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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VCD]
봉준호 감독, 고아성 외 출연 / 대경DVD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봉준호의 괴물에 대하여 :
잔디밭을 쑥대밭으로 만들 때
너무 빨리 다가온 타자는 괴물이 되고 영영 오지 않는 타자는 메시아가 된다1)
조용필과 괴수(물)의 공통점은 둘 다 피날레를 풀샷으로 장식한다는 점이다. 내가 기억하는 조용필은 피날레 무대에 올라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하늘에서는 박이 터지며 색종이 날리고, 무대에서는 박수 터지며 환호를 날린다.
삼 파장 발광 다이오드적 극성이 내장된 럭키금성 티븨 모니터 화면에 엔딩 자막이 뜬다.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 다음에 또 만나요 ! 괴수(물)가 등장하는 장르도 마찬가지'이다. 괴수는 처음부터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저잣거리를 염탐하는 < 거리 두기 방식 > 을 선호한다. 그렇기에 관객이 괴수의 전신을 보기 위해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장르적 약속이자 관습이다. 관객은 절정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괴수 신체의 편린-들'만 볼 수 있다. 관객에게 전부가 아닌 부분만 살짝살짝 보여주는 열쇠 구멍 수법은 " 감질나 " 지만 또 나름 그것이야말로 괴수물의 " 감칠맛 " 이기도 하다. 그래, 이 맛이야 !
일종의 절편음란증적 관습을 즐기는 경우이다. 장르 마니아라면 장르 영화 패턴이 똑같다며 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익숙함에 대한 무저항이 바로 장르 마니아의 미더덕'이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 괴물, 2006 >> 은 장르의 익숙한 순서를 180도 뒤집는다. 괴물은 영화가 시작한 지 20분이 채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낮에 보란듯이 전신을 드러내며 한강 공원의 고른 잔디밭을 들쑥날쑥한 쑥대밭으로 만든다. 여담이지만 : 한강 공원 잔디밭이 딸기밭이라 한들 한순간에 쑥대밭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보고 있나, 신 작가 ! 관객은 예상치 못한 등장에 당황하게 된다. 장르적 습속에 익숙했던 관객은 마음의 준비도 없이 불쑥 자신에게 달려드는 괴물에게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너무 빨리 다가온 타자는 괴물2)이 되고, 영영 오지 않는 타자는 메시아가 된다는 점에서 봉준호의 << 괴물 >> 은 너무 빨리 등장한 타자이다. 감독은 관객이 방심하고 있을 때 허를 찌른 후 냅다 도망친다. 일격인 셈이다. 봉준호의 치밀한 전략 앞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절정이 맨 앞에 배치되다 보니 김 빠진 전개가 펼쳐질 것이라 예상하지만, 영화가 장르적 재미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괴물의 한강 공원 난입 사건이 사실은 진짜 절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영화 제목은 << 괴물 >> 이지만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이다.
진짜 오르가슴이라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가짜 오르가슴이라고 밝혀졌을 때 관객은 일종의 보너스를 얻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까 영화 속에서 관객 마음을 사로잡는 < 가짜 오르가슴 > 은 노래방에서 마지막 노래를 열창하고 나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노래방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 마음씨 좋은 노래방 주인이 보너스 타임을 넉넉하게 넣어줄 때의 환희와 같다.
1) 김영민, 집중과 영혼 962쪽
2) 인간과 짐승은 모두 < 곁 > 이라는 이름의 고유한 영토를 가지고 있다. 이 영토(거리감)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법으로 보호를 받는다. 그래서 친밀하지 않은 낯선 타자가 자신의 동의 없이 곁을 침범하며 팔짱을 끼거나 허리를 감싸는 행위는 불법인 것이다(성범죄가 대표적이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너무 빨리 다가오는 타자는 괴물이 되는 것이다. 봉준호의 괴물은 그 어떤 동의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인간의 곁을 공격하고 파괴한다. 괴물이 너무 빨리 다가온다면 신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이다. 신이 인간의 권선징악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신은 인간에게 관심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