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숭 이 라 서 다 행 이 야 :
혹 성 탈 출
나는 영화를 볼 때마다 ADHD 환자가 되곤 한다. 영화 내용에 집중하지 못하고 엉뚱한 상상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면 동행한 사람의 속을 뒤집곤 한다.
나는 A에게 이렇게 묻는다. " 그런데 말이야...... 왜 제니퍼가 제퍼슨을 죽였지 ? " 5,4,3,2,1, 퐈이야 ! A의 대답 : 멍청아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제퍼슨이 제니퍼를 죽였잖아 !! 이게 다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엉뚱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에 꼬리를 문 결과'다. 영화 << 혹성탈출 >> 를 보면서도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원숭이가 인간의 지능을 얻었으니 다행이지. 개가 인간의 지능을 얻었다면 세상은 개판이 되었을 거야. 인류라는 말도 사라지겠지. 남성은 짝짓기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 분명해. 특히 남성에게 개의 진화 현상은 재앙에 가까울 것이다. 뭐, 이런 상상들.
개가 인간의 지능과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벌어질 일들 : 한국 남자들은 입만 열면 복종, 우정, 의리를 이야기하지만 개의 충성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인간의 우정과 의리는 자신이 모시는 보스의 흥망성쇠에 따라 달라진다. 존만이 이명박 선생님을 모시던 충복들의 배신을 보라. 반면에 개는 주인의 지위 고하를 따지지 않는다. 주인의 초라한 행색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개는 없다. 바로 이 조건 없는 우정이야말로 아름답지 않은가. 말하는 개의 탄생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본능을 가진 인간을 소외시킬 것이 분명하다. 인간 여성에게 매력적인 존재도 인간 남성이 아니라 말하는 개일 것이다.
진화 심리학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여성에 비해 남성의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여러 실험을 통해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반면, 개의 공감 능력은 개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만큼 인정하는 대목이다. 당신이 울고 있을 때 다가와 초롱초롱한 까만 눈으로 당신의 얼굴을 핥아주는 것은 개'다. 개는 주인이 슬픈 표정을 짓거나 소리 내어 울면 다가와 슬픈 표정으로 당신의 얼굴을 핥고 손을 핥으며 발을 핥는다. 이 짐승의 위로는 개를 키워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정 교류다. 개가 주인의 기분을 알아채는 이유는 주인을 향한 몰입, 관심, 직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냄새를 통해 감정을 읽기 때문이다.
개의 후각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을 초월한다(개는 냄새를 통해 주인의 질병을 간파하기도 한다). 아침 밥을 얻어먹는 일이 인생 목표가 되어버린 조선 가부장 인간 남자 수컷의 까다로운 요구 조건에 비해 개는 사료 한 그릇이면 끝이다. 말하는 개는 아침에 일어나 스스로 사료를 먹고 나서 침대에서 잠자는 애인의 얼굴을 핥아주고는 출근을 할 것이다. 멍멍 ! 당신이 여자라면 인간 남자와 말하는 개 가운데 누구를 보이프렌드로 선택할 것인가. 뭐, 답 나오지 ? 경찰이나 검사 같은 특수직도 개에게 유리하다. 범죄자가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후각을 통해 거짓말을 간파하는 능력은 개에게는 식은 죽 먹기다.
이 모든 것을, 이 모오오오든 것을 종합하면 개가 인간의 지능과 언어를 습득한다면 인간 남자는 재앙이 될 것이다. 나는 영화 << 혹성탈출 >> 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개가 아니라 원숭이가 인간의 지능을 얻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영화가 끝나고 나서 A와 나는 술집으로 향했다. 나는 원숭이가 아니라 개가 인간의 지능을 얻게 되면 발생하게 될 인간 남자 수컷의 쓰빽따끌한 비극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A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늦은 밤이 되어 집에 돌아왔다. 봉달 씨가 꼬리를 격하게 흔들며 나를 반겼다.
술에 취한 나는 개를 붙들고 늑대의 후예들이 인간 지능을 얻게 되면 도래할 인간 남성 수컷의 재앙에 대해 말했다. 봉달 씨가 비밀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 멍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