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신문에 실리게 되는 듯싶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내달 1일로 탄생 200주년을 맞게 되는 러시아 작가 고골(고골리)을 다루고 있어서다(구력으로는 3월 20일이 그의 생일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를 기념해서 이번 학기에 고골 강의를 여러 강좌에 잔뜩 집어넣었다. 이미 <광인일기> 같은 작품 강의를 시작했는데, 아마도 5월말까지는 고골을 손에 들고 있을 듯싶다. 단, 유감스러운 건 칼럼에서 언급되고 있는 <죽은 혼>은 강의 목록에서 빠졌다는 것. 마땅한 번역본이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번듯한 번역서가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경향신문(09. 03. 20) [여적]죽은 혼
19세기 중엽의 러시아는 유럽에 비해 지극히 낙후된 상태였다. 여전히 가혹한 농노제가 유지돼 농민을 가축이나 물건처럼 매매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1861년 알렉산드르 2세의 농노해방령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시기 러시아 농노제 사회의 폐해와 관리들의 부패를 풍자 기법으로 예리하게 비판한 작가가 니콜라이 고골리다. 그 중에서도 장편 <죽은 혼>은 대표적 걸작이다. 이 작품을 통해 고골리는 러시아 근대 리얼리즘의 아버지로서의 지위를 굳힌다.
고골리는 이 소설에 일부러 중의적(重意的) 제목을 붙였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어에서 ‘혼’을 뜻하는 ‘두쉬’에는 ‘농노’란 뜻도 있다. 농노를 세는 단위로도 ‘두쉬’가 쓰였다. 따라서 <죽은 혼>은 <죽은 농노>로 해석되기도 한다. 국내 번역본 가운데 <죽은 농노>란 제목이 있는 까닭이다. 그나마 이 책은 1842년 모스크바에서 출간될 때 엄격한 검열 때문에 <치치코프의 모험 또는 죽은 혼>이란 이름으로 나왔다.
주인공 치치코프는 탐욕스러운 협잡꾼이다. 그가 시골 마을에 나타난 건 죽은 농노를 사들이기 위해서였다. 호적상 살아 있는 것으로 돼 있는 죽은 농노를 저당으로 은행에서 거액을 빌려 한 밑천 잡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새 인구조사 때까지 꼬박 꼬박 죽은 농노에 대한 인두세를 물어야 하는 지주들에게도 이익이었다. 그렇게 해서 치치코프는 죽은 농노 400명을 끌어모으는 데 성공한다. 여기서 <죽은 혼>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중의가 나타난다. 바로 ‘속물성’이다. 치치코프뿐 아니라 그가 만나는 지주들도 하나같이 탐욕적이고 인색하며 사납고 편집광적이다. 정신적으로 죽은 사람들이라고 할까. 심지어 이들 집의 가구들까지 주인의 분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풍자와 해학, 사실주의가 뒤섞인 <죽은 혼>을 읽다 보면 절로 우리 시대에 죽은 혼은 누구인지 묻게 된다.
20일이 구 러시아력으로 고골리의 탄생 200주년이다. 현재 쓰는 그레고리력으론 4월1일이다. 그가 말년에 살았던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집은 박물관으로 단장되었다고 한다. 이 집에서 고골리는 <죽은 혼> 2부를 집필하다가 정신적 동요를 못 이기고 원고를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단식에 들어간 지 아흐레 만인 1852년 2월 어느날 고통 속에 숨을 거뒀다.(김철웅 논설위원)
09. 03. 19.
P.S. 자신의 마지막 원고(<죽은 혼> 2부)를 태우는 고골의 모습. 일리야 레핀의 그림(1909)으로 모스크바의 트레차코프미술관 소장품이다. 작년에 국내에서도 전시된 바 있다. 참혹한 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