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간을 삽니다  :


 





시간에 쫓기는 청춘들 


 


                                                                                                   보통 섹스는 시간을 투자해야 얻을 수 있는 쾌락이다. 이 글은 사정 시간을 지연해서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차원을 이야기하는,  조루냐 지루냐 그것이 문제로다 _ 따위를 논하는 장이 아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남성이 여성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남성은 여성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서 오랜 시간 동안 훌륭한 매너와 선한 의지를 선보여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둘은 사랑을 나눈다.  물론, 치명적 매력의 소유자여서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은 한량도 있지만 일반 남성 대부분은 원빈 앞에서 모두 오징어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니었던가.    부끄러움은 왜 나의 몫인가, 부끄럽고요. 됐고 !  그런데 성범죄 가해자들은 이 지루한 시간을 생략한 채 바로 결과만을 얻으려고 한다.  그들은 권력과 재력으로 이 지난한 공정을 생락한다. 

매춘은 돈을 주고 여성의 몸을 산다기보다는 이성과 섹스를 하는데 들어가는 시간 비용을 사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을 구매한다는 것은 그 상품을 만드는데 들어간 노동자의 시간(품값)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노동 시간이 늘어날수록 가격은 올라간다.  현빈의 츄리닝이 공장 츄리닝에 비해 명품인 이유는 장인이 손수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 탓이다.  자본가가 노동자보다 여유로운 시간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돈을 주고 타인의 노동 시간을 구매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을 수 있는 것은 가사 노동자가 정성을 들여서 밥상을 차렸기 때문이니까. 

반대로 가난한 노동자는 항상 시간에 쫓긴다.  아침에 눈 뜨면 부랴부랴 씻고 출근길 지옥철에 몸을 싣는다.  늦잠이라도 자는 날에는 분초를 다투는 달리기도 해야 한다.  노동자는 자본가와는 달리 시간을 구매할 여윳돈이 없기 때문에 항상 시간에 쫓긴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이도 불공정한 시간 배분에 있다.  흙수저는 치솟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서 알바 일을 하지만 금수저는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하면 된다. 당연히 흙수저는 금수저에 비해 공부 경쟁력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특혜와 편법이 난무하게 되면 일반 평사원이 전무가 되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 30년은 3년으로 단축되기도 한다.

대한항공 조현민 씨처럼 말이다. 조현민은 애비와 에미를 허벌나게 존나 잘 둔 덕에 남들이 임원이 되기 위해 투자한 시간을 무려 27년이나 생략한 채 고속 승진을 한 것이다, 허벌나게 존나 말이다. 나는 그들 로열 패밀리에게 허벌나게 존나 묻고 싶다. " 자사 노동자를 그렇게 노예 부리듯이 부려먹으면 허벌나게 좋냐 ?  " 이렇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 격차는 시간 불평등을 야기한다.  대한민국 일반 노동자의 노동 시간이 살인적 수치'라는 것은 한국 사회가 빈부 격차가 심각한 사회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여기에 더해 치솟는 집값은 가난한 도시 노동자의 집터를 서울에서 서울 외각 자리로 밀려나게 만든다.

당연히 출퇴근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나 할까.  살인적인 노동 시간과 함께 퐌타스띡한 출퇴근 시간을 더하면 가난한 노동자는 늘 시간이 모자란다.  개그콘서트에서 인기 있었던 코너 << 생활의 발견 >> 은 흙수저의 시간 불평등을 이야기한다. 이와 관련하여 쓴 글이 있기에 갈무리하며 매조지하자.














개그콘서트,  생활의 발견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시장의 법칙이다. 골목 또한 마찬가지다. 흩어져서 제각기 경쟁하는 것보다 같은 업종의 가게들이 모여서 골목을 형성할 때가 더 유리하다. 골목 형성이 효율적인 상권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벌집처럼 오밀조밀하게 모인 군집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광고 역할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단, 가고 본다 ! 가장 좋은 책은 종이책이지만 그래도 최선책이 아니면 차선책이 있지 않은가 ? 풍전옥이 문전성시라면, 그 옆의 전주집은 어떤가 ? ** 골목의 장점은 상황에 대처할 피드백이 공존한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터들이 좋은 상권을 유지했던 것은 아니다. 이 영광은 < 원조 > 들의 <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가난의 서사‘ > 를 밑바닥에 깔고 시작하는 것이다. 사실, 가난했던 그들이 그곳에 터를 잡은 까닭은 그곳이 변두리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

 

골목의 큰 판이 바로 시장이다. 이 시장도 원조들의 가난한 성공담을 바탕으로 한다. 변두리는 어느새 이들의 부지런한 노력으로 상권의 중심이 된다. 땅값이 오른다. 재주는 상인이 부렸는데, 상금은 건물 입대 주인이 주워 먹는 꼴이다. 최초의 시장이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시장 근처를 중심으로 주거지가 형성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였으니 달동네가 형성되는 것이다. 할렘의 한국 버전이 바로 달동네다. 할렘의 탄생이다. 처음에는 값 싼 지역으로 출발했지만 시장의 범위가 커지자, 땅 값은 치솟는다. 이 치솟는 집값을 마련할 여지가 없는 사람은 좀 더 먼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한국의 부동산 정책이라는 것이 대충 이런 식이다.

 

지금부터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다. 시장 밖 주거지로 옮긴 ( 더 싼 방을 위해서 ) 시장 노동자는 시장 중심에서 멀어진 만큼 더 많은 노동 시간을 할당받는다. 왜냐하면 출퇴근 시간이 그만큼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시장 안 노동자'보다 1시간은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서야 한다. 그래서 집이 없는 시장 노동자는 이래저래 지친다. 그런데 문제는 더욱 꼬인다. 시장 중심을 장악했던 외지인은 배가 부르자 복잡한 주거 복합 상권에서 벗어나 전원 생활을 즐기고자 한다. 퇴직연금자나 건물 임대업자 그리고 성공한 자영업자들의 출퇴근 시간'이야 엿장수 마음대로가 아닌가 ?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쫓아냈던 원주민이 사는 곳‘으로 옮긴다. 땅값은 오르게 되어 있다. 이에 시장 노동자는 쫓겨나듯이 다시 더욱 먼 곳으로 옮긴다. 그만큼 출퇴근 시간은 더욱 늘어난다. 악순환. 악순환이다. 이제는 서울에 직장을 둔 경기도 외각 거주자가 탄생한다. 그들은 출퇴근 왕복 세 시간을 거리에 버리는 것이다.

 

초기 < 생활의 발견 >서사는 바로 가난 때문에 자신의 주거지를 빼앗긴 가난한 외각 거주자의 씁쓸한 풍경을 다룬다. < 생활의 발견 > 이 주는 웃음은 장소와 사연 ( 둘 중 하나는 이별을 통보한다. ) 의 엇박자가 주는 골 때리는 장면에서 쏟아진 페이소스'다. 그들은 그곳에서 이별을 통보한다. 노릇노릇 구운 삼겹살과 마늘을 상추에 싸서 한 입 가득 입에 물고는 우리 헤어져 ! ” 를 진지하게 말한다. 이별과 식욕의 관계는 마치 < 금각사 > 의 미시마 유키오< 인간실격 > 의 다자이 오사무의 관계만큼이나 어색한 상극이다. 이별 앞에서의 왕성한 식욕이라니 !

  

하지만 호탕하게 웃다 보면 왠지 모를 비애가 느껴진다. 그것은 슈퍼맨이 아닌 소시민의 비애이리라. 이별에 어울리는 장소는 어디일까 ? 비 내리는 풍경이 보이는 창 넓은 커피숍 정도가 적당한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콩트 속 주인공은 대부분 식당이다. 왜 그들은 커피숍이 아닌 식당을 선택할까 ? 보아하니, 콩트의 배경은 저녁인 것 같다. 퇴근길이거나, 수업을 끝내고 만난 것이다. 그들은 식당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한다. 밥도 먹고, 자판기 커피도 마시며,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한다. 그들은 한곳에 앉아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것이다. 부자들이야 밥은 식당에서, 술은 술집에서, 이별 통보는 마지막에 들린 찻집에서 하지만 가난한 자는 그럴 수가 없다. 돈도 돈이거니와 시간도 없다. 늦게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면 밤 10시가 넘는다. 그놈의 퇴근길은 지옥 같다. 걸레처럼 지친 몸으로 잠이 들고, 다시 걸레처럼 늘어진 모습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상황이 그러하니 마음먹고 제대로 이별을 통보할 수도 없다.그냥 한곳에 앉아서 오늘 해야 될 모든 코스를 해결하는 것이다. 내가 이별 고백을 했던 감자탕 집 < 풍전옥 >은 식당이었으며, 술집이었고, 커피숍이었다. 짬짜면이었다. 이렇게 중요하고 심각한 이야기를, 이렇게 왁자지껄하는 웃기는 짬뽕 같은 식당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정말, 정말, 정말 웃기는 짬뽕이다. < 생활의 발견 > 을 볼 때마다 나는, 내 마음 속에서 사는 찌르레기가 한 마리가 찌르르르 울어서 마음이 아프다. 이별조차도 멋지게 할 수 없는 서울이라는 곳에서, 이별조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넘치는 노동 시간 앞에서, 퇴근길 지옥 앞에서 우리는 꾸역꾸역 살아간다. 마음도 몸도 모두 지친 우리는 슬픔 앞에서도 침이 고인다. 마치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밥그릇 앞에서 무한 대기해야 하는 개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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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3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4-23 09:29   좋아요 0 | URL
제 이웃이 말씀하시더군요. 요즘은 ˝ 시간을 낸다는 ˝ 말을 잘하지 않는다고 말이죠. 정말 지금 노동자는 시간조차 낼 시간이 없을 정도입니다..

2018-04-27 09: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27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