적폐라고 주장하는 것은 죄를 은폐하기 위한 문단의 격동적인 수사이자 서둘러 종결하기 위해 에둘러 말하는 게으른 으름장이다. 신경숙 문학이 타락한 한국 문학을 대표한다고 ?! 아니다, 한국 문단이 타락한 한국 문학을 대표한다. 







덧대기

젊은 예비 작가들이 등단 제도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문단 어르신의 취향에 맞춰야 한다. 문단 어르신이 대부분 장년의 남성 엘리트 집단이라는 점에서 젊은 예비 작가들은 철저하기 늙은 남성의 욕망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한국 문학이 늙어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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