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신문에 실리게 되는 듯싶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내달 1일로 탄생 200주년을 맞게 되는 러시아 작가 고골(고골리)을 다루고 있어서다(구력으로는 3월 20일이 그의 생일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를 기념해서 이번 학기에 고골 강의를 여러 강좌에 잔뜩 집어넣었다. 이미 <광인일기> 같은 작품 강의를 시작했는데, 아마도 5월말까지는 고골을 손에 들고 있을 듯싶다. 단, 유감스러운 건 칼럼에서 언급되고 있는 <죽은 혼>은 강의 목록에서 빠졌다는 것. 마땅한 번역본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번듯한 번역서가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경향신문(09. 03. 20) [여적]죽은 혼 

19세기 중엽의 러시아는 유럽에 비해 지극히 낙후된 상태였다. 여전히 가혹한 농노제가 유지돼 농민을 가축이나 물건처럼 매매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1861년 알렉산드르 2세의 농노해방령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시기 러시아 농노제 사회의 폐해와 관리들의 부패를 풍자 기법으로 예리하게 비판한 작가가 니콜라이 고골리다. 그 중에서도 장편 <죽은 혼>은 대표적 걸작이다. 이 작품을 통해 고골리는 러시아 근대 리얼리즘의 아버지로서의 지위를 굳힌다. 

고골리는 이 소설에 일부러 중의적(重意的) 제목을 붙였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어에서 ‘혼’을 뜻하는 ‘두쉬’에는 ‘농노’란 뜻도 있다. 농노를 세는 단위로도 ‘두쉬’가 쓰였다. 따라서 <죽은 혼>은 <죽은 농노>로 해석되기도 한다. 국내 번역본 가운데 <죽은 농노>란 제목이 있는 까닭이다. 그나마 이 책은 1842년 모스크바에서 출간될 때 엄격한 검열 때문에 <치치코프의 모험 또는 죽은 혼>이란 이름으로 나왔다.  



주인공 치치코프는 탐욕스러운 협잡꾼이다. 그가 시골 마을에 나타난 건 죽은 농노를 사들이기 위해서였다. 호적상 살아 있는 것으로 돼 있는 죽은 농노를 저당으로 은행에서 거액을 빌려 한 밑천 잡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새 인구조사 때까지 꼬박 꼬박 죽은 농노에 대한 인두세를 물어야 하는 지주들에게도 이익이었다. 그렇게 해서 치치코프는 죽은 농노 400명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다. 여기서 <죽은 혼>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중의가 나타난다. 바로 ‘속물성’이다. 치치코프뿐 아니라 그가 만나는 지주들도 하나같이 탐욕적이고 인색하며 사납고 편집광적이다. 정신적으로 죽은 사람들이라고 할까. 심지어 이들 집의 가구들까지 주인의 분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풍자와 해학, 사실주의가 뒤섞인 <죽은 혼>을 읽다 보면 절로 우리 시대에 죽은 혼은 누구인지 묻게 된다.

20일이 구 러시아력으로 고골리의 탄생 200주년이다. 현재 쓰는 그레고리력으론 4월1일이다. 그가 말년에 살았던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집은 박물관으로 단장되었다고 한다. 이 집에서 고골리는 <죽은 혼> 2부를 집필하다가 정신적 동요를 못 이기고 원고를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단식에 들어간 지 아흐레 만인 1852년 2월 어느날 고통 속에 숨을 거뒀다.(김철웅 논설위원) 

09. 03. 19. 

 

P.S. 자신의 마지막 원고(<죽은 혼> 2부)를 태우는 고골의 모습. 일리야 레핀의 그림(1909)으로 모스크바의 트레차코프미술관 소장품이다. 작년에 국내에서도 전시된 바 있다. 참혹한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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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0 0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0 0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3-20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60년대에 번역된 을유문화사 것을 읽었는데 재미있더라구요.해학과 익살도 있구요.

로쟈 2009-03-22 16:03   좋아요 0 | URL
정본으로 쓸 수 있는 번역본이 나오면 더 좋겠습니다...

2009-03-21 0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2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유 2009-03-21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골은 고골이고..^^
난 파우스트 예매 했어요. 보실 작정 아니었남유?

로쟈 2009-03-22 16:04   좋아요 0 | URL
저도 볼 예정입니다.^^

수유 2009-03-22 17:16   좋아요 0 | URL
전 2층으로 잡았어요!! 토요일. 2층에서 만나요^^

2009-03-22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털세곰 2009-12-03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향신문 김철웅 논설위원은 70년대 후반 고대에서 노문학을 전공했습니다. 최근의 논설은 어쩔 수 없지만 그가 쓰는 칼럼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재가 상당히 러시아틱합니다^^
 
한국문학과 그 적들

문학평론가 조영일의 신작 <한국문학과 그 적들>(도서출판b, 2009)를 전철에서 오며가며 읽는다(부분적으론 필요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온라인에서 한번 읽었거나 구경한 글이어서 어떤 의미에선 '다시 읽기'다. 하지만 이번엔 정독이고 그런 만큼 여러 쟁점에 대한 저자의 주장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이 그에게서 '문단문학의 종언'으로 변형되는 것, 즉 그가 '근대문학=문단문학'이라고 파악하는 것이 내가 보기엔 책의 핵심이다(과연 그런가, 싶으면 반론이나 다른 입론이 가능하리라). 읽히지 않는 평론의 시대에 던져진 도발적이면서도 잘 읽히는, 문제적인 평론집이다. 곧 나온다는 <한국문학과 세계문학>과 함께 3부작이 완성되면 장관이겠다. 관련 인터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서울신문(09. 03. 13) “한국문학엔 3敵이 있습니다”

그는 젊은 문학평론가다. 문단의 아픈 곳을 콕콕 찔러댄다. 찔러대다 못해 모두가 애써 외면해 왔던 문단의 해묵은 문제점을 낱낱이 까발린다. 백낙청, 유종호, 김우창 등 한국 문학계의 어른으로 추앙받는 대가들은 물론, 황석영, 신경숙, 김수연 등 평단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 작가들도 그의 글 앞에서 주류 권력을 지키려는, 혹은 치열하지 못한 연구자(작가)로 추락하고 만다. 하지만 놀랍게도, 어떤 논쟁적 비판을 던져도 문단은 그를 철저히 외면한다. 그래서 그는 철저한 비주류 문학평론가다.   

2006년 가라타니 고진이 쓴 ‘근대문학의 종언’을 번역해서 국내 문단에 고진의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한 조영일(36)이 지난해 10월 내놓은 자신의 첫 번째 평론집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에 이어 ‘한국문학과 그 적들’(도서출판 펴냄)을 냈다. 그가 준비하고 있는 ‘한국문학비판 3부작’의 두 번째에 해당되는 책이다. 시대와의 불화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불온한’ 문학평론가 조영일을 지난 11일 신촌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그는 책에서 표현한 것 이상으로 직접 만남에서도, 권력화된 문단의 주류세력을 ‘문학계의 조·중·동’에 비유하는 등 과격함을 감추지 않았다. 대화와 소통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그저 주류 권력을 향유하는 세력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는 한국 문학에 대한 쓴소리는 거침이 없었다.  

첫 번째 책에서 황석영의 작품을 통렬히 비판하며 파문을 일으킨 조영일의 기세는 이번에도 누그러짐이 없었다. 그는 한국 문학의 ‘첫 번째 적(敵)’으로 국가의 지원 속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성장한 뒤,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변화를 사실상 거부하는 ‘문단 문학 자체’를 꼽았다. 기존의 것에 대한 저항 또는 불화가 문학 정신의 근본임에도 이를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문단 문학을 좌지우지하는 주류 문예지를 들었다.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문학동네’를 중심으로 강고한 ‘문학 권력’을 이루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신진 작가에게 글을 쓰게 해 주고, 책을 출판하게끔 해 준다. 그리고 문예지 사이의 ‘작가 돌림’으로 문단 권력을 공유하며 공고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한국문학의 ‘마지막 적’으로 든 것은 대가들의 시대착오적인 고답적 인문학 연구 자세다.  

석사학위 과정 때 두어 차례 신춘문예에도 응모하곤 했으며, 이제는 박사과정을 마친 ‘평범한’ 문학평론가 조영일을 ‘좌충우돌형 평론가’로 변모시킨 직접적 출발점은 ‘근대문학의 종언’을 번역하면서부터. 실제로 고진의 그림자만큼이나 ‘조영일의 그림자’도 분명했다. 하지만 비공식적인 격려 또는 비판만 있을 뿐, 국내 문단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어떤 소통도, 논쟁도 없었다. 조영일은 “한국 문단 문학 주류의 실체를 뼈저리게 절감할 수 있었다.”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고진이 우리 문학의 대안을 제시한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다만 (김종철 교수 등 문학평론가들이 문학을 떠나고 있다는 등) 한국 문학에 대한 그의 짧은 언급만으로도 벌집 쑤셔 놓은 모양이 되는 것은 그동안 우리 문단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아주 많았고, 한국 비평이 그동안 얼마나 빈곤했는지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비평가들은 고진과 맞대결하려고만 하지 말고 스스로 치열하게 문제점에 맞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영일은 “이제 3부작을 마치고 나면 한국 문단에 대한 구조적 비판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는 문학 비평의 지형을 넓힐 수 있는 텍스트 비평 작업에 매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박록삼기자)   

 

중앙일보(09. 03. 18) "문예지의 편집위원들은 청탁받은 글쓰는 중간상”

『한국문학과 그 적들』(도서출판 b)이라니,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문학평론가 조영일(36)씨의 비평집은 내용도 과격하다. 그는 창작지원금에 의존하는 작가들을 ‘비아그라’를 필요로하는 ‘생산기능장애(성기능장애)’에 빗댄다. 황석영·신경숙 등 베스트셀러 작가는 물론 ‘타블로’도 도마에 오른다. 그의 비판은 다소 거칠지만 변죽을 울리는 법이 없어 시원하다. 문학계의 ‘왕비호’라 할 만하다.

-“국가가 작가를 좌우하는 시대”라 지적했다.

“단편소설은 문예지에 실릴 때 100만원, 우수문예작품으로 선정되면 100만원, 책 나오면 또 인세를 받아 한 방에 세 번을 받는다. 가난을 감수했던 옛날에 비하면 훨씬 소설 쓰기 편한 세상인데 어렵다는 건 엄살이다. 로또복권 기금으로 조성한, 못 사는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지원금에 얽매이는 건 말이 안 된다.”

-주류 문예지와 관련된 비평가들을 ‘쇼핑호스트(혹은 카피라이터)’에 비유했다.

“문예지 편집위원이 되면 출판 권한까지 맡아 텍스트 중간상 역할을 한다. 청탁받은 글을 쓰다 보니 비판적이기 어려운 구조다.”

-전작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에서 황석영씨의 『바리데기』를 비판하더니, 이번엔 『개밥바라기 별』을 노년의 시각으로 쓴 ‘퇴행소설’이라고 평했다.

“수십만 부씩 팔리며 한국 문학이 살아나는 듯한 분위기에 평론가들이 침 뱉기 싫어하는 것뿐, 졸작이다. 외부적 요인 때문에 높이 평가받는 건 문제다.”

-칭찬할 만한 작품은 없나.

“전성태의 소설 일부와 김영하의 일부. 공선옥·한창훈은 높이 평가하지만 한국문학을 선도적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김애란은 판단보류다. 평론가들이 무얼 좋아하는지 너무 잘 알고 쓴 ‘웰 메이드’ 소설이라서다. 김연수는 묘사나 서술 문장에서 감정 억제를 못한 유치한 것들이 많다.”

-김연수의 문장이 뛰어나다는 시각도 많다.

“관점이 다른 건 당연하다. 중요한 건 그 다름에 대한 토론이다. 내가 비판하는 건 ‘당신들 그래선 안 돼’라기보다는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게 있으면 지적해 달라’는 요구인데 모두 묵묵부답이다. MB가 소통이 안 된다는데, ‘명박 산성’은 광화문 복판이 아니라 문학 한가운데에 있다. 논쟁하지 않으니 문학판이 재미없어진 거다.”

-대가들만 건드린다는 말도 듣는다.

“역으로 보면 애정 때문이다. 백낙청 선생을 존경하기에 애정어린 비판을 하는 거다. 문학사란 기존 시스템을 깨 부수고 후세대가 나오는 순환이어야 하는데, 출판산업과 교육(대학)이 얽혀 시스템이 굳어진 게 문제다. 피가 돌게끔 하자는 거다.”(이경희 기자) 

09. 03. 19. 

P.S. 정독하다 보면 불가불 교정도 겸하게 된다. 33쪽에서 "자신들의 할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문장이 중복되었다. 그리고 '삭제든지' -> '삭제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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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jjismy의 생각
    from jjjismy's me2DAY 2009-03-19 01:37 
    [알라딘서재]“한국문학엔 3敵이 있습니다”
 
 
2009-03-19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0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9-03-19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조영일과 고명철의 비평집을 흥미롭게 읽고 있는데요, 최근 출간된 이 두 비평가의 비평집이 사뭇 '시의성' 있게 다가오는 경험, 그리고 또한 그 와중에 두 책 모두에게서 어떤 종류의 '강박'을 발견하는 경험 속에서 독서의 재미를 쏠쏠히 느끼고 있습니다.^^ 일단 제게는 두 비평가 모두 기존의 '작가론/작품론'이라는 비평적 글쓰기의 틀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는 점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 점 또한 충분히 주목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인터뷰 기사 올려주셔서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09-03-20 07:51   좋아요 0 | URL
의도적으로 벗어낫다기보다는 비평의 영역을 좀 확장시키고자 하는 것이죠. 앞으론 작가론/작품론에 좀더 비중을 둘 거라고 하니까요...

Kitty 2009-03-19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자가 김연수씨에 대해 얘기하는거 보니까
이 책에 확 관심히 가는데요? (사실 저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어서 ㅎㅎ)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소개 감사해요 ^^

로쟈 2009-03-20 07:52   좋아요 0 | URL
비주류 비평가에 비주류 독자들도 있는 것이죠.^^

콩세알 2009-03-19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소박한 소망은 재밌는 한국 소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글쓴이들도 자기 책이 한나절꺼리로 전락하는 것이 싫겠지만 독자도 한나절꺼리 책은 재미가 없거든요. ^^;;

로쟈 2009-03-20 07:53   좋아요 0 | URL
재밌으면 한나절에 읽게 되지 않나요?^^

노이에자이트 2009-03-19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비가 가라타니를 외면하는 데 대해서 맹공격을 하는 것을 흥미있게 읽었지요.강준만 씨는 "우리나라같은 인맥 위주의 현실에서 김우창 선생을 누가 제대로 비판할 수 있겠는가"하고 쓴 적이 있는데 드디어 도마에 올렸군요.

로쟈 2009-03-20 07:53   좋아요 0 | URL
한국사회엔 너무 성역이 많습니다. 알아서 기는...
 

교수신문에서 문화비평 칼럼을 옮겨놓는다. 필자가 인도사 전공자인 이옥순 교수여서 눈길이 갔다. 식민지 한국의 인도 인식을 다룬 <식민지 조선의 희망과 절망, 인도>(푸른역사, 2006)를 비롯해서 다수의 관련서를 쓰거나 우리말로 옮겼다. 같은 영어 문제라고 해도 '인도에서의 영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니까 조금 다른 얘기가 나온다. '우리에게 영어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결국 '인도인에게 영어란 무엇인가'란 질문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인식, 그걸 좀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우리는 모두 인도인이다?!). 여기저기서 밑도 끝도 없이 영어에 목 매달더라도...   

교수신문(09. 03. 16) [문화비평] 영어는 힘이 세다!  

연전에 인도에 있는 유명한 영어기숙학교를 방문했다가 재학생의 절반이 한국인이어서 놀란 적이 있다. 맹모를 능가하는 한국 엄마들의 교육에 대한 열성이 어제오늘의 현상은 아니지만 세상과 차단된 그 먼 히말라야 산중의 기숙학교에서 그들을 보니 반가움에 앞서 복잡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그 학교 뿐 아니라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인도의 웬만한 ‘좋은 학교’에서도 한국 학생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교육을 위해 해외로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의 입장은 다양할 것이다. 입시위주의 국내 교육에 대한 반감과 그 대안적 선택일 수도 있고, 일찍이 영어로 공부를 시켜 자식을 무한경쟁의 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하려는 욕심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인도에서 만난 아이들은 거의 다 현지교육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시설이 좋고 커리큘럼이 다양하며 교사진도 훌륭하다는 평이었다. 입시로부터 해방감과 영어가 능숙한데서 오는 만족감도 컸다

그럼에도 영어가 교육의 대세인 우리나라에서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그 아이들을 만날 때도 찾아왔다. 교육학에 문외한인 내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 이방의 문화에서 성장하는 것의 문제를 논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인도 근대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영국이 인도에 부과한 영어교육의 목표와 그 부정적 효과를 어느 정도 알기에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우상’이 돼가는 영어교육에 대해 일말의 우려를 갖는 것이다. 인도에서 영토정복을 마무리한 영국은 19세기 전반에 제2의 식민화, 곧 인도인을 영국의 문화에 동화시키는 단계로 나아갔다. “일단 전함과 외교관을 보낸 뒤 영어교사를 보낸다”라는 말대로 영국이 시작한 가장 중요한 정책은 인도인에게 영어교육을 부과하는 거였다. 그 이유는 영어로 교육받은 인도인이 머지않아 “피와 피부는 인도인이지만 관점과 취향, 도덕과 지성은 영국인”으로 식민통치의 열성적인 협력자가 되리라고 여긴 때문이었다.

‘갈색 피부의 영국인’인 인도인들이 영국의 통치를 당연시하고 영국산 상품을 선호해 경제적으로 이득이 될 거라는 전망은 영어로 교육받은 힌두들이 자기의 종교를 지키지 못하고 ‘갈색의 기독교인’이 될 것이며 “우리 문학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해진 인도의 젊은이들이 우리를 이방인으로 여기진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영국의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기 훨씬 전부터 인도에서 영문학이 학교와 대학의 학과목으로 채택된 건 그런 연유였다. 그 결과 양복을 입고 영어에 능통하며 영국적 취향을 가진 ‘유색인 영국신사’가 탄생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타고르가 “우리들의 정신은 유아시절부터 영문학으로 구성됐다”고 고백했듯이 초서와 밀턴을 읽으며 영어교육을 통해 이방의 문화에 노출된 그들은 점차 유럽을 선망하고 그 문화와 가치를 우수하다고 내면화하면서 “인도인의 복잡한 맘을 이해하기 어렵게 됐다” 자신의 전통과 사회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세상이 촘촘히 연결되고 사람의 이동과 교류가 빈번해진 오늘날에 소통의 언어로서 영어의 중요성은 한층 높아졌다. 식민지시대 인도인이 그랬듯이 영어를 배워 경제적 반대급부와 사회적 위상의 이동을 추구하는 건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영어라는 창구를 통해 넓은 세계를 내다보고 배울 수 있는 이점도 크다. 험한 세상을 건널 ‘다리(橋)’를 하나 더 갖고 있는 셈이랄까. 그러나 유용성만 강조되는 영어교육에도 이면이 없을 순 없다. 식민지시대 인도의 고등학생은 영어와 모국어를 배우는 데 주당 19시간을 들였다. 언어만 학습한 그들에게 큰 미래는 없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목도되는 영어에 대한 과도한 강조도 청소년에게 다양한 걸 배우고 경험할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아쉽다. 영어가 성공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영어에 투자 기회가 적은 계층이 사회적 이동의 가능성을 갖지 못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 언어의 기반인 문화와 전통에 동화되는 동시에 자신의 언어를 소홀히 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사회와 전통으로부터 소외됨을 의미한다. 오늘날 영어로 ‘미드’를 보는 청소년들은 미국의 문화에 친숙해지면서 ‘우리의 것’에서 멀어진다. 피와 피부는 한국인이지만 관점과 취향은 거의 미국인인 그들을 보면 일제강점기 일본어교육에 목숨을 걸고 반대한 조상들이 떠오른다. 일본에서 해방된 지 반세기만에 우리는 영어에 의식마저 사로잡혀버린, 식민지적 무의식에 포박당하고 말았다. 언어는 때로 총보다 강하다.(이옥순 서강대 동아연구소·인도근대사) 

09. 0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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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징글리쉬
    from Post-Modern Times 2009-03-17 18:57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당시 잠시 고등학교 영어 교사직을 하신 적이 있었고, 그 반대 급부로 집에는 출판사에서 홍보차 보내 준 각종 어린이용 영어 교재가 쌓여 갔다. 당시 그 영어 교재들을 믿기지 않게도 흥미진진하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실은 듣기를 강요한 어머니에 의해 조작된 기억일 확률도 조금은 있다.) 그래서 믿기지 않게도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가장 기대가 되던 교과 과목은 영어였다. 영어, English. 그런데 중1때 영어 선생님이,..
 
 
노이에자이트 2009-03-17 22:11   좋아요 0 | URL
지금의 50~60대들도 젊은 시절에 서양 것에 물든 놈들이라고 욕을 많이 먹었지요.전환시대의 논리나 우상과 이성에서 리영희 씨가 당시 70년대의 젊은이들을 그런 식으로 많이 비판했지만 역시 그들도 이제 나이가 들면서 청소년들이 보기엔 그저 보수적인 한국 특유의 노땅이 되어 버렸지요.

로쟈 2009-03-19 00:50   좋아요 0 | URL
'식민주의'가 청산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돼요...

2009-03-18 0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19 0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거꾸로 가는 나라들

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출판면 기사를 옮겨놓는다. 인도의 작가 겸 저널리스트 판카즈 미시라의 기행 르포 <거꾸로 가는 사람들>(난장이, 2009)를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론 리뷰를 쓰면서 꽤 애를 먹었는데, 일단 인도와 그 주변국의 실상에 대해서 그간에 잘 알지 못했고 둘째로 인도의 현실과 저자 자신에 대한 이중적 성찰이어서 어느 한 면만을 리뷰 대상으로 하기가 어려웠다(사족을 따로 적은 이유이다). 국역본의 제목 '거꾸로 가는 나라들'과 '번역된 세계를 여행하는 한 경계인의 표류기'란 부제에 대해서는 출판사의 책소개에 자세히 나와 있기에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번주에 개봉하는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서두로 삼을 수도 있었지만 역시나 영화를 보지 못해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아무려나 책은 아마티아 센의 <살아있는 인도>(청림출판, 2008)와 함께 인도의 현재에 대한 가장 요긴한 읽을 거리가 아닌가 한다. 다만, 천천히 음미하면서, 저자의 여정을 같은 보폭으로 따라가면서 읽는 게 좋을 듯싶다...    

 

한겨레21(09. 03. 23) 뭄바이 테러가 품은 비극 

영국 동인도회사에 고용된 인도인 세포이(용병)들이 가혹한 착취와 종교적 분란을 조장하는 통치정책에 맞서 1857년에 일으킨 반란이 '세포이항쟁'이다. 많은 영국 여성이 세포이들에게 성폭행당하고 영국군 장교의 아내가 산 채로 끓는 기름에 넣어졌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영국군은 더욱 잔혹한 보복살육을 자행했다. 붙잡힌 세포이들을 대포에 묶어 인간탄환으로 처형하는 식이었다.   

인도 북부의 소도시 알라하바드에서도 반란은 일어났지만 소수여서 재빨리 진압되었다. 하지만 영국군 진압지휘관은 불과 며칠 사이에 6,000여 명의 인도인을 교수형과 총살, 고문을 통해 추가로 살해했다. 이어서 몇 달 뒤에는 ‘더러운 인도 깜둥이들’로부터 빼앗은 마을에 영국인들만을 위한 거주지 ‘시빌라인스(Civil Lines)’를 건설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대학의 탑과 돔 지붕, 고딕 양식의 공공도서관들이 들어섰고 ‘앵글로 인디언’ 사회가 만들어졌다. 객지의 영국인들은 클럽과 폴로 경기장, 넓은 베란다와 잔디밭을 갖춘 커다란 방갈로에서 50-60명의 하인들까지 거느리며 호사스런 레저생활을 즐겼다.   

영국이 통치했던 인도 전역의 소도시에는 어디나 시빌라인스가 형성돼 있었다. 그리고 그런 특권적 생활방식은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이후에도 식민지 시대의 관료제와 함께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차이라면 방갈로가 지금은 주지사의 집무실이 되었다는 점. 소작농과 노동자가 대부분인 8억의 일반 대중과 전문직 종사자와 관료, 교사, 사업가 같은 2억의 중산층으로 구성된 인도에서 1970년대 중반부터 증가해온 전문 정치인은 새로운 사회 상위계층을 이루었다. 대부분은 특별한 훈련을 받았거나 능력을 소지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범법자도 상당수였다.  

이들의 관심은 대부분 나랏돈을 챙기고 전리품을 나눠 갖는 일이다. 식민통치 이후 무엇을 위해 권력을 사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남들보다 높은 곳에서 세상의 부를 맛보고, 뉴욕으로 공짜 외유를 떠나고 무료로 기차를 타고 기사가 딸린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것, 민원을 위해 문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정도가 이들이 추구하는 권력의 내용이다. 그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거 때마다 수행원과 AK-47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유세에 나가서, 두 마을을 잇는 다리를 놓고 물이 필요한 마을에는 펌프식 우물을 파주겠다는 공약을 내건다.   

자동소총이 등장하는 것만 빼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광경인데, 이것이 <거꾸로 가는 나라들>(난장이 펴냄)에서 인도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 판카즈 미시라가 기행 르포의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는 인도식 정치 현실이고 민주주의다. 이 성찰적 기행문에서 저자는 더운 가슴으로 인도와 그 주변국들의 현실을 냉철하게 들여다본다. 그가 ‘인도식 파시즘’이라고 이름붙인 RSS(민족봉사단)의 활동과 위세도 자신의 조국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불러일으킨다.  

RSS는 카스트와 종파를 막론하고 모든 힌두교인이 단결하여 힌두국가(힌두스탄)을 설립하겠다는 목표로 세워진 단체이다. 물론 이 경우 이슬람과 기독교는 힌두문화를 수용해야만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배제의 대상이 된다. 사실 1948년 간디를 암살한 청년도 RSS의 행동대원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조직이 인도에서 여전히 막강한 정치세력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이런 양상을 ‘근대화된 힌두주의’라고 부른다. RSS는 인도 정부의 최고위 관리들을 배출했을 뿐더러 회원들이 거대정당, 교육시설, 노동조합, 문학협회 및 종교단체까지도 장악하고 있다. 이들은 RSS가 전파하려는 메시지가 인류의 평등과 근대화이며 하층카스트와 부족민의 문화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힌두인을 제외한 ‘외래 인종’에 대한 태도는 1930년대 유럽 파시스트와 닮은꼴이다. “고유의 생활태도를 버리고 힌두 인종에 통합되거나, 그게 아니라면 힌두국가에 완전히 종속되어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어떤 특권도 누리지 않으며 특별대우, 심지어 시민권조차 없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RSS의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인도의 1억3,000만 이슬람교도들과의 반목을 불가피하게 만들며, 2001년 9.11 사태 이후 힌두 민족주의자들이 이슬람 근본주의와의 전쟁에 나선 서구의 동맹자를 자처하면서 사정은 더 악화되었다. 지난해 말 9.11 이후의 최대 테러사건이 인도 뭄바이에서 일어난 일이 결코 우연일 수 없겠다.  

서구식 근대화의 결과와 흔적을 더듬어가는 여정에서 저자가 인도와 파키스탄, 카슈미르, 아프가니스탄, 네팔을 거쳐 이르는 곳은 티베트다. 1950년 중국의 침탈에 의해 강제적인 근대화에 직면한 티베트는 근대화가 양산해내는 모든 문제의 축소판이다. 저자의 요약에 따르면, “중국이라는 번쩍이는 신세계를 받아들인다는 건 탈공산주의 중국인들처럼 철저하게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사람이 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여전히 소중한 것들, 즉 종교와 문화의 정체성을 상실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떤 선택이 가능할까? 저자가 만난 티베트 망명정부의 지도자 삼동 린포체는 증오와 폭력으로 불의에 대응하는 건 쉽지만 적에게 스스로의 잘못을 납득시키기란 훨씬 더 어려운 일이며 비폭력은 나약한 자의 선택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과 절제를 요하는 어려운 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치적 자유를 얻었는데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문화를 잃어버린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라고 덧붙였다. 이 마지막 여정지에서의 교훈은 저자의 잠정적 결론으로도 읽힌다.   

사족 한마디. 자신이 사는 세계를 재발견하기 위한 긴 여행으로 저자 판카즈 미시라를 이끈 것은 도서관에서 읽은 플로베르의 소설 <감정교육>과 그에 대한 에드먼드 윌슨의 평론이었다. 윌슨은 <감정교육>에 대해 “인생에서 뭔가를 볼 시간이 있었던 사람만이 이 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평했다. 저자는 더 나이가 들어서야 플로베르의 소설이 보여주는, 좌절된 희망과 이상이 빚어내는 사소한 비극들의 세계가 우리 주변에도 넘쳐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내가 사는 세계의 이야기야. 나는 그런 사람들을 잘 알아.” <거꾸로 가는 나라들>은 그 앎이 동기가 된 실천의 기록이다. 

09. 0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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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3-17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감정교육이 우리나라 1990년대에 많이 나왔던 후일담 소설 같다고 생각했습니다.1848년의 열정을 추억으로만 간직한, 일찍 늙어 버린 젊은이들의 넋두리.

로쟈 2009-03-19 00:51   좋아요 0 | URL
저는 오래전에 읽다 말았는데 이번에 다시 구입했어요...
 
딜레탕티슴에 대하여
사회과학 르네상스는 오는가

주간한국의 '당신은 딜레탕트입니까'란 커버기사에서 독서문학 꼭지를 옮겨놓는다. 인문교양서 독자층의 관심을 엿보게 한다('로쟈'와 '비평고원' 같은 이름도 거명되고 있다). 리처드 세넷이 말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문화'의 양상을 딜레탕트적 독서와 연관하여 다뤄보려고 했으나 그럴 만한 여유가 없어서 일단은 기사만 스크랩해놓는다. 참고할 만한 내용은 먼댓글로 걸어둔다.    

주간한국(09. 03. 11) [딜레탕트] 독서·문학, 지적 즐거움에 중독되다

사람들은 책이 지성과 지식, 인문학적 교양의 척도라는 생각들을 한다. 모르는 고전이나 문학작품, 작가의 이름을 들을 때면 괜히 내가 무식한가, 라는 생각에 고개를 떨구게 된다. 문화라는 단어조차 생경했던 배고프던 시절, 우리들은 취미란에 대부분 '독서'라고 쓴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독서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가깝게 접하고 몰입할 수 있는 지적활동이자 문화활동이며 그 자체가 우리네 삶이기도 하다.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힌다?
책은 모두에게 가장 친숙한 대상이다. 독서는 음악이나 미술, 공연을 즐기는 것보다 비용도 적게 든다. 그러나 시간때우기 용으로 읽는 사람, 또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특정 분야의 책을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하는 사람과 책을 찾고 골라서 많은 시간을 투자해 읽는 사람과는 분명 다르다.

실용서가 아닌 인문학ㆍ문학 분야의 진정한 독서 애호가들은 얼마나 될까? 철학자 탁석산 씨는 한 공개 강연회에서 "국내 인문학 서적(판매)의 마지노선은 5000권"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름을 들었음직한 고전이나 인문 서적도 5000권을 판매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또한 경제학자 우석훈 씨는 '사회과학 르네상스는 오는가?'란 칼럼에서 "(사회과학 도서가) 5000권을 넘기면, '50명의 글쟁이' 안에 들어간다. 1만 권을 넘기는 것은 신의 영역이다"라고 말했다. 5000권. 무리일 수도 있겠으나 대략 이 숫자를 독서 분야의 진정한 딜레탕트 수로 추산해 볼 수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수십만 개의 독서 카페가 우후죽순으로 생겼다가 폐지되지만, 책읽기가 생활이 된 사람은 불과 5000명이라는 말과 통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1만 명 중 한 명이다.

인문학이나 문학을 즐기는 딜레탕트들은 저자나 출판사 이름만 듣고도 책의 성향과 스타일을 파악한다. 대형서점에서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휘둘리지 않는다. 심지어 좋아하는 서평 기자와 칼럼니스트도 따로 있을 정도로 깐깐하다. "인문·사회과학 도서는 후마니타스나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책을 주로 보게 되요. 고종석 씨나 강준만 교수처럼 좋아하는 필자가 쓴 책은 먼저 읽게 되지요. 서평은 H 신문 문학전문기자가 쓴 기사를 좋아합니다." 회사원 한기은 씨의 말이다. 그는 하루 한 시간 이상 책을 읽고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저녁까지 독서 토론을 한다. 한 씨는 "한 달에 10만 원 이상 책을 사는 데 쓴다"고 말했다.

이들은 개인 블로그나 인터넷 사이트에 서평을 올리거나, 사회 담론을 만드는 주류 세력으로도 등장한다. '문학기행'이나 '문학 콘서트', '작가와 대화' 등 문학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독자들도 이들이다. 그들이 말하는 독서의 매력은 무엇보다 '지적 즐거움'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카페 '비평고원'에서 활동하는 인터넷 서평꾼 '폭주기관차'의 본업은 약사다. 광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그는 일주일에 한두 편씩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긴다. 그렇게 활동한 지가 벌써 9년째다. "책을 읽을수록 생각이 복잡해져요. 현상을 보는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다고 깨닫거든요. 독서는 남의 말을 듣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인지 사고의 유연성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한 중견기업 간부인 이석기(55) 씨는 일주일에 3권 이상 책을 읽는다. 그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지식이 입담의 원천이 된다"고 말한다. 중년의 나이에도 20~30대 젊은 사원들과 대화할 때 주춤한 적이 없다. 직원들은 최신 문학작품부터 미국발 경제위기 분석까지 '노장의 혜안'을 듣기 위해 점심시간이면 그를 찾는다. "필독서는 3권을 구입합니다. 한 권은 사무실 책상에, 한 권은 안방에, 한 권은 화장실에 두고 읽습니다. 손에 잡히는 곳에 책을 두고 언제든 읽을 수 있게 말이죠. 이렇게 하면 웬만한 책은 일주일이면 다 읽을 수 있습니다." 



고수들이 말하는 독서 요령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우선 책을 고르는 방법이 중요하다. '독서입문'은 전문가에게 한두 권 추천을 받는 데서 시작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있는 책 추천을 참조하거나, 대형서점의 북마스터에게 추천을 받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인터뷰한 독서애호가들은 신문과 인터넷 서평을 가장 많이 참조한다고 말했다. 대학로에 위치한 서점 '이음아트'에 배치된 인문 예술관련 서적은 입문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문화예술관련 종사자들이 참조하는 도서 트렌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독서가들의 입소문을 타고 명소가 됐다.

전문 잡지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격주로 발행되는 출판 전문잡지 '기획회의'와 '출판저널'은 국내 도서 시장 전반에 관한 정보가 있다. 문학은 문예지를 중심으로 담론이 형성된다. '창작과 비평', '문학과 사회' 등 문예지의 기획 또는 특집 면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국내 문학 트렌드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추천을 받아 한 권을 읽은 후 책에 실린 인용구의 원전이나 책 뒷면에 실린 참고 도서 중 다시 한두 권을 골라 찾아 읽는다. 나뭇가지를 따라 나무의 줄기와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듯 최신의 텍스트에서 고전을 거슬러 올라가 읽는 방법이다. 분야 별로 4~5권만 읽으면 주요 고전을 혼자 읽는 단계에 이른다.

책을 읽을 때 궁금한 점을 메모해 두거나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는 등 꼼꼼히 읽는 것도 인문ㆍ문학 애호가들의 공통점이다. 인터넷 서평꾼 '폭주기관차'는 "인문서는 2~3 번 읽는데, 처음 읽을 때는 줄거리를 따로 정리해 컴퓨터 파일로 저장해 둔다. 두 번째는 이 메모를 참고해 빨리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정기적으로 서평 모임을 갖고 토론하는 방법이다.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논리성을 키우고 생각을 정리하게 된다. 9년째 독서토론모임을 하고 있는 회사원 한기은 씨는 "혼자 읽기 힘든 고전도 토론 주제로 선정되면 읽을 동력이 생긴다"고 말했다.(이윤주 기자)

대표적인 독서 카페는?

독서 모임은 인터넷 동호회를 중심으로 활발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카페 '비평고원(http://cafe.daum.net/9876)'은 회원 수가 8000명에 달하는 최대 비평 카페다. 이 카페의 운영자 '소조'는 소장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불멸 회원(6개월 이상, 한 달에 3회 이상 서평에 참여한 회원)'인 '로쟈'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터넷 서평꾼이 됐다.

네이버 문학 블로그 '우원호와 문학산책(http://blog.naver.com/w_wonho/)'은 국내외 문학에 관한 주요 정보가 집결된다. 하루 평균 2000명이 다녀가는 이 블로그는 국내외 문학 신간 소개는 물론 문학상 수상 소식, 작품분석, 문인 동정 등 문학관련 정보가 업데이트 된다.

시인들의 약력과 주요 작품을 감상하려면 웹진 '시인광장(http://www.seeinkwangjang.com/)'을 찾아가면 된다. 국내외 시 흐름을 짚어주는 특집 기사는 물론 시인들이 추천하는 시집과 인터뷰 기사를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출판사 문학동네가 운영하는 카페(http://cafe.naver.com/mhdn/)와 인터넷 서점 예스24가 운영하는 블로그(http://blog.yes24.com/default.aspx)에는 매일 작가들의 장편소설이 업데이트 된다. 현재 문학동네 카페에는 공선옥 작가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예스 24 블로그에는 백영옥 작가의 '다이어트의 여왕'과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드'가 연재 중이다. 작품을 읽고 댓글을 달면 출판사 주최 술자리에 초대되거나, 작가들의 답장을 듣는 행운도 얻을 수 있다.
 

09. 0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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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3-16 14:14   좋아요 0 | URL
<역사비평>도 문학론의 최근동향에 대해서 쟁점들을 소개하는데,저는 아무래도 창비나 문사보다 역비가 더 구미에 맞더라구요.

로쟈 2009-03-17 00:14   좋아요 0 | URL
네, 그건 말씀 안 아셔도 짐작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