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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가니스트
로버트 슈나이더 지음, 안문영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을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를 보는 내내 생각했다. 기이한 외모를 타고 나 부모에게까지 인정받지 못한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로 볼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나게 발달한 청각으로 한 번도 배운 적 없으면서 음악에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는 천재,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천재의 인생 이야기로 볼 것인지,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건 한 남자의 이야기로 볼 것인지를 생각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의 인생은 매우 짧았고 그 기간 내내 파란만장했기 때문이다.
엘리아스가 태어날 때 울지 않았고, 세례 받을 때 끔찍한 목소리로 울었고 파란 눈이 누렇게 변하고 모습이 기형이 되어 버렸다고 해도 그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했다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자식은 누구나 부모의 사랑을 갈망한다. 부모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부모는 맹목적이 아니라 조건 없는 사랑과 작은 인정을 베풀 의무가 있다. 자기 자식을 버리는 사람도 있는데 데리고 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싶을지도 모르지만 학대는 버리거나 데리고 있으나 마찬가지다. 이것이 엘리아스의 첫 번째 불행이다.
두 번째 불행은 천재적인 청각을 타고 났지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고 인정받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엘리아스가 자신의 천재성을 발휘하고자 했다면 어떻게든 싹 틔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천재는 원하지 않았는데 감히 그에게 천재의 멍에를 씌우다니 작가가 참 잔인하게 느껴졌다.
세 번째 불행은 사랑을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약간의 자신감만 있었다면 그의 상사병과 그의 사랑을 아는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면 그는 사랑을 이룰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다.
세 가지 모두 그에게 이루어져 행복을 선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들이다. 그랬다면 우린 어쩌면 이 천재 오르가니스트의 작품을 지금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천재들이 이렇게 갔으리라. 저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채 피우지 못한 꽃이 지는 까닭은 언제나 가슴 아프게 만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충실하게 살다 갔다. 그는 스스로 원하는 일을 하고자 했고 그 일을 이루었다. 그는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 사랑에 충실했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나름의 방식으로 그를 사랑했다. 그는 불행했고 또 행복했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 비친 것이 다가 아니다. 스스로 만족한 삶이었다면 그 삶이 비루하고 남루해 보일지라도, 지독하고 고통스러워 보일지라도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삶을 행, 불행으로 평가하는 잣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엘리아스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천재 오르가니스트가 아닌 자연인 엘리아스에게. 그가 어릴 적 스스로 집에서 나와 자신을 이끌었음에,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생각으로 삶에 충실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