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봄이 오면
시적 간결함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지만, 종의 수컷들은 그 혼자로도 충분했을 텐데도 짝을 부여받았잖아요 ! " 우레와 같은 박수.
- 모스크바의 신사 中, 에이모 토올스
꽃 피는 봄에 아프리카로 사파리 여행을 떠난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사자들이 들소 떼를 사냥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먹잇감은 암컷이 잡았으나 들소 만찬을 시작할 즈음에 (사냥에 참여한 적도 없던 무리의) 우두머리 수컷께서 갑자기 나타나 제일 먼저 숟가락을 드시었다. 그 풍경을 본 그녀는 " 뻔뻔한 불알후드의 가부장적 허세 " 는 짐승 새끼나 인간 새끼나 똑같다는 사실에 쓴웃음을 지었다.
에라이, 사파리에도 지랄에 풍년이 물드는구나. 배가 부른 수컷은 사파리 여행용 차가 지나가는 길에 배를 드러낸 채 엎드리고는 코를 골며 잠을 자기 시작했다. 사파리 여행자들이 차 안에서 사진을 찍으며 요란법석을 떨어도 배부른 사자는 눈만 끔뻑 끔뻑거릴 뿐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는 차가 사자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도 사자는 배 째라잉 ~ 그는 야생 사자의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나태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저 무시무시한 짐승도 배가 부르면 평화로운 짐승이 되는구나. 그는 생각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뽑는다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단, 배부른 사자가 달콤한 잠에 빠져들 때에 한해서 !
사파리 여행 길라잡이가 이 상황을 설명했다. " 사자는 배가 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초원에서 쫄쫄 굶으며 사나흘 신나게 농땡이 치다가 다시 사냥을 하기 시작합니다. 굶주린 상태가 최적의 피지컬을 유지합니다. 그러니까 사자는 사자는 배부른 상태에서 사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굶주린 상태일 때 사냥을 시작합니다. " 나는 그녀의 여행담을 듣고 나서 비로소 왜 야생 동물은 비만이 없는가 _ 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 물론 이런 질문도 가능하다. 돼지와 하마는 비만 아닌가요 ? 에둘러 말하지 말고 서둘러 말하자면 무명씨, 아니올시다아아. 돼지와 하마의 체지방률은 15%다. 인간의 체지방률을 감안하면 매우 날씬한 몸매다.
야생 동물은 거의 모두 다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야생 동물이 비만이 없는 원인은 간헐적 단식(24시간, 48시간, 72시간 단식)을 자의 반 타의 반 실천하기 때문이다. 짐승은 인간과는 달리 노화의 기간이 굉장히 짧다. 매미 같은 경우는 죽기 1초 전까지 신나게 노래를 부르다가 느닷없이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노세 / 노세 젊어서 노세 / 늙으면 못 논다며 흥에 겨운 노래를 부르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바로 죽는 것이다. 매미야말로 짧고 굵게, 그리고 건강하게 살다가 바로 죽으니 요절인지 호상인지 애매모호하다. 야생에서 사는 짐승들은 대부분 노화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반면에 인간과 함께 사는 개와 고양이는 노화 현상이 뚜렷하다. 그 이유는 풍부한 먹이 공급으로 인해 간헐적 단식 패턴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생명은 연장되었으나 연장된 만큼 노화에 따른 고통과 상실도 증가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생이 연장되었다는 기쁨 못지 않게 노화에 따른 두려움도 커졌다. 인간은 모두 매미 같은, 넘나 열정적인 생의 간결한 마감을 원한다. 노세 / 노세/ 젊어서 노세 / 늙으면 못 논다고 핏줄 터져라 생생하게 노래하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한 소절을 채 마치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죽음 말이다.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평생 땅속에서 살다가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고작 일주일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매미는 불행한 삶이 아니냐고 말이다.
그때는 그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했는데 이제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요, 매미는 졸라 멋진 삶을 살다가 간 녀석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시적 간결함이지요 매미와 같은 " 시적 간결함 " 을 간직한 꽃은 동백꽃이 아닐까 싶다. 동백꽃은 다른 꽃처럼 한 잎 두 잎 바람에 흩날리다가 시들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꽃 머리가 통째로 쑥 빠져 떨어진다. 다시 말해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바람 한 점 없는 날을 선택해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꽃나무와는 달리 꽃 핀 자리 밑바닥이 지저분하지 않다. 노화의 흔적이 없는 것이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지점은 장수가 아니라 간결한 삶의 종말이 아닐까 ■
뜬금
비오는 날에는 찬 소주(냉동실에 1시간 정도 두면 살얼음이 살짝 언다. 이때의 소주 맛은 기가 막히다)에 따순 순댓국이 최고다. 비가 오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난다. 레알마드리드 팀에서 골키퍼로 생활하던 시절, 속이 더부룩하여 내과를 찾았더니 담당 의사가 남성 비뇨기과를 추천했다. 경기 없는 날에 비뇨기과를 찾았는데 담당 의사가 다시 산부인과를 추천했다. 산부인과요 ???! 며칠 후, 산부인과를 찾았다. 나를 진찰한 의사가 말했다. " 선생님, 혹시 한 달 전에 칠레산 체리 드신 적 있으신가요 ? 아, 그렇군요...... 체리...... 맛 좋죠 ? 하지만 체리를 드실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선생님 몸에서 지금 체리가 자라고 있습니다. 체리 씨를 통째로 삼키는 바람에 몸속에서 체리나무가 자라고 있어요. " 나는 오랜 고민 끝에 골키퍼 생활을 은퇴하기로 했다. 석달 후, 싱싱한 체리나무를 낳았다. 부성애란 아...... 이토록 무서운 것이어라. 나는 어린 체리를 양육하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미국에서 메이저리그 야구 팀 보스톤 레드삭스에서 마무리 투수로 생활하며 근근이 입에 풀칠하며 살았다. 하지만 곤경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몰려왔다. " 앞날이 캄캄하시죠 ? 의학적 진단을 내리자면 시력 완전 상실입니다. " 의사는 내게 시각 장애 진단을 내렸다. 의사의 진단대로 나는 앞을 못보는 맹인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공을 던져야 했다. 어린 체리를 키워야 했으니까. 메이저리그 최초의 맹인 투수가 탄생한 것이다. 야구 해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 페루애, 와인드업. 던졌습니다. 쓰뚜라잇크 ! 눈에 뵈는 게 없는 볼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습니다. 배리 본즈 선수, 꼼짝도 못한 채 서서 삼진 아웃 당합니다아 ! " 타자들은 내가 던진 공을 두려워했다. 가장 무서운 공은 160KM 강속구가 아니라 눈에 뵈는 게 없는 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