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장은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계속 제자리.
오스틴 소설은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잘난 척 하며 읽기 들어갔다만,
하~
<사랑과 우정> , <엠마> , <왓슨 집안>, <레이디 수전>등
내가 읽지 않은 소설들이 글의 앞부분에 대거 포진해 있어
소설 인용이나 설명을 읽어도 감흥이 오지 않는다.
<제인의 추종자들>은 키플링의 소설인 것인지도 헛갈리고(처음 들어서!) 스틸의 <부드러운 남편>, 콜먼의 <폴리 허니컴>, 셰리든의 <경쟁자들>...예를 든다는 소설 속 인물들도 죄다 처음 들어본 작가와 책 제목들이다.
그래서 머리가 또 어지럽다.
이젠 다미여 읽을 시간이 부족하니까 되도록 새로운 책을 읽지 않으려고 했건만,
안되겠다 싶어 <레이디 수전>을 꺼내서 읽는다.
<레이디 수전>은 또 편지 글 형식이구먼?!!!
오스틴 언니의 새로운 발견.
헌데 읽으면 읽을 수록 또 얼굴에 소름이 오소소~
왜 그럴까???
오스틴이 묘사하는 인물들은 너무나 적나라하여
정말 우리 주변에 실제로 있는 인물들 이야기 같아 읽을 수록 혐오감이 생기는데, 또 그게 재밌기도 하고, 그래서 나의 이중적인 성격을 들여다 보는 것 같아 오스틴의 소설을 읽으면 뭔가 좀 불편하다. 글을 너무 잘 쓴다는 것이겠지?? 라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아니....
그런데...
울 오스틴 언니를 평론가들이 비평해 놓은 문구를 읽으면
무례함마저 드는데 제인 오스틴 본인은 기분이 어떠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작가가 시나 소설을 발표 했다면 호불호가 있어
칭찬과 비평은 따를 수 있겠지만,
여성 작가의 한계라고 치부하여,
속 깊게 들여다 보지 않으려 하는,
그래서 본인들의 생각이 최고라고 결정 짓고 젠 체하는
그러한 사고 구조는 어떻게 하면 생겨나는 것인가?
남성 작가 뿐만 아니라, 여성 작가들도 오스틴을 폄하하였는데
그들이 오스틴 작가를 평가하여 얻은 것은 무엇인가?
‘경계‘와 ‘울타리‘ 라는 공간 이미지는 작가들이 제인 오스틴을 받아들일 때마다 확산해 나가는 것 같다. 마치 오스틴이 드러내는 바에 대한 그들 자신의 불안을 보여주는 듯하다.(236 쪽)
‘거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소설.‘
‘나름대로 완벽하지만 다만 멀리 나아가지 않는 소설.‘
‘왜 사람들이 오스틴을 높이 평가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산문은 읽을 수 없다. 제인 오스틴의 글처럼.‘
‘인물 대신 성격을 전형화하며, 종합적으로 아는 것 대신 따로따로 날카롭게 아는 노처녀.‘
‘오스틴은 불쾌하고 형편없고 인색하고 속물적인 의미에서 영국적.‘
‘정원의 나뭇가지에서 자기 이야기를 재잘대는 갈색 개똥지빠귀‘
읽을 수록 무례하단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책의 작가의 말처럼 ‘그들 자신의 불안을 보여주는 듯‘하다.
오스틴이 만약 넓은 세상으로 여행을 많이 다녀 경험의 스펙트럼이 다양했다면, 소설의 분위기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랬다면 베스트 오브 베스트의 소설이 등장했을 듯 싶은데...
그렇다면 저들의 비평은 멈춰 졌을까?
아마도 멈춰지지 않았을 듯하다.
다른 방식으로 트집을 또 잡았을 듯하다.
그들은 불안했기 때문이다.
4 장 <산문 속에서 입 다물기> 제목도 심상치 않지만, 몇 페이지 읽다가 잠깐 스쳐 지나가는 흥분이 식기 전에 기록해 두려 부러 북플을 열었다. 독보적 걸음도 걷지도 못했는데...ㅜㅜ
괜찮아. 오후에 걸으러 나가면 될테니, 약속이나 지키자.
<레이디 수전> 책 겉표지를 벗기니 응?
오호~~ 책이 예쁜데??
오스틴 부분을 읽는 다미여 책 곁에 오스틴 책을 놓아두고,
어제 먹다 남은 붕어빵 와플기에 눌러 데우고,
커피를 내리고,
이제 앉았다.
붕어빵엔 역시 아메리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