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동백꽃을 처음 본 곳은 거제도였다. 동백, 그 흔한 꽃을 그곳에서 처음 봤을까마는 거제에서 본 동백은 서늘할 만큼 아름다워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거제도에 머무를 때였다. 지인'이 늦겨울에 꽃구경 가자 했을 때 퉁명스럽게 개나리 보러 내가 거제도까지 왔겠소 _ 라는 신소리를 하고 싶었으나 마땅히 할 일도 없던 터라 꽃구경을 핑계 삼아 대낮부터 겨울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 앉아 싱싱한 횟감을 앞에 두고 밖에 두어 살얼음 낀 소주를 마시리라, 생각하니 좋은 거라. 우리 일행이 간 곳은 장사도( - 島)였다. 장관이었다. 그곳에는 10만 그루의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감탄한 대목은 " 개화 " 가 아니라 " 낙화 " 였다. < 보통의 낙화 > 라면 꽃잎이 한 잎 두 잎 바람에 떨어지다 지는 풍경일 텐데, 동백꽃은 꽃잎이 낙화하는 것이 아니라
새빨간 꽃 머리(꽃송이) 전체가 쑥 빠져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을 꼼꼼히 살펴보면 심상치 않다. 일반적으로 낙화란 꽃의 노화 현상인데, 바닥에 떨어진 동백꽃은 노화는커녕 무섭도록 싱싱한 모습을 보인다. 조금도 시들지 않은 모습으로 어느날 아침 바람 없는 날에 툭, 무심하게 떨어지는 것이다. 모두 다 하늘을 향한 채. 눈을 부릅뜬 채 참수 당한 젊은 혁명가의 머리 같다. 묘하다. 정말, 묘하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처절한 모습이나 처절하기 때문에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나는 한순간에 멜랑꼴리하며 야리꾸리한 동백꽃에 매료되었다.
이 기묘한 감상은 나만은 아닌 모양이다. 제주도에서 동백나무는 불길한 나무라 하여 집안에 심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무사 목이 잘려 땅에 떨어진 모습을 연상케 한다 하여 춘수락(椿首落)이라고 하였다. 영화 장르에 빗대서 동백꽃을 비유하자면 로맨스보다는 느와르에 가깝다. 우리 일행은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싱싱한 횟감에 찬 소주를 마셨다. 이보다 좋은 화전놀이는 없어라. 2차는 노래방이었다. 청승맞은 노래는 금물이라는 강령을 어기고 나는 박상규의 조약돌을 불렀다. 꽃잎이 한 잎 두 잎 바람에 떨어지고 / 짝 잃은 기러기는 슬피 울며 어디 가나 / 이슬이 눈물처럼 꽃잎에 맺혀 있고 / 모르는 사람들은 제 갈 길로 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