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가 가 는   주 먹 질 에    불 타 는   사 랑   :




 



    영화, 독전 2018







 


                       

 < 거울 앞에 선 당신 > 이라는 제목으로 영화 << 달콤한 인생 >> 에 대한 리뷰를 작성한 적이 있다. 코미디를 중심으로 한 한국형 조폭 영화 장르가 흥이 쇠하자 그 대안으로 느와르를 끌어들인 영화'다. 외형은 느와르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코미디로 우려먹은 조폭영화'를 느와르라는 장르로 변용한 것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주목한 대목은 보스(김영철)과 선우(이병헌)의 동성애 코드'였다. 하드코어 러브 라인'이라고나 할까 ?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사랑에 눈이 먼 " 질투 " 다. 여자 희수(신민아)는 두 남자를 파괴하게 만드는 팜므 파탈 역'이다. 느와르 장르에서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 동성애를 의리(믿음), 충성심, 복수심 따위로 치환하는 경우가 많다. 불알후드는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못해 의리, 의리, 의리를 외친다. 사실,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랑은 싸움에서 싹트는 것이 아닌가. 로맨틱 코미디가 서로 꼴도 보기 싫은 두 남녀가 티격태격 싸우다가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 장르라면, 현대 느와르는 두 남자가 주먹질을 하다가 성감대에 눈뜨는 장르다. 이들에게는 주먹이 성감대요, 주먹질이 섹스'다.

내가 한국형 느와르 조폭 장르 영화 << 달콤한 인생 >> 이 동성애 코드를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을 때, 그 말을 제대로 듣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최근의 느와르 영화인 << 불한당 >> 과 << 독전 >> 에 흐르는 야리꾸리하고 멜랑꼴리하며 제대로 어쭈구리한 분위기를 경험한 관객들은 내 주장이 꽤나 설득력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간파했을 것이다. 느와르 장르는 밤꽃 향기 작렬하는 다 큰 수컷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라캉의 거울단계를 통해서 자아를 인식하고 난 후, 이제 막 남근기에 접어든 얼라들의 판타지'다. 얼라(♂)는..... 고추에 관심이 아주 많답니다아.

그래서 느와르 장르 영화는 유독 자기 모습을 반사하는 거울 이미지에 집착한다. << 달콤한 인생 >> 은 온통 반사되는 것투성이'다. 선우는 밤 유리창 앞에서, 대리석으로 장식한 기둥 앞에서, 바닥에 깔린 반짝거리는 물성 앞에서 항상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 근원적 나르시시즘 " 이요, 라캉이 재해석한 " 거울단계 " 이다. 선우는 사방이 거울인 공간에 갇힌 주인공이다. 그들이 반짝거리는 것투성이 앞에서 응시하게 되는 것은 블랙 아르마니 슬림핏 수트 입은 남근이다. 매혹된다. 아따, 좆나 멋져부러.  그렇다면 왜 매혹과 남근은 떼래야 뗄 수 없는 젖은 땔감과 같은 관계일까 ?





아아, 거울 앞에 선 당신


 


                                                                                                 드라큘라는 목이 잘리거나 가슴에 말뚝이 박히지 않는다면 불로불사하는 존재'다. 때가 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인간이 보기에 때가 되도 죽지 않는 운명을 가진 드라큘라는 이상한 존재가 아니라 이상적 존재'다. 그가 불로불사하는 데에는 거울에 자기 모습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드라큘라는 거울 - 이미지가 없다.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다. 혹은 볼 수 없는 자'다.      볼 수 없음, 이 가혹한 맹목이 그에게 영생을 준다. 드라큘라는 눈먼 자'다. 그리스 신화에서 거울 - 이미지는 " 대상과 정면으로 마주할 때 " 발생하게 되는데 < 보는 행위 > 는 상실이나 죽음의 오브제로 작동한다. 주신(酒神)인 디오니소스(바쿠스)는 " 다시 태어난 자 " 라는 뜻이다.  다시 태어났다는 말은 곧 죽은 적이 있다는 의미이다.  디오니소스가 거울에 반영된 자기 모습에 홀려 방심한 사이,  티탄이 그를 갈가리 찢어 죽이게 된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디오니소스는 거울 - 이미지 때문에  죽었다.

디오니소스와 똑같은 운명을 가진 자가 바로 나르키소스와 메두사'다.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반영을 보다가, 메두사는 페르세우스의 방패에 비친 반영을 보다가 죽는다. 셋은 모두 거울 - 이미지에 반사된 상(象)에 매혹된 자들이다. 그들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정면을 응시한다.  매혹을 뜻하는 fascination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fascinus와 관련이 있는데 fascinus는 발기된 음경'이라는 의미이다.  그들이 거울을 통해 본 것은 모든 성감대로 몰려있는 쾌락-몸'인 성기'다. 소크라테스는 " 너 자신을 알라 " 고 말하지만,  그리스 신화 - 서사'는 " 너 자신을 알면(보면) " 죽는다고 경고한다.

거울 속에 비친 상(象)은 위험한 욕망이다. 라캉은 디오니소스의, 나르키소시의, 메두사의 자기 환시'를 대상 소문자 a 로 해석한다. 인간은 a를 얻기 위해 다가가지만 막상 움켜쥐는 순간 죽음에 이르게 된다.  김지훈 감독이 연출한 << 달콤한 인생, A Bittersweet Life, 2005 >> 은 자신을 정면에서 응시한 자의 몰락을 다룬 영화'다. 조폭 사회는 불알후드(brotherhood)의 세계'다. 그곳은 동성애적 공간이기도 하다. 거칠게 다루는 하드코어 러브인 셈이다.  강 사장(김영철 분)과 선우(이병헌 분)는 유사 부자 관계이며 사제 관계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연인 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연인 관계라기보다는 선우가 강 사장을 짝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혹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권력을 향한 " 자리싸움 "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 사랑싸움 " 인 것이다. 선우가 자신의 동성애를 인식하게 되는 시점은 희수가 방송국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장면에서다. 그는 방송국 녹음실 안에서 유리 부스(booth) 너머 희수가 연주하는 모습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동안 대상(희수)을 흘깃 곁눈질로 쳐다보기만 했던 그가 희수를 정면에서 오랫동안 응시하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선우와 희수 사이에 놓인 유리라는 " 거울 - 이미지 " 로써의 물성(物性)이다. 이 장면은 선우가 타자를 응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디오니소스처럼, 나르키소스처럼, 메두사처럼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응시하고 있다. 

선우는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은 희수가 아니라 강 사장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자신이 여성성을 가진 " 바텀(bottom) " 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희수는 선우의 욕망이 투사된 거울 - 이미지이다.  바텀인 선우는 희수처럼 탑인 강 사장에게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다.  영화 << 달콤한 인생 >> 은 거울(자기 모습을 반사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보여준다.  호텔 바 내부는 " 거울  이미지 " 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온통 반사되는 것투성이'다. 선우는 호텔 바 어디에 서 있어도 반사된 자신을 볼 수 있다. 그는 밤이 스며든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며 황홀해 한다.

이 자기애'는 영화의 주제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사랑하는 대상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자기애의 본질은 동성애'이니까.  이처럼 이 영화는 자기 반영에 대한 황홀경을 다룬다.  선우가 늦은 밤, 어둠이 깃든 유리 벽을 보며 샤도우 복싱을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거울을 보는 자,  죽는다.   영화 << 달콤한 인생 >> 은 잘 만든 느와르이면서 동시에 잘 만든 동성애 영화'다 ■

 



영화 << 독전 >> 은 원호(조진웅)와 락(류준열)의 러브라인을 다룬다. 주먹은 거친 사내들의 성감대요, 주먹질은 섹스'다. 오고가는 주먹질에 싹트는 사랑. 이 영화에서 유심히 살펴보아야 하는 대목은 프로덕션 디자인(미술디자인)이다. 이 영화는 << 달콤한 인생 >> 과 마찬가지로 반짝거리는 것투성이로 구성되어 있다. 거울 단계에서 벗어나 남근기에 다다른 주요 관객층을 겨냥한 서비스'다. 사춘기와 거울,  떼래야 뗄 수 없는 젖은 땔감 같은 관계가 아니던가. 이런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모두 멋진 갑바'로 관객을 매혹시킨다. 봤냐, 내 갑바 !  영화 << 독전, 2018 >> 은 외양은 훌륭하나 아쉽게도 깊이는 없다.

삐까뻔쩍, 반짝거리기는 하나 깊게 파고드는 통점은 부족하다. 그것은 불알후드의 불꽃 튀는 케미'가 실패한 탓이다. 하지만 어떠랴.  이제 막 남근기에 접어든 얼라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에는 성공한 영화'다. 훌륭한 연기라고는 할 수 없으나 비주얼만큼은 훌륭한 류준열의 날카로운 턱선이 당신의 심장을 베어버리리리. 독전의 영어 제목 << Believer >> 는 마치 << Belover(beloved) >> 처럼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