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2의 성 ㅣ 동서문화사 월드북 108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희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9월
평점 :
가사에 집착하는 성향은 사도마조히즘(가학 기피증)의 한 형태이다.이 병적인 괴벽의 특징은 자신이 원치 않는 것을 스스로 원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소극성,불결,악을 소유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편집광적인 주부는 혐오스러운 환경에 스스로 달려들어 먼지와 맹렬하게 싸운다.
온갖 생명의 움직임 뒤에 남은 쓰레기를 통하여 그녀는 인생 자체를 비난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 그녀의 영역으로 침입하면, 그녀의 눈은 곧 흉악한 불꽃으로 일렁인다.
˝신발을 닦아라. 모든 것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지 마라. 거기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그녀는 곁에 있는 사람이 숨도 쉬지 않기를 바란다.바람만 살짝 불어도 큰 소란을 떤다.모든 사건이 이제까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다.
아이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잔손이 가야 한다. 살아가면서 붕괴의 전조, 무한한 노력의 요구만을 보아 온 주부는 사는 기쁨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이런 침울한 악덕을, 젊었을 때부터 선택한 여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삶을 충분히 사랑하는 여자는 남을 증오하는 일이 없다.
(584~585쪽)
살림에의 집착은 하나의 세계를 지배하고 싶은 병적인 욕망과 과도한 생활의욕, 목표 없이 헛도는 지배욕의 결과이다. 이것은 또한 시간과 공간, 인생, 남자들,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도전이다.(586쪽)
가사일은 확실히 여자에게 자기로부터 한없이 멀리 도피하는 것을 허락한다.샤르돈은 정확히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자질구레하고 무질서한 일이다. 집 안에서 여자는 자기가 남을 기쁘게 해 준다고 확신하면서도 급격하게 기력과 체력을 소진하여 방심상태, 자신의 존재를 말살하는 정신적 공허 상태에 이르게 된다.(587쪽)
제2의 성을 근 두 달동안 얼추 절반 정도 읽었다.
남은 페이지 수를 완독하려면 또 한 두 달이 걸리지 않을까,어림잡아 본다.이 달 안에 완독할 목표를 가지고 있긴 하나, 이 한 권으로 인해 다른 책들에게 전혀 손을 못대고 있으니 착찹해 진다.
소설 책 너무 읽고 싶다.심지어 만화책,어린이 책, 모든 책을 읽고 싶다.(넷플릭스 영화도 보고 싶다)
나는 내 자신이 책을 이렇게나 갈구하며 읽고 싶어 한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역시....사람은 다급해져 봐야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더니...
서문을 읽을 당시에는 찌르르~~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무척 흥분하며 읽은 기억이 있다.내가 시몬느 드 보부아르 라는 위대한 사상가의 책을 감히 책장을 넘겨 가며 읽게 되다니!!!
알라디너들의 여성주의 책들 소감문을 읽으며 더욱 더 우러러 보게 된 계기도 컸던 듯 하다.‘이제 나도 읽는다.‘에 대한 긍지가 더 컸을지도....
‘운명‘과 ‘역사‘편에서는 꽤나 흥미롭고 신선했었다.밑줄은 많이 그었으나 시간이 지나니 확실히 감흥은 좀 떨어졌다.
‘신화‘편으로 들어서니 차츰 읽는 속도가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다.조금씩 일이 생겨 읽지 않고 넘기는 날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솔직히 뒤로 가면 갈수록 이해되지 않는 남성들의 시선속에 담겨 있는 여성이란 존재의 하찮음이 화를 돋구어 책을 덮게 하는 날이 많아 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제2부 현대 여성의 삶부분으로 들어가 제1편 형성의 유년기편부터는 아....얼굴이 절로 붉어지는 진짜 성에 대한 진실과 오해들이 아주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읽으면서 아..사춘기때 느낀 몸에 대한 생각들 정말 이렇게 해석될 수 있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동의 여러 번 반면, ‘정말?????‘, ‘설마 뭘 그렇게까지???‘ 비동의도 여러 번....그렇게 사투를 벌이며 몇 달 째 독서대에서 결코 내려오지 않는 제2의 성이었다.이 책처럼 이렇게 오랜 시간 집중하고 인내하며 읽었던 책이 있었나?헤아려봐도 내 기억엔 없다.
그래서 통틀어 제일 기억에 많이 남을 책일 것이다.
책 내용이 기억에 다 남는다면 더 좋으련만.....
아무튼,
인용문을 옮겨 써놓고 지금 다른 소리만 주절대는구나!
중간 정도 읽었으니 중간 보고서 한 번 올려야 될텐데...
생각하던 차,
오늘 읽은 구절들은 졸음에 겨웠던 내 눈꺼풀이 다시 떠지는 대목이었다.주부다 보니 또는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다 보니 좀 각별히 더 크게 다가오는 문구들이 많은데 오늘은 가사노동, 살림에 관한 정의?가 완전 생각의 발상을 전환 시켜주는 듯 하다.
주변에 살림 야무지게 하는 사람들이 많아 늘 나는 그 속에서 주눅들곤 한다.심지어 돌아가신 시어머님과 친정 어머니도 늘 쓸고 닦고 쓸고 닦고 정리 정돈이 철저하신 분들이셔서 게으름 피우며 가만히 누워 있는 게 눈치 보일 정도 였었다.주변에 죄다 쓸고 닦는 사람들 그래서 살림살이가 늘 빛이 나고, 먼지 하나 없고, 냉장고 문을 열면 도서관 책장 같은 느낌으로 반찬통들이 일렬로 정리 정돈 되어 있고, 바닥은 반딱반딱 윤기가 흐르고, 행주와 걸레는 하얗게 면손수건 같은 느낌으로 삶아져 있고,욕실의 타월에선 쿰쿰한 냄새 하나 없이 깨끗하게 삶겨져 있어 쾌적한....원더우먼 같은 살림꾼들 속에서 아...나는 왜 이렇게 게으를까?반성하며 나도 쓸고 닦고 치우고 정리를 해보긴 하는데 지쳐 오래가질 못한다.그리고 한 번 정리해서 가지런하게 해놓았는데 식구들이 아무렇게나 물건을 던져 놓았을 때 갑자기 울분이 치솟아 잔소리 폭격을 가하게 된다.‘그녀의 눈은 흉악한 불꽃으로 일렁인다.....‘그때 그 순간의 나다.나는 입에서도 불이 품어져 나와 용이 되어 승천했을지도 모른다.
‘남을 기쁘게 해 준다고 확신하면서도 급격하게 기력과 체력 소진 방심상태,자신의 존재를 말살하는 정신적 공허 상태‘
이것도 나네?? 나야 나!!!!
여자에게 가사일이란 여자에게 자기로부터 한없이 멀리 도피하는 것을 허락한다고 하는데...글쎄? 나는 가사일로부터 한없이 도피하고 싶은 사람이라서....공감키는 어려우나,
‘삶을 충분히 사랑하는 여자는 남을 증오하는 일이 없다‘라는 문구는 크게 와닿고 가슴에 새기고픈 문장이다.
고된 가사일로 인해 짜증이 증폭되어 자신을 증오하고 식구들을 증오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그러려면 살림을 깔끔하게 유지 못해도 괜찮은 거다.그것은 죄가 아니고,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살림꾼들이 바라 보는 그 눈빛들에 결코 주눅 들지도 말 것이며,
살림꾼들의 반짝반짝 빛이 나는 집들을 더 이상 부러워하지 말자!
나는 내 가족들을 증오하지 않으련다!!!!!
적고 보니 이거 나의 게으름에 대한 자기 합리화식 보고서가 되었구나!!!!
암튼, 보부아르의 책은 읽을 수록 내가 지니고 있었던 보수적인 생각들의 틀을 많이 깨부숴 주고, 계속 괜찮다고 용기를 심어 주는 것 같은 착각이 인다.(어쩌면 내가 원했던 그런 부분들만 골라서 읽고 있을 수도 있다.)
좀 더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아직 반이나 더 남아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