쩨쩨한 문학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부분 쩨쩨하다. 궁상맞다고나 할까 ? 형색은 꾀죄죄하고 성질머리는 구질구질하다. 또한 다른 문학 속 주인공과는 달리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혼잣말을 할 때는 달변인데 타인과 대화를 나눌 때에는 눌변인 경우가 많다. 내 눈에는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은 궁서체의 세계'처럼 보인다. 다변과 요설의 세계인데 그 뒷면은 눌변이고 변명의 세계이다. 배경음악으로 궁상각치우로 이루어진 풍악이 울리면 금상첨화'다. 공교롭게도 나는 쩨쩨한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을 좋아한다. 반면에 장황한 주제와 맞물린 문학은 질린다. 국민교육헌장의 세계, 그러니까 안으로는 자주 독립을 확립하고 밖으로는 인류 공영에 이바지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문학을 읽을 때마다 속으로 생각한다. 너나 잘하세요. 한국 문단은 스스로를 지고지순한 존재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응준이 신경숙 표절을 고발하면서 촉촉한 문장으로 순문학의 순결한 의지와 회복을 강조했을 때 나는 이응준의 결의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문학적 신파를 읽었다. 한국 문인들은 매문을 치욕적인 것으로 간주하지만 사실 밥벌이를 위해 억지로 글을 썼던 대문호는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도스토예프스키'였다. 곰곰 생각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빚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서 글을 써야 했기에 궁상스러운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톨스토이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좋고 다자이 오사무가 좋다. 굶어죽을 걱정은 없으나 시간이 남아돌아서 글을 쓰는 작가의 작품은 원인 모를 반감이 든다. 이런 작가들이 대부분 안으로는 자주 독립을 확립하고 밖으로는 인류 공영이 이바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죽는 주인공보다 나를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죽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죽는 이도 치열하지만 나를 구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죽는 이도 치열하기는 마찬가지이니 둘 다 이열치열이다. 숭고한 문학은 얼마든지 찬양할 용의가 있다. 하지만 문학은 반드시 숭고해야 된다고 믿는 문인을 보면 귀싸대기 한 대 날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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