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
폭염사회
비만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혈기왕성했던 시절, 싸우다가 왼쪽 어깨뼈(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다)가 주저앉은 채 산산조각이 난 적이 있다.
의사는 내 몸 상태를 보더니 깜짝 놀라서 외쳤다. " 놀랍군요. 이 부위는 강철 같아서 교통사고가 나도 이 뼈만큼은 대부분 멀쩡합니다. 도대체 당신과 싸운 사람이 누구인가요 ? 놀랍군요 ! " 놀랍긴...... 피죽도 못 먹은 것처럼 생긴 사람에게서 줘터졌수다. 그날 이후로 왼손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왼손잡이였던 나는 결국 바른(손)생활을 해야 했다. 한강 이북, 저 어두컴컴한 지하실 알전구 밑에서 삐라를 등사하던 빨갱이 새끼가 좌식(左式) 생활을 청산하고 양변기 위에 앉아서 생활을 하니 드디어 바른생활 사나이가 된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고 눈이 퀭한 녀석에게 줘터진 사건도 기억에서 점점 사라졌다.
어깨너머의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만든 이는 양복 재단사였다. 동생 지인이 맞춤복을 전문으로 하는, 인천에서 유명한 양복 재단사'라 해서 결혼을 앞둔 동생 권유로 그 양복점을 찾은 적이 있다. 재단사는 보통 키에 몸무게는 100kg은 족히 넘어 보였다. 옷을 다룬다는 것은 몸을 다룬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자기 관리에 실패한 재단사를 보자 나는 지레짐작으로 그가 옷을 다루는 실력도 형편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눈빛이 묘하게 반짝거렸다. 거울 앞에 선 재단사가 말했다. " 고객님은 오른쪽 어깨와 왼쪽 어깨 길이가 다르군요. 1.5cm 차이가 납니다. "
< 어깨 깡패 > 라는 소리는 들은 적 없으나 그렇다고 < 어깨 짝짜기 > 라는 소리도 금시초문이어서 자세히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오른쪽 어깨는 一 ( 한 일)자 형태인데 왼쪽 어깨는 丿(삐침 별) 자'였다. 평생 내 눈으로 보았던 " 알 몸 " 이 알고 보니 정작 " 모르는 몸 " 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한쪽 어깨가 주저앉았으니 길이가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소리. 그때 비로소 잊고 지냈던 피죽도 못 먹은 사람처럼 눈이 퀭했던 녀석의 원 펀치 쓰리 강냉이가 떠올랐다. 나는 거울을 보며 재단사에게 말했다. " 옛날에 어느 멸치 같은 놈에게 맞았는데, 그 녀석의 원 펀치 쓰리 강냉이에 그만 어깨가 부러졌었습니다. "
솜씨 좋은 재단사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 걱정 마십시오. 왼쪽 어깨 라인에는 주저앉은 어깨를 보완할 보충제를 넣어드리지요. 일명, 뽕이라고 하죠. 재미있는 농담 하나 할까요 ? 재단사가 하는 일은 옷을 만드는 게 아니라 고객의 어깨를 곧추세우는 일입니다. 명품 양복을 입으면 자연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리게 되거든요. 남자가 고추를 세우는 일은 쉽습니다. 하지만 어깨를 곧추세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죠. 하하하하. " 듣고 보니 재단사 말이 일리 있는 소리여서 나도 따라 웃었다. 열흘 후, 재단사가 재단한 양복을 찾으러 양복점을 찾았다. 재단사 앞에서 양복 상의를 입어보았다. 오, 내 피부처럼 몸에 딱 맞는 옷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