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의 유령




 



                                                                                                                                                                                          근대화의 특징 중 하나는 " 개인의 발견 " 이다.  전근대가 인간 - 몸'을 국가나 신에게 예속된 신체로 취급했다면 근대는 이것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한국 사회에서 전근대를 사로잡은 것은 효(孝)와 충(忠)이다. < 효 > 가 부 父를 향한 복종이라면 < 충 > 은  국부 國父나  대부 代父를 향한 맹세다. 국부(혹은 대부)는 아버지의 아버지, 혹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이다. 이 수식이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어질수록 대타자로서의 아비는 절대자에 가깝다.  < > 는 子(아들)이  耂(노인) 을 등에 엎은 꼴로 젊은이가 노인을 위해 희생해야 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 < 忠 > 은 중심(주류)을 위해 변방(비주류)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권력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부류가 老(늙은 정치인)와 中(중앙 권력)이라는 점에서 충효 사상은 주인에 대한 맹세와 복종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그런데 근대화 과정은 아버지에 예속된 인간의 몸을 독립된 개체로 해방시켰다.  그것이 바로 개인으로서, 시민의 탄생'이다.  집단(集團)에서 개인(個人)으로 분산되어 개성(個性)을 획득하는 과정이 근대화 과정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근대화는 언제였을까 ?  우리는 박정희(정권)를 " 근대화와 산업화의 아버지 " 라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박정희 시대는 산업화는 성공했지만 근대화는 실패한 정권이었다.

왜냐하면 박정희는 전근대의 유물인 충효를 정치 철학으로 계승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에게 그는 아버지였고,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의 아버지였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였다. 다시 말해서     :     한국 사회는 전근대를 지나 근대화를 거치지 않고 산업화로 점프 컷 했으며,  곧바로 현대화에 다다른 기형적 형태를 보인다.  근대화 과정이 생략된 한국 사회가 지금의 현대성이다. 근대화 과정이 전근대의 유령들을 제거하는 문화 혁명에 속한다면, 한국 사회는 전근대의 유령을 제거하지 못했기에 지금도 곳곳에서 전근대화의 유령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이성복 시인은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입이 열이라도 할 말 없어 _ 라고 저항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여전히 강력하다.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광선검을 꺼내며 호통을 친다. 이놈, 내가 네 애비닷 ! ! ! !               이명박근혜 정권 때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 명량, 2014 >> 과 << 국제시장, 2014 >> 을 관통하는 이데올로기가 바로 충과 효'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박근혜가 죽은 아버지의 유령을 되살려 놓았다는 데 있다. 이 경험들은 매우 불쾌한 것이다. 영화 << 명량 >> 은 선내에서 노를 젓는 노잡이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후손들은 알까?  " 

죽은 자의 생색내기는 << 국제 시장 >> 을 관통하는 열쇳말이기도 하다.   덕수(황정민 분) 는 울먹이며 말한다.  "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   덕수는 아버지를 향해 넋두리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대상은 극장을 찾은 아들 - 들이다.  두 대사가 내포하고 있는 속내는 명확하다.  그들은 모두 아들-들에게 충효를 강요한다.  나만 고생할 수는 없지 _ 라는 심보가 잃힌다.  나는 이 충고가 같잖다.  누가 나에게 근대화를 20자 내로 요약하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입이 열이라도 할 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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