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도끝도없는 미토끈트리아적 아메바의 오색창렬한 욕망 :
내가 넘나 사랑한 똥멍청이들 !
▶ 좀비 영화는 관객을 똥멍청이로 만든다. 고상한 척하지 말고 그냥 웃고 즐겨 쭈글아 !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는 하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이 장르의 법칙인걸 ! 나는 밑도끝도없는 미토끄트리아의 헤모글로빈적 욕망 앞에서 부처 핸섬 _ 을 외칠 수밖에 없다. 스튜어트 고든 감독의 싸구려 b급 영화 << 좀비오 >> 는 피터 잭슨의 << 데드 얼라이브 >> 와 함께 생각 없이 보기에 최고인 영화'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한 편도 빠짐없이 섭렵한 나는 그의 영화가 무척 흥미롭지만 하루에 세 편 연속으로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감상하라고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다. 타르코프스키, 엥겔로플로스 또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영화는 모든 감각을 오롯이 본다는 행위에 몰입해야 하기에 보고 나면 후유증 때문에 고생하게 된다. 뇌에 과부하가 걸렸어.
거장의 깊은 뜻을 알 리 없는 나 같은 얼라는 그래도 거장이 숨긴 행간을 찾아내기 위해 인문학적 지식을 총동원하다 보면 머리가 아플 수밖에. 사랑한다는 것은 " 어떤 몰입의 형태 " 이기에 사랑은 필연적으로 두통을 동반하는 법이니까. 이럴 때에는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같은 영화가 쵝오 !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 국제시장 >> 이나 << 인천상륙작전 >> 같은 상그지새끼 같은 영화를 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은 자존심이 무척 상하는 일이어서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 중에서도 나름 품격을 갖춘 고상한 영화를 보게 된다(<< 국제시장 >> 이나 << 인천상륙작전 >> 같은 영화는 박근혜 같은 애들이나 좋아할 영화다).
꼴이 좀 거시기하기는 해도 좀비는 내가 최애~ 하는 장르'다. 라캉의 그 유명한 전언인 " 사드와 함께 칸트 ! " 라는 말 품새를 살짝 17.3도 정도 비틀어서 b급스럽게 흉내 내자면 " 타르코프스키와 함께 조지 로메르 영화를 ! " 좀비 영화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뻔뻔하다는 데 있다. 그냥 좀비가 당신 앞에 뙇 ~ 나타난다. 좀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신에게 다가올 뿐이다. 배우 이병헌처럼 질질 짜며 " 왜, 그랬어요. 말해봐요, 네 ? " 라고 묻지 않는다. 그냥 물고 뜯고 즐길 뿐이다. 그럴싸하게 포장하려는 변명도 없고 미사여구를 동원한 가족애와 인류애를 강요하지도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좀비(영화)는 평소 뇌섹남/녀를 자랑하던 당신에게 인문학적 교양과 상상은 지나가는 계룡산 초지읍 둘레마을 민들레에게 주고 질펀하게 비명이나 지르라고 충고한다. 소리 질러, 부처 핸섬 yo! 좀비의 하드코어한 주문에 넘나 띨띨한 똥멍청이가 된 관객은 고래도 아니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부처는 잘생긴 남자라고 외치는 사이에 영화는 끝난다. 논리는 잠시 접어두고 생각 없이 보다 보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장르가 바로 좀비물이다. 그때 비로소 깨닫게 된다. 정신없이 사는 삶보다는 생각 없이 사는 삶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
생각 없이 살면 이렇게 낄낄거리며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무념, 무상, 무아는 원초적 쾌락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종종 생각을 비우기 위해 오징어처럼 흐느적흐느적 걷는 좀비를 호명한다. 좀비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앞에 뙇 ~ 나타나다오. 오늘 밤은 너와 함께 하기 위해서 기꺼이 넘나 띨띨한 똥멍청이가 될 각오가 되어 있다. 하여..... 오라, 좀비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