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과 그 적들

문학평론가 조영일의 신작 <한국문학과 그 적들>(도서출판b, 2009)를 전철에서 오며가며 읽는다(부분적으론 필요 때문이기도 하다). 대부분은 온라인에서 한번 읽었거나 구경한 글이어서 어떤 의미에선 '다시 읽기'다. 하지만 이번엔 정독이고 그런 만큼 여러 쟁점에 대한 저자의 주장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이 그에게서 '문단문학의 종언'으로 변형되는 것, 즉 그가 '근대문학=문단문학'이라고 파악하는 것이 내가 보기엔 책의 핵심이다(과연 그런가, 싶으면 반론이나 다른 입론이 가능하리라). 읽히지 않는 평론의 시대에 던져진 도발적이면서도 잘 읽히는, 문제적인 평론집이다. 곧 나온다는 <한국문학과 세계문학>과 함께 3부작이 완성되면 장관이겠다. 관련 인터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서울신문(09. 03. 13) “한국문학엔 3敵이 있습니다”

그는 젊은 문학평론가다. 문단의 아픈 곳을 콕콕 찔러댄다. 찔러대다 못해 모두가 애써 외면해 왔던 문단의 해묵은 문제점을 낱낱이 까발린다. 백낙청, 유종호, 김우창 등 한국 문학계의 어른으로 추앙받는 대가들은 물론, 황석영, 신경숙, 김수연 등 평단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 작가들도 그의 글 앞에서 주류 권력을 지키려는, 혹은 치열하지 못한 연구자(작가)로 추락하고 만다. 하지만 놀랍게도, 어떤 논쟁적 비판을 던져도 문단은 그를 철저히 외면한다. 그래서 그는 철저한 비주류 문학평론가다.   

2006년 가라타니 고진이 쓴 ‘근대문학의 종언’을 번역해서 국내 문단에 고진의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한 조영일(36)이 지난해 10월 내놓은 자신의 첫 번째 평론집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에 이어 ‘한국문학과 그 적들’(도서출판 펴냄)을 냈다. 그가 준비하고 있는 ‘한국문학비판 3부작’의 두 번째에 해당되는 책이다. 시대와의 불화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불온한’ 문학평론가 조영일을 지난 11일 신촌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그는 책에서 표현한 것 이상으로 직접 만남에서도, 권력화된 문단의 주류세력을 ‘문학계의 조·중·동’에 비유하는 등 과격함을 감추지 않았다. 대화와 소통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그저 주류 권력을 향유하는 세력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는 한국 문학에 대한 쓴소리는 거침이 없었다.  

첫 번째 책에서 황석영의 작품을 통렬히 비판하며 파문을 일으킨 조영일의 기세는 이번에도 누그러짐이 없었다. 그는 한국 문학의 ‘첫 번째 적(敵)’으로 국가의 지원 속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성장한 뒤,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변화를 사실상 거부하는 ‘문단 문학 자체’를 꼽았다. 기존의 것에 대한 저항 또는 불화가 문학 정신의 근본임에도 이를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문단 문학을 좌지우지하는 주류 문예지를 들었다.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문학동네’를 중심으로 강고한 ‘문학 권력’을 이루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신진 작가에게 글을 쓰게 해 주고, 책을 출판하게끔 해 준다. 그리고 문예지 사이의 ‘작가 돌림’으로 문단 권력을 공유하며 공고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한국문학의 ‘마지막 적’으로 든 것은 대가들의 시대착오적인 고답적 인문학 연구 자세다.  

석사학위 과정 때 두어 차례 신춘문예에도 응모하곤 했으며, 이제는 박사과정을 마친 ‘평범한’ 문학평론가 조영일을 ‘좌충우돌형 평론가’로 변모시킨 직접적 출발점은 ‘근대문학의 종언’을 번역하면서부터. 실제로 고진의 그림자만큼이나 ‘조영일의 그림자’도 분명했다. 하지만 비공식적인 격려 또는 비판만 있을 뿐, 국내 문단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어떤 소통도, 논쟁도 없었다. 조영일은 “한국 문단 문학 주류의 실체를 뼈저리게 절감할 수 있었다.”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고진이 우리 문학의 대안을 제시한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다만 (김종철 교수 등 문학평론가들이 문학을 떠나고 있다는 등) 한국 문학에 대한 그의 짧은 언급만으로도 벌집 쑤셔 놓은 모양이 되는 것은 그동안 우리 문단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아주 많았고, 한국 비평이 그동안 얼마나 빈곤했는지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비평가들은 고진과 맞대결하려고만 하지 말고 스스로 치열하게 문제점에 맞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영일은 “이제 3부작을 마치고 나면 한국 문단에 대한 구조적 비판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앞으로는 문학 비평의 지형을 넓힐 수 있는 텍스트 비평 작업에 매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박록삼기자)   

 

중앙일보(09. 03. 18) "문예지의 편집위원들은 청탁받은 글쓰는 중간상”

『한국문학과 그 적들』(도서출판 b)이라니,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문학평론가 조영일(36)씨의 비평집은 내용도 과격하다. 그는 창작지원금에 의존하는 작가들을 ‘비아그라’를 필요로하는 ‘생산기능장애(성기능장애)’에 빗댄다. 황석영·신경숙 등 베스트셀러 작가는 물론 ‘타블로’도 도마에 오른다. 그의 비판은 다소 거칠지만 변죽을 울리는 법이 없어 시원하다. 문학계의 ‘왕비호’라 할 만하다.

-“국가가 작가를 좌우하는 시대”라 지적했다.

“단편소설은 문예지에 실릴 때 100만원, 우수문예작품으로 선정되면 100만원, 책 나오면 또 인세를 받아 한 방에 세 번을 받는다. 가난을 감수했던 옛날에 비하면 훨씬 소설 쓰기 편한 세상인데 어렵다는 건 엄살이다. 로또복권 기금으로 조성한, 못 사는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지원금에 얽매이는 건 말이 안 된다.”

-주류 문예지와 관련된 비평가들을 ‘쇼핑호스트(혹은 카피라이터)’에 비유했다.

“문예지 편집위원이 되면 출판 권한까지 맡아 텍스트 중간상 역할을 한다. 청탁받은 글을 쓰다 보니 비판적이기 어려운 구조다.”

-전작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에서 황석영씨의 『바리데기』를 비판하더니, 이번엔 『개밥바라기 별』을 노년의 시각으로 쓴 ‘퇴행소설’이라고 평했다.

“수십만 부씩 팔리며 한국 문학이 살아나는 듯한 분위기에 평론가들이 침 뱉기 싫어하는 것뿐, 졸작이다. 외부적 요인 때문에 높이 평가받는 건 문제다.”

-칭찬할 만한 작품은 없나.

“전성태의 소설 일부와 김영하의 일부. 공선옥·한창훈은 높이 평가하지만 한국문학을 선도적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김애란은 판단보류다. 평론가들이 무얼 좋아하는지 너무 잘 알고 쓴 ‘웰 메이드’ 소설이라서다. 김연수는 묘사나 서술 문장에서 감정 억제를 못한 유치한 것들이 많다.”

-김연수의 문장이 뛰어나다는 시각도 많다.

“관점이 다른 건 당연하다. 중요한 건 그 다름에 대한 토론이다. 내가 비판하는 건 ‘당신들 그래선 안 돼’라기보다는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게 있으면 지적해 달라’는 요구인데 모두 묵묵부답이다. MB가 소통이 안 된다는데, ‘명박 산성’은 광화문 복판이 아니라 문학 한가운데에 있다. 논쟁하지 않으니 문학판이 재미없어진 거다.”

-대가들만 건드린다는 말도 듣는다.

“역으로 보면 애정 때문이다. 백낙청 선생을 존경하기에 애정어린 비판을 하는 거다. 문학사란 기존 시스템을 깨 부수고 후세대가 나오는 순환이어야 하는데, 출판산업과 교육(대학)이 얽혀 시스템이 굳어진 게 문제다. 피가 돌게끔 하자는 거다.”(이경희 기자) 

09. 03. 19. 

P.S. 정독하다 보면 불가불 교정도 겸하게 된다. 33쪽에서 "자신들의 할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문장이 중복되었다. 그리고 '삭제든지' -> '삭제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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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jjismy의 생각
    from jjjismy's me2DAY 2009-03-19 01:37 
    [알라딘서재]“한국문학엔 3敵이 있습니다”
 
 
2009-03-19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20 07: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9-03-19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 조영일과 고명철의 비평집을 흥미롭게 읽고 있는데요, 최근 출간된 이 두 비평가의 비평집이 사뭇 '시의성' 있게 다가오는 경험, 그리고 또한 그 와중에 두 책 모두에게서 어떤 종류의 '강박'을 발견하는 경험 속에서 독서의 재미를 쏠쏠히 느끼고 있습니다.^^ 일단 제게는 두 비평가 모두 기존의 '작가론/작품론'이라는 비평적 글쓰기의 틀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고자 노력한다는 점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 점 또한 충분히 주목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인터뷰 기사 올려주셔서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09-03-20 07:51   좋아요 0 | URL
의도적으로 벗어낫다기보다는 비평의 영역을 좀 확장시키고자 하는 것이죠. 앞으론 작가론/작품론에 좀더 비중을 둘 거라고 하니까요...

Kitty 2009-03-19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자가 김연수씨에 대해 얘기하는거 보니까
이 책에 확 관심히 가는데요? (사실 저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어서 ㅎㅎ)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소개 감사해요 ^^

로쟈 2009-03-20 07:52   좋아요 0 | URL
비주류 비평가에 비주류 독자들도 있는 것이죠.^^

콩세알 2009-03-19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소박한 소망은 재밌는 한국 소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글쓴이들도 자기 책이 한나절꺼리로 전락하는 것이 싫겠지만 독자도 한나절꺼리 책은 재미가 없거든요. ^^;;

로쟈 2009-03-20 07:53   좋아요 0 | URL
재밌으면 한나절에 읽게 되지 않나요?^^

노이에자이트 2009-03-19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비가 가라타니를 외면하는 데 대해서 맹공격을 하는 것을 흥미있게 읽었지요.강준만 씨는 "우리나라같은 인맥 위주의 현실에서 김우창 선생을 누가 제대로 비판할 수 있겠는가"하고 쓴 적이 있는데 드디어 도마에 올렸군요.

로쟈 2009-03-20 07:53   좋아요 0 | URL
한국사회엔 너무 성역이 많습니다. 알아서 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