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의 세계 : 검술이냐 칼질이냐, 그것이 문제다
내 또래 불알후드-들이 오우삼 스타일의 영화에 열광할 때 나는 콧방귀를 꿨다. 바바리코드 입고 입에 성냥개비 물고 있는, 입만 열었다 하면 " 의리 " 를 따지는 영웅본색 시리즈를 보면서 지랄이 풍년 _ 이라고 수없이 되뇌였다. 일단, < 의리 > 라는 야리꾸리한 수컷의 황홀한 대(大)서정'에 동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인간 관계에서 지켜야 할 도리'라고 천연덕스럽게 찬양하는 작태는 더욱 꼴불견이었다. 그래서 쌈마이 양아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국 깡패 영화를 볼 때마다 닭살이 돋는다.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남정네를 볼 때마다 " 의리는 산 같고 죽음은 기러기의 깃털 같다 " 라는 북한 속담을 떠올리게 된다(북한 속담이 의외로 시적인 경우가 많다). 의리는 태산 같이 무겁고 죽음은 기러기의 깃털 같이 매우 가볍다는 뜻으로, 의리를 위하여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불알후드의 지랄 같은 허세를 지적하는 속담이다. 입만 열었다 하면 의리를 말하는 이에게는 유감스러운 말이지만 : 의리를 위해 죽는 놈은 대부분 조직폭력배들이다. 조직의 오야붕을 위해서 꼬붕이 죄를 뒤집어쓰는 경우는 흔하디 흔하디 흔하디 흔하디 ? 의리와 조직이 만나는 순간, 의리는 부패하기 쉽다. 우리가 남이가 _ 라고 묻는 순간, 의리는 더 이상 의리'가 아니라 이리 떼의 낭심에 지나지 않는다. 내 또래들이 내 귀에다가 우리가 남이가 _ 라고 속삭이며 친한 척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 그럼 우리 사이가 남이지 님이냐, 이 씨발놈아 ! " 그래서 나는 검사 윤석열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고 말했을 때 상당히 양아치-스럽다고 생각했다. 사람에게 충성하는 놈보다 더 나쁜 놈은 조직에게 충성하는 놈이다. 그래서 나는 사나이 의리를 최고 덕목으로 삼는 홍콩 느와르(오우삼 영화)보다는 차라리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찾아 복수를 한다는 홍콩 무협물이 좋다. 원화평 감독의 << 철마류 >> 는 내가 이안 감독의 << 와호장룡 >> 과 함께 최고의 무협물로 뽑는 영화'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둘 다 원화평이 무술 감독'이었다는 점이다(영화 << 매트릭스 >> 의 무술 감독도 원화평이다. 가만 ! 생각해 보니 << 킬 빌 >> 의 무술 감독도 원화평이었군). 윤석열이 부패한 검찰의 오야붕이라면 원화평은 와이어 액션 연출의 최고봉이다. 그 정점이 바로 << 철마류 >> 이다. 이 영화를 처음 발견했을 때 느꼈던 희열은 뜨, 뜨거웠다. 검을 미학적으로 휘두르면 검술이 되고 칼을 더럽게 휘두르면 칼질이 되는 법이다. -술(術)이냐 -질이냐는 칼을 쓰는 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석열 씨, 칼질은 경양식집 스테이크 썰 때 사용하세요.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사랑하는 조국을 응원할 것인가 썩어빠진 조직을 응원할 것인가 ? 묵언을 금한다. 당장 내 앞에서 고하라. hurry u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