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번역자'로 단연 꼽을 만한 이는 사마천의 <사기>를 완역한 김원중 교수다. <본기>, <세가>, <열전>에 이어서 이번에 <표>와 <서>를 마저 번역 출간했기 때문이다.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할 만한 일을 혼자 힘으로 오랜 노고 끝에 완결지었으니 경의를 표할 만하다. 안 그래도 여름에 <사기>의 앞에 나온 세 권은 구입을 했는데, 이제 마저 짝을 맞춰놓아야겠다.

  

한겨레(11. 10. 08) “14년 걸려 중국서도 드문 ‘표’ 번역까지 했죠”

중국 역사서 최고 고전인 <사기>처럼 유명한 책도 없지만,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 52만6500여자에 달하는 <사기> 전체를 우리말로 완전하게 옮긴 번역본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용을 추리고 다듬은 편집본들만 접할 수 있었을 따름이다. 



중문학자인 김원중 건양대 교수(사진)가 최근 <사기 표(表)>와 <사기 서(書)>를 번역 출간해, 14년 동안 이어오던 <사기> 완역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기>는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 등 전체 130편으로 이뤄져 있다. 김 교수는 1997년 <사기 열전>(2권)을, 지난해에는 <사기 본기>와 <사기 세가>를 번역했고, 이번에 <표>와 <서>를 출간해 비로소 <사기>의 모든 것을 우리말로 옮겼다.

지난 5일 만난 김 교수는 “20여년 동안 나름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번역에 매달렸다”며 “끝내고 나니 10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갈 정도로 후련하다”고 말했다. 이번 번역으로 김 교수는 ‘혼자 <사기>를 완역한 학자’, ‘<삼국지>와 <사기>를 함께 완역한 학자’ 등 다양한 수식어를 얻게 됐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홀로 사기를 번역한 사례는 없으며, 중국에서 이 고전을 현대 중국어로 옮기는 작업은 국가 주도로 여러명의 학자가 참여해 이뤄지고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특히 이번에 번역한 ‘표’는 ‘본기’, ‘세가’, ‘열전’에 분산된 역사적 사실 관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표로 정리한 기록물로서, 중국에서도 번역된 사례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혼자 번역에 매달려 이 대장정 같은 작업을 마쳤다. 중국 중화서국에서 냈던 <사기> 표점본(고문에 구두점을 찍은 판본)을 바탕삼았는데, 철저히 원전 중심주의를 지키면서도 가독성 높은 번역을 추구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수준에서 번역된 말을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잘된 번역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 또 우리나라만의 번역 정체성을 살리고픈 마음에 중국어·일본어 번역본은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번역에 대한 집념은 국내 번역 현실을 우려하고 고민하는 데에서 나왔다. 중국의 ‘24사(史)’ 가운데 현재 우리말로 완역된 작품은 자신이 번역한 <사기>와 <삼국지>뿐이다. 일본에서는 <한서>, <삼국지> 등이 이미 오래 전에 완역돼 있었으며, <표>를 포함한 <사기>의 완역도 지난해에 이뤄졌다.

김 교수는 “국내엔 저보다 높은 실력을 가진 분들이 훨씬 많다”며 “문제는 학자들이 번역에 매달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학문적 토양”이라고 지적했다. 아직도 번역을 학문적 성과로 인정해주지 않는 등 학문 제도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꼭 필요한 번역본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사기>를 번역하면서 백번도 더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이미 <사기>에 깊이 매혹돼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사마천은 왜 진시황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형가의 이야기, 곧 실패담을 굳이 써넣었을까요? 아내의 충고를 듣고 태도를 바꾼 안자의 마부 이야기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은 왜 써넣었을까요?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통고금지변’(通古今之變), 곧 2500년 역사를 통해 인간의 흥망성쇠를 밝히고 만사의 근본과 핵심을 파악하고자 했던 사마천의 뜻을 다시 새길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는 ‘한 권으로 읽는’, ‘하루 만에 끝내는’ 등의 제목이 붙은 편집본을 봐서는 고전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고 말한다. 글쓴이의 의도를 생각하며 글 전체를 천천히 읽어내려갈 때 비로소 그 심오한 뜻을 깨칠 수 있다는 것이다.(최원형 기자) 

11. 10. 08.  

P.S. 국내에선 <사기> 완역에 도전한 학자가 한 명 더 있다. <사기> 전문가 김영수 교수도 <본기1>(알마, 2010)을 펴내면서 장정에 들어간 상태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또한 완결되기를 기대하면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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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1-10-08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도장이나마 다 찍은 줄 알았는데 '표'와 '서'가 또 나왔군요. 저는 책을 읽고 나니 책속의 이야기보다 사마천에 대해 두고 두고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로쟈 2011-10-09 11:54   좋아요 0 | URL
네, 대단하긴 하죠. 중국사를 통틀어 최고의 역사서를 써냈으니 말이에요...

미국사람 2011-10-11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원중 교수가 사기완역이라는 대단한 일을 해냈군요. 번역을 업적으로 생각해주지 않는 한국의 풍토는 빨리 바뀌어야합니다.

미국에서는 인디아나대학에서 8권짜리 완역이 나와있어요. Ssu ma Ch’ien (1994), The Grand Scribe’s Records (1994 부터 2008년까지 간행) 학술서적이라 가격은 권당 100불 정도이니 일반인이 사서 볼 수 있는 책은 아닙니다만 도서관에는 상당히 깔려 있더라구요. 읽어보려했더니 지명과 인명이 중국발음인데다 한자가 전혀 병기가 안되어있어서 두어페이지 읽고 그만두었읍니다. (항우나 유방같은 이름의 중국발음을 알아야 읽을 수 있읍니다.) 다만 주석까지 빼곡히 달려있어서 우리의 일반 번역서와는 비교가 안되는 높은 수준입니다.

일본쪽 사기 번역은 찌꾸마 문고 쪽이 (史記 全8巻)』小竹文夫・小竹武夫 共訳、筑摩書房〈ちくま学芸文庫〉、初版1995年)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입니다. 사기 연구서적 쪽으로 가면 한국과 일본은 거의 상대가 안되는 수준입니다. 중국 고전을 교과서로 과거를 500년 이상 실시했던 조선의 후손인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개탄할만한 일입니다.  

일본에서는 한서도 예전에 번역되어나왔는데 우리는 언제 한서 번역을 볼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들 때문에 동양사하려면 한문 중국어 뿐아니라 일본말까지 필수로 해야 됩니다. 슬픈 현실이지요.


로쟈 2011-10-11 11:02   좋아요 0 | URL
흥미로운 정보네요. <자치통감>의 경우엔 그래도 얼마전인가 완역본이 나왔습니다. 그런 식으로 24사가 조금씩은 번역되고 있습니다. 아직 요원하겠지만요.^^;
 

'이주의 학술서'라 할 만한 책은 정연태 교수의 <한국근대와 식민지 근대화 논쟁>(푸른역사, 2011). 소개기사조차도 '식민지 근대화 논쟁의 변증법적 지양'이란 제목을 달았다! '식민지 근대화 논쟁'을 정리하는 데 요긴할 듯싶다.   

  

한국일보(11. 10. 08) 식민지 근대화 논쟁의 변증법적 지양

일제의 식민 지배가 한반도 근대화에 기여했는가는 국내 역사학, 경제사학계의 해묵은 논쟁거리다. 한국현대사학회가 최근 교육부의 역사 교육 과정 개정 작업에 '일제에 의한 근대적 제도의 이식 과정과 우리 민족의 수용'을 포함시키자고 요구한 데서 새삼 드러나듯 이 논쟁은 한국 사회의 이념 대립과도 오버랩된다.

한국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있었지만 그것이 일본 제국주의의 수탈로 피어나지 못했다는 식민지 수탈론이나, 식민 지배를 당하기는 했지만 일본의 이식으로 근대화에 진척이 있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일면을 부각해서 보려 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가톨릭대 정연태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 논쟁을 둘러싼 최근 10년간 자신의 논문을 엮은 <한국근대와 식민지 근대화 논쟁>에서 이 같은 논쟁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하고자 한다. 그는 '근대사 굴절에 대한 책임을 손쉽게 외세 탓으로 돌리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한국 사회의 주체적 한계를 직시하고 반성하면서도 한국 사회의 발전 잠재력과 역동성도 동시에 포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거기에 더해 근대 자체를 비판하는 '탈근대론'도 '민족주의를 제국주의의 쌍생아처럼 취급하여 백안시하거나 민족성ㆍ식민성을 근대성의 묶음 속에 집어넣어 뼈도 없이 녹여 버리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비판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그가 주목한 것은 이 같은 학문적 편견에서 자유로운 19세기 후반 20세기 전반 서양인의 한국근대사 인식이다. 서양인의 왜곡된 동양관 같은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조선과 조선인에 호의적이었든 아니든 간에 이들은 당시 조선 실정에 대해 비슷한 진단을 내린다. 발전 잠재력은 풍부하지만 양반ㆍ관료층의 부정부패와 무능력으로 고갈됐고, 민중은 근로ㆍ저축 의욕 감퇴로 나태와 빈곤의 늪에 빠졌으며, 국가 경제는 후진적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생적인 근대화의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당장은 일본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결론도 대동소이하다.

이 같이 중층복합적인 시대 상황을 조선 후기의 포구 도시인 충남 강경에 대한 미시 연구 등을 통해 재확인하면서 그는 '장기(長期) 근대사론'이라는 새로운 역사상을 제안한다. 한반도의 근대가 해방과 함께 압축적으로 끝났다고 볼 것이 아니라 남북통일까지 미완의 것으로 보자는 문제 제기다. 이론(異論)이 적지 않겠지만 열린 민족주의 등 건강한 민족주의의 실천적 완성이라는 숙제까지 포함한 이 개념이 실익 있는 근대사 논쟁에 한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음에는 틀림없다.(김범수기자) 

11. 10. 08.   

P.S. 기억에 식민지 근대화 논쟁에 새로운 물꼬를 터준 이는 '회색지대'론을 주장한 윤해동 교수였는데, 이후에 논쟁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됐는지 알지 못한다. 정연태 교수의 책이 가이드가 돼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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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만큼 확실하게 관련서가 출간되는 기념일도 드물 것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닌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노마 히데키의 <한글의 탄생>(돌베개, 2011). 책 표지만 보고 주문해서 주중엔가 받은 책인데, 잠깐 펴본 바로는 상당히 학구적인 책이다. 일본의 한국어학 수준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만만찮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서울신문(11. 10. 08) 동북아 지적 대혁명, 한글 창제

“한글의 탄생과 성장은 지(知)의 혁명이며 문화의 혁명이다.” ‘한글의 탄생: 문자라는 기적’(돌베개 펴냄)은 한글 원리와 탄생 배경, 성장 과정을 ‘언어란 무엇이고, 문자란 무엇인가?’라는 보편적인 질문을 통해 통찰하고 풀어냈다.

그 과정에서 ‘소리가 글자가 되는’ 놀라운 구조를 확인하고, 하나의 글자 체계를 뛰어넘은, ‘말과 소리와 글자’가 함께하는 보편적인 모습인 한글을 그려냈다. 귓가에 들려오는 말소리로부터 ‘음’의 단위를 추출해 내고, 이들을 각각 ‘자모’로 형상화해 설계해 내는 ‘훈민정음’의 탄생 과정을 경이롭게 펼쳐냈다.

일본인 한국어학자 노마 히데키는 한글 탄생이 단순한 문자 발명을 넘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지(知)’의 판도를 뒤흔들어 놓은 지적 혁명의 과정이라고 지적한다. 한글 창제 이전부터 있어 왔던 수천 년 동안의 문자 생활 및 환경을 꼼꼼이 짚었다. 한자·한문만으로 글을 써왔던 15세기 이전의 한반도와 일본에서, 말과 다른 글을 표현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소개하면서 언어와 문자 관계를 살펴보게 이끈다.

저자는 훈민정음의 창제를 ‘알파벳 로드(road)’, ‘자음문잣길’의 종언이라고 단호하게 정의한다. “아시아를 가로지른 ‘자음자모 로드’의 종착지에서, 어슴푸레한 모음에 단호히 게슈탈트(형태)를 부여한 것이 훈민정음”이라고 강조한다. “훈민정음은 라틴문자처럼 모음자모와 자음자모가 직선상에 병렬된 2차원적인 배열 시스템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입체적 배치 시스템, 동적인 시스템을 확립했다.”고 밝혀낸다.

이런 분석으로 “훈민정음의 성립을 한국어사 및 동아시아 문화사라는 한정된 범위를 넘어 언어학, 문자론 등 다각적인 방면에서 고찰해 보편적인 의의와 가치를 찾아내려고 했다.”는 평도 받았다. 이 책은 훈민정음 창제이후 한글로 쓰여진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세종의 ‘에크리튀르(쓰여진 것과 쓰는 것) 혁명’이 어떻게 내용을 이뤄나가고, 한글의 내용을 담게됐는지를 동국정운, 석보상절, 천자문 언해, 두시 언해 등의 내용을 들어가며 설명했다.

저자는 현대일본미술전 가작상을 수상한 미술작가이기도 하다. 일본어로 쓰여진 같은 제목의 저서를 번역한 것으로 2010년도 아시아태평양상 대상을 받았다. 한국인들에게 이 책은 한국어와 한글을 외국학자의 낯선 눈을 통해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 저자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의지와 실천이 없었다면, 한글은 어쩌면 로마자 같은 문자로 쓰여졌을 수도 있겠다.”는 말로 훈민정음 창제의 무게를 요약하기도 했다.(이석우 편집위원) 

11. 10.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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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305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석영중의 <뇌를 훔친 소설가>(예담, 2011)에 대해 적었다. 마감일에 급하게 보내느라 퇴고를 하지 못했었는데, 편집자가 교정을 보느라 고생을 했다. 한 곳은 더 보태서 고쳐놓는다.  

   

기획회의(11. 10. 05) 문학과 뇌과학, 서로를 비추다

<뇌를 훔친 소설가>. 소설 제목으로 그럴 듯하지만, 뇌과학과 문학을 다룬 인문서이다. 이렇듯 두 분야가 겹치거나 교차할 때는 책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경우는 저자 석영중 교수가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인문학자이기에 ‘인문서’로 분류하고 리뷰를 쓴다. 그렇다고 나름대로 문학에 식견을 갖춘 뇌과학자가 비슷한 유형의 책을 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과학보다 앞서서 인간 두뇌의 비밀을 밝혀낸 여덟 명의 예술가들을 조명한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지호)의 저자 조나 레러는 신경과학 전공자이고 이 책은 ‘뇌과학서’로 분류돼 있다. 그렇게 ‘교양 인문학’과 ‘교양 과학’의 경계가 어딘지 모호하다면 그냥 ‘21세기 교양’으로 묶어도 좋겠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말대로 뇌과학 정도는 현대인의 필수교양이니까.   

일단은 분위기 파악부터 해보자.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적은 대로 “뇌는 21세기 인류에게 가장 흥미로운 화두 중 하나다.” 과학계에서도 인간게놈프로젝트와 함께 뇌지도 프로젝트는 엄청난 연구역량이 투입되고 있는 초국가적 메가프로젝트이다. 여파는 인접 학문에도 미치기 마련이다. ‘신경문학 비평’이라거나 ‘다윈주의 문학비평’ 따위의 분야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니 조만간 국내에도 소개되지 않을까 싶다. 대체 어떤 분야인가. 신경문학 비평은 우리가 문학작품을 읽거나 창작할 때 “두뇌에서 어떤 뇌세포가 어떻게 활성화되는지를 뇌 스캔으로 관찰하여 독서와 창작의 이면에 있는 생리학적 과정을 규명”하는 것이 목적이라 한다. 또 다윈주의 문학비평은 문학을 환경에 대한 적응의 표현으로 보고 “특정 작품의 특정 인물과 플롯은 그러한 생존방식의 표현”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소개된 책도 없지 않다. 영문학자인 질리언 비어의 <다윈의 플롯>(휴머니스트), 생물학을 전공한 데이비드 바래시와 나넬 바래시의 <보바리의 남자 오셀로의 여자>(사이언스북스) 등이 바로 다윈주의 문학비평에 속하는 책들이다.  

그렇다면 <뇌를 훔치는 소설가>를 통해서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를 밝히고자 한 저자 또한 이러한 흐름에 일조하려는 것일까. 뜻밖에도 그렇진 않다. “나는 개인적으로 진화 문학이론과 신경문학 비평에 마음이 가지 않는다”라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도 분명하다. 현시점에서 다윈주의적이고 인지적이며 신경과학적인 문학연구 방법은 결국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로 귀착하고 만다는 판단에서다. 문학작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약간은 바꿔놓을지 모르겠지만 지각변동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다. 다만 인간에 대한 이해에 서로 도움을 주는 ‘상호조명’은 가능하리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며 책에서는 “문학적 내용과 자연과학적 사실이 서로를 비춰주는 가운데 드러나는 삶의 지혜를 탐구”해 보고자 한다.  

 

그러한 의도 하에 저자는 뇌과학이 밝혀준 네 가지 ‘자연과학적 사실’을 골랐고 거기에 부합하는 ‘문학적 내용’들을 나란히 배치해놓았다. 그것이 흉내, 몰입, 기억과 망각, 변화라는 주제를 다루는 네 장의 구성이다. ‘흉내’ 장에서 다루는 것은 거울뉴런의 발견이다. 1990년대 초 이탈리아의 신경과학자들이 마카크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처음 발견한 거울뉴런은 “누가 몸짓을 하든 그 몸짓에 반응하는 뉴런”이다. 영장류에게도 타인의 시도에 반응하고 느끼는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간의 흉내, 곧 모방행동과 감정이입이 신경생리학적으로 어떻게 가능한지 시사한다. 즉 타인의 마음상태를 흉내 냄으로써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학연구자가 보기에 “거울뉴런은 문학작품이 다루어왔던 특정 현상을 신경생물학적으로 증명해준 것이다.”   

그럼 뇌과학보다 한발 앞서서 문학작품은 우리에게 흉내에 관한 어떤 진실을 말해주었는가. 저자는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의 여주인공 타티야나를 일례로 든다. 어린 시절부터 책읽기만을 좋아했던 이 시골처녀가 오만해 보이는 포즈의 도시 청년 오네긴을 만나 단번에 사랑에 빠지게 된 건 무엇보다도 수많은 연애소설들 탓이다. “수백 권의 연애소설 속에서 수천, 수만 번의 사랑을 읽을 타티야나의 뇌에서는 소설적인 사랑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신경세포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녀는 ‘표절의 여왕’이며 그녀가 오네긴에게 보낸 편지는 낭만주의 연애소설의 모사품이다. 하지만 작품에서 타티야나는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모방에서 벗어난다는 점에서 오네긴과는 달리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몰입’에 관한 장에서는 ‘보상 신경전달물질’로도 불리는 도파민이 소개된다. 뇌과학자들에 따르면 도파민은 “뇌를 각성시켜 집중과 주의를 유도하고 쾌감을 일으키며 삶의 의욕을 솟아나게 하고 창조성을 발휘하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이 도파민과 관련한 사례를 찾자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서 키티와의 사랑에 흠뻑 빠졌을 때나 풀베기에 몰입하면서 무아지경에 빠졌을 때 레빈의 모습이 전형적이다. 또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에서 지바고가 시를 쓰면서 체험하는 희열 또한 몰입의 대표적 사례다. 그는 시대적 혼란과 개인적 역경 속에서도 “시 쓰기에 몰입함으로써 삶도 죽음도 초월하는 창조의 지복을 경험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몰입이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몰입과 중독은 같은 상태의 두 가지 다른 이름이기에.    

‘기억과 망각’이란 주제에 대해서도 뇌과학은 기억이 부호화, 저장, 인출, 망각이라는 네 단계의 과정을 밟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에 실마리를 제공한 것이 바로 기억에 대한 프루스트의 면밀한 관찰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 과자를 통해서 주인공의 과거 기억이 환기되는 장면은 신경과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라고 한다. 물론 프루스트가 보여준 건 병적일 정도로 섬세한 기억이 아니라 우리의 상상과 중첩되는 기억이며, 이러한 통찰은 현대 뇌과학의 발견과도 일치한다.   

끝으로 ‘변화’ 장에서 저자가 다루는 건 뇌의 ‘가소성’ 문제다. ‘신경가소성’을 말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뇌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가소성 역시 좋은 면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우리의 뇌를 풍부하게 하는 한편, 외부 영향에 취약하게도 한다. 저자는 유달리 범속성과 범속한 삶을 자주 모티브로 삼았던 러시아문학, 특히 고골의 작품들과 곤차로프의 소설 <오블로모프>, 그리고 체호프의 단편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예로 들어서 가소성이 갖는 역설적 이중성을 짚어준다.  

뇌과학이 계속 발전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문학과의 접점은 더 많아지고 깊어질 것이다. 문학이 얼마나 많은 뇌를 더 훔쳐다놓을지 궁금하다.  

11. 10.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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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11-10-08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지시학을 지난학기 박사 마지막 수업에 들어서 뇌과학과 문학의 접점에 대해서 공부했었습니다. 로쟈님의 소개해 놓은 부분만 보면, 위 책은 문학 연구에 대해 새로운 빛을 준다기 보다는, 뇌과학을 문학을 통해 소개해놓은 것처럼 보이네요. ^^

로쟈 2011-10-08 08:21   좋아요 0 | URL
인지시학 소개한 책은 저도 구입해놓았는데, 강의도 있다니 놀랍네요. '새로운 빛'을 경험하셨는지요?^^

2011-10-08 0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8 08: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2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2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qualia 2011-10-26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시점에서 다윈주의적이고 인지적이며 신경과학적인 문학연구 방법은 결국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로 귀착하고 만다는 판단에서다. 문학작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약간은 바꿔놓을지 모르겠지만 지각변동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다. 다만 인간에 대한 이해에 서로 도움을 주는 ‘상호조명’은 가능하리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며...]

위 인용글이 석영중 교수 생각의 (혹은 『뇌를 훔친 소설가』의) 정확한 요약이라면, 석영중 교수 생각은 지극히 “나이브”하다고 할 수 있다. 『뇌를 훔친 소설가』 또한 (아직은 안 읽어봤지만) 범작일 가능성이 크다. 논문으로 치면 단순한 총정리 논문쯤(사실 총정리가 아닌 부분적 정리겠지만) 될 것이다. 위 서평만으로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무리지만, “흉내, 몰입, 기억과 망각, 변화”의 뇌과학적 사실과 (러시아) 문학 작품에서의 그 대응적 사례를 골라 짝지어 설명하는 것으로만 그쳤다면, “그래,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란 뜨악한 핀잔은 석영중 교수 자신이 듣게될 가능성이 더 크다.

어떤 연구 주제/설명 대상을 설정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문학 작품에서 이것 저것 뽑아와 대응시키고 (중언부언 동어반복적으로) 부연 설명하는 것이 문학과 학부생이나 초보 대학원생의 가장 흔한 논문 유형이다. 『뇌를 훔친 소설가』가 위 서평에서 요약한 대로만 했다면, 혹은 저런 식의 단순 정리 논문의 문학(비평)적 수식에 그친 것이라면, 그저 범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 하면, 위 인용문에서의 발언 내용은 “그래,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에 그치는 단순 사례 수집/설명에서 한두 단계 더 나아가 심층적 통찰이나 독창적 사유를 제시하지 못했다는/않았다는 자기고백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석영중 교수께서는 마음철학/심리철학이나 인지과학철학 쪽은 과연 들여다보셨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저런 말씀 하실 리가 없을 텐데 말이다.

이미 영미권에서는 『뇌를 훔친 소설가』 류의 신경소설, 신경문학, 신경비평, 인지비평 관련서들이 숱하게 출간된 것으로 안다. 이쪽 방면의 학부 초월 융합적/통섭적 연구 붐과 성과는 석영중 교수의 인식과는 전혀 달리 “지각변동을 일으킬 정도”라는 게 학계의 통설이다. 국내의 한 교수님은 “인지혁명” 혹은 “패러다임 전환”까지 거론하신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한국에서도 『뇌를 훔친 소설가』 류의 저작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는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뇌과학, 인지과학, 문학, 인문학과의 만남이 풍성해지리라 기대하게 한다.

(2011-10-26 11:32)
 

오늘자 인물란의 톱뉴스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타계 소식이다. 날짜로는 또 오늘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인물란이 부쩍 붐비는 즈음인데, 나는 그냥 소박하게 내가 아는 지인의 인터뷰 기사만 옮겨놓기로 한다. 방송대TV의 '책을 삼킨TV'에 출연하면서 알게 된 가수 '사이'다(처음엔 '싸이'인 줄 알았다). '유기농펑크포크'란 장르의 창시자이기도 한데, 그의 소박한 인생철학이 경향신문의 창간 65주년 기획특집 기사를 탔다.  


가수 사이의 은행 통장 잔액은 0이지만 조금도 불안하지 않다. 그는 “돈이나 직장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을 떨쳐낸다면 사람들이 돈에 집착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폐가를 고쳐 살고 있는 집 앞에서 지난달 28일 사이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11. 10. 06) “텃밭 있고, 노래하면 됐지 돈이 왜 필요하죠?”

‘슈퍼 백수’ 가수 사이(38)는 시골에 산다. 전업농은 아니다. 가난하지만 굶지 않고 불편한 것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 5년 전 서울을 벗어났다. 참깨, 고추, 호박, 배추 등 필요한 먹거리는 집 앞 텃밭에서 해결한다. 더 많이 수확하려고 부지런히 밭일을 하지도 않는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먹는다. 올해는 처음으로 텃밭에 벼도 심었다. 자고 싶으면 자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도 읽고 싶을 때 읽는다.

“그냥 돈 버는 일 안 하고 편히 살고 싶었어요. 산 입에는 거미줄 치지 않잖아요. 시골은 생활비가 덜 드니 많이 안 벌어도 되고요. 거의 모든 문제가 돈에서 나오는데 도시에서는 그런 생활이 불가능하잖아요.”

그는 백수는 아니다. 스스로 노래를 작사·작곡해 앨범을 두 장까지 낸 가수다. 두번째 앨범은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행사 중 ‘거리악사 페스티벌’ 경연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제작비를 지원받았다. 그의 음악을 들은 사람들이 늘면서 각종 공연행사나 시민·사회단체의 집회에서 노래를 해달라는 전화도 많아졌다.

“우리나라 사람은 부지런한 걸 좋아하잖아요. 특히 시골에서는 더 그래요. 근면에 대항하는 사람의 인권을 지키기 위한 자존심을 지키려는 의미에서 슈퍼 백수라고 불러요. 사실 빈둥거릴 때 가사가 잘 떠올라요.”

  

“사람들은 도대체 내말을 믿지 않아/ 돈 없어도 시골에서 팔자가 늘어진 걸/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고 전기세 1600원/ 텔레비전 핸드폰 세탁기 냉장고 없어도 좋아// 농사로 돈을 벌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그냥 줄이고 덜 쓰고 가난해도 괜찮을 걸….”(후략)>

그가 집에서 녹음·편집·앨범디자인 등 모든 것을 혼자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음반에 실린 첫 곡 ‘아방가르드 개론 제1장’의 노랫말이다. 그가 가장 많이 낸 전기료가 한 달에 1600원이었다. 경남 산청에서 살 때다. 그러다 2년 전 더 많은 ‘사이’ 그러니까 더 많은 관계를 맺기 위해 충북 괴산으로 왔다. 폐교인 신기학교 사택에서 살다가 지금은 동네주민이 내준 칠성면 율지리의 폐가를 개조해 살고 있다.

“항상 빈집을 찾고, 농사도 남이 안 쓰는 땅에서 지어야 하니 개간해서 밭을 만들면서 화전민처럼 살았죠. 그러다 괴산에 와서 정말 넉넉하게 살고 있어요. 정말 전기의 고마움을 느꼈어요. 음식도 시원하게 보관할 수 있고. 아마 남들처럼 소비하며 살아왔다면 그런 행복은 못 느꼈겠죠.”

그는 통장에 1원 한 푼 없다. 그러나 돈이 없다고 불안해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덜 먹으면 되니까. 사실 살림은 산청에 있을 때보다 넉넉해요. 남들이 보기에는 가난하지만 지금처럼 넉넉하다고 느낀 적은 없어요. 돈이 생긴다고 저축할 생각도 없어요. 돈 생기면 읍내 나가서 느티(아들)랑 짜장면도 사먹고 쓰면 되죠. 저희는 엥겔계수가 100이에요. 하하.”

그는 음악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모든 곡을 스스로 작사·작곡한다. 자칭 ‘유기농 펑크포크’의 창시자다. 겉은 포크인데 내용은 펑크 스타일이란다. 사람들이 하도 음악장르가 뭐냐고 물어보기에 지었다. 그의 이름처럼 뭔가와 뭔가 사이에 낀 애매한 장르다. 유기농은 시골에 살기 때문에 붙인 일종의 군더더기란다. 사실 자연과 생태는 그의 음악에 중요한 배경이다.

‘당근밭에서 춤추고 있는 노을은 노을보다 아름다워라/ 게으르다고 욕하신 대도 어디까지나 즐거운 마음입니다/마루에 누워 룰루랄라 죄송합니다/ 가난해도 괜찮다고 아무리 얘길해도/얘길해도 믿질 않으니 이것 참 환장할 노릇/새우깡 라깡 데리다주고 어머니 앞에서 고백해봐요/당근밭 노을은 혼자보기 안타까워라.’(당근밭에서 노을을 보았다)

부산 가난한 달동네에서 태어나 그냥 음악이 좋았다. 학교(해동고)에서도 옆 교실까지 들릴 정도로 노래를 불렀다. 전교에 소문난 가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음악을 하기 위해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에 와서는 국립극장 기관실에서 1년반 동안 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돈이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우울한 음악에 심취했다. 마치 신발을 쳐다보고 힘없이 걷는 것 같다는 ‘슈게이징(Shoegazing)’ 장르였다.

“2004년쯤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 중인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밥을 해주던 모임 ‘투쟁과 밥’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길거리밴드를 만들었어요. 이주노동자들의 엉성한 발음으로 하는 구호가 너무 쏙쏙 가슴에 와 닿았어요. 그때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죠. 거지처럼 살아도 괜찮구나 하고 겁이 없어졌죠. 시식코너에서 배 채우면서도 즐거웠어요.”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홍대앞, 철거민촌, 새만금, 평택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했다. 지율 스님이 천성산 관통도로 건설을 반대하며 단식할 때는 광화문 옆 공터에서 100일 동안 매일 공연을 했다. 스님이 고마움의 표시로 유럽 생태공동체를 둘러볼 수 있도록 주선해줬다. 8명이 1000만원을 들고 2주 동안 놀았다. 거기서도 길거리공연을 했고, 마을에서 일도 하며 밥도 얻어먹었다. 돌아올 때는 200만원이 남았다. 생태에 관심을 갖고 시골로 내려갈 ‘용기’가 생긴 것도 이때다.

“두려움 때문인 거 같아요. 돈 없고, 다닐 회사 없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집착하고. 그건 음악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어요. 홍대도 자본에 먹히고 있잖아요. 외국 뮤지션 불러오는 비싼 티켓값의 무대에 서지 못하거나 TV의 밴드 발굴 프로그램에 들지 못하는 2류라는 두려움이 퍼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는 올해 ‘사고’를 쳤다. ‘돈이 위주가 아닌 사람이 주인공인 축제를 위해, 서울이 아니라 지역 그것도 시골에서도 잘 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작고, 어설프고, 불편한 축제를 준비했다’(안내문에서 인용).

지난 3일부터 1박2일 동안 ‘제1회 괴산페스티벌’을 기획했다. 장르별로 홍대에서 유명한 뮤지션들을 한 팀 한 팀 고르고 설득했다. 자신과 경기 명창 권재은씨 등 8팀을 꾸렸다. 괴산에서 같이 음악하는 친구 집 앞 유기농 텃밭에 공연장을 만들었다. 화장실은 땅을 파서 간이로 설치했다. 무대를 밝힐 조명등만 설치했다. 객석은 손님들이 가지고 온 돗자리였다.

“돈이 짜놓은 것만 보지 말고 축제는 만들면 된다는 페스티벌 취지에 다들 동감해줬어요. 사실 참가한 팀들은 모시기 힘든 사람들이죠. 관람료는 즉석에서 자발적으로 내는 후원금이어서 얼마를 줄지도 몰랐어요. 그래도 성공할 거라 확신했어요.”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후원금도 제법 모여 뮤지션들에게 차비라도 줄 수 있었다. 한 사람 한 사람 개인 후원을 받았는데 150만원이 모였다. 공연자들과 관객 모두 즐거워했다. 잠자리나 음식, 화장실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150만원만 있으면 150명이 함께 잘 먹고, 잘 놀고, 춤추고, 좋은 추억까지 가져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죠.” 



여기저기서 축제를 더 키우자고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크기와 사람들이 모여서 비슷하게 놀 수 있게 할 생각이다. 키우면 골치 아픈 일이 많아져서다. 그는 스스로 “게으르다”고 했지만 게으른 것 같지 않았다. 어쩌다 본 그의 공연 일정표는 빽빽했다(가을이면 으레 성수기라서 그렇단다). 방송대 케이블TV 책소개 프로그램에 격주로 출연한다. 음악이 그를 누구보다 행복하고 부지런하게 해주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가난하지만 지금 누구보다 행복하다”고.(박재현 기자)  

11. 10.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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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11-10-06 19:17 
    가수 사이의 유기농펑크포크 — '유기농펑크포크'란 장르의 창시자 사이를 소개합니다~ (via 로쟈)